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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주어지는 수상한 자유
뒤늦게 주어지는 수상한 자유
  • 박혜영
  • 승인 2023.01.09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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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박혜영 논설위원 / 인하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박혜영 논설위원

최근 교육부가 심히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그동안 대학을 관리, 감독하던 고등교육정책실을 폐지하고, 더 이상 대학을 규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역시 이주호 장관은 본인의 신자유주의식 교육관에 대한 저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모든 규제를 풀어 대학이 그토록 원하던 자율과 자유를 돌려주겠다는 올드보이 장관의 격한 각오가 느껴진다.

정원조정의 자율권, 교사·교지·교원을 비롯한 대학설립 요건의 완화, 대학기본역량진단의 폐지만 해도 감격스러운데, 거기에 더해 대학의 행·재정 지원권까지도 지자체로 넘기겠다고 한다. 드디어 대학이 원청의 오랜 관리, 감독에서 벗어나 숙원이던 교육의 자유를 누리며 자율에 입각한 고등교육의 장을 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먼저 시기적으로 좀 수상쩍다. 이미 신자유주의는 경제에서건, 교육에서건 한물간 정책인 데다, 지금은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들이 저마다 교육부에 구조요청을 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살려달라고 SOS를 보내는데 묶인 밧줄 풀어 줄테니 실력 발휘해서 헤엄쳐 건너가라는 식이다.

내용은 더 수상쩍다. 정원조정권은 아마도 대학이 가장 열망하던 자유일 것이다. 뽑고 싶은 학생을 마음껏 뽑아 자유롭게 가르치고 싶다는 이 오래된 열망은 이제라도 대학의 부흥을 가져올 것인가? 실제로는 교육부가 학과정원 조정의 걸림돌을 치워줌으로써 학과들 간의 정원을 사수하려는 생존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특히 인문사회계열 전공의 경우 대부분이 정원감축이나 통폐합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마치 상시적인 해고 위협에 시달리는 노동자처럼 앞으로는 학과도 교수도 언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지 알 수 없다. 가뜩이나 학령인구 감소로 주눅이 든 비수도권 대학으로서는 그야말로 자유로이 ‘해쳐모여’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물론 이런 식의 의자놀이에는 항상 의자 수가 부족한 법이다.

게다가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지자체가 신산업을 추진할 때 대학이 파트너가 돼야 한다”며 대학이 지자체와 신산업 발전에 협력할 수 있도록 시·도 지자체에 대학운영 전반의 권한을 이양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지방대가 지역특성화 산업 관련 재정지원을 받으려면 지자체장과의 관계를 잘 다져놔야 할 것이다.

대학의 연구력이 임기가 정해진 지자체장의 교체주기만큼이나 짧아질 뿐 아니라 이번에는 대학이 교육부가 아닌 시·도 지자체장의 변덕에 휘둘리게 될 수도 있다. 잘못하면 구관이 명관이라는 한탄이 나올 것이다.

더구나 학령인구 감소라는 상황에서 보자면 교육부가 결국 지방대의 명운을 지자체로 떠넘겼다는 의심도 가능하다. 여기에 재정이 빈약한 지자체가 기초학문에 관심을 가질리 만무하니 대학교육의 산업화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비수도권 대다수 대학이 직업교육센터가 되거나 아니면 유망한 전공쪽으로만 학문이 쏠린 기이한 모양새를 띄게 되고, 수도권 대학만 덩그러니 남아 그나마 대학구실을 하게 된다면 한국은 얼마나 기형적인 국가처럼 보일 것인가. 

이것은 자유가 아니다. 자립의 힘을 키워줘야 할 때는 성장하는 청소년기이지 몸이 병들었을 때가 아니다. 골병이 들어버린 대학에게 뒤늦게 주어지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시들어버린 대학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다각도로 돌봐줘야 할 때다.

박혜영 논설위원
인하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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