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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연구소를 찾아서_고고학적 한국학 이끄는 浙江大學 한국연구소
해외연구소를 찾아서_고고학적 한국학 이끄는 浙江大學 한국연구소
  • 정두음 절강대
  • 승인 2006.06.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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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韓·中 뗏목교류, 실천으로 고증

▲절강대학 ©
1993년 세워진 중국 절강대 한국연구소(소장 심선홍 교수)는 겸직연구원 24명, 특별연구원 16명으로 구성돼있다. 유럽과 미국의 한국학연구소에는 많은 한국 연구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데 비해, 여기는 대다수가 중국인 연구자이고 한국인으로는 필자가 유일하다. 중국내 타 대학, 한국의 대학, 학술연구기관과 활발히 교류하고 발표논문들을 수록한 ‘한국연구총서’는 학술진흥재단의 후원 아래 매년 중문판으로 현재 38권까지 발행됐다.

전세계적으로 한국학 전문 연구소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한국학은 특성이 다르다. 미국 버클리대, 하와이대, 콜럼비아대, 하바드대의 한국학연구는 언어를 비롯해 역사일반, 군사, 당대정치, 한반도문제 등에 집중하고, 캘리포니아주립대는 한국교포사회연구 등을 중점적으로 한다. 영국 런던대의 ‘School of Oriental & African Studies’는 언어, 예술, 불교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九州대 한국연구센터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더불어 산업경영에 관한 연구, 농업과 일한 경제위기 관리시스템 비교연구 등에 집중한다. 또한 天理大의 조선학회는 이미 1950년에 결성돼 언어를 중심으로 한국문화를 연구한다. 중국 북경대의 한국연구소는 한국의 당대 정치, 외교, 경제 등에 초점을 두고 연구하고 있으며, 상해 복단대 한국연구소는 근현대 한·중 관계사에 많은 역점을 둔다. 이에 비해 절강대의 한국연구소는 과거 한·중간의 교류에 있어서 실제적인 사건을 직접 고고학적 발굴 등 체험을 통하거나 방법론을 바탕으로 연구 분석하고 있다.

그 예로서 첫째, ‘신라의 해상왕-장보고와 절강성’이라는 주제 하에 장보고가 중국과 해상무역을 했던 商道루트를 직접 탐험했다. 제1차 한중 뗏목표류 학술탐험활동은 1996년 7월 절강성 舟山을 떠나 항해했으나 도중 태풍을 만나 목적지인 한국의 인천항이 아닌 중국 산동성 석도에 도착했다. 제2차 뗏목표류활동은 1997년 6월 15일 절강성 주산을 출발, 결국 성공적으로 목적지인 인천항에 7월 8일 도착했다. 이것은 중국의 강남과 한국 양국간의 해상교류가 정상적인 배(船)를 사용하기 전에 뗏목부터 시작됐음을 고증적인 방법으로 실천을 통하여 생생하게 입증한 것이다.

둘째는 고려의 의천 대각국사와 항주의 慧因禪院이다. 이 사찰에서 의천은 약 1년간(宋대, 1085년) 체류하면서 求法을 수행했고 고려로 귀국한 후 이 사찰에 납헌해 일명 ‘고려사’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이 절이 태평천국난 때 소각돼 최근 연구소의 적극적인 자료수집과 연구 분석으로 의천대사를 기념하기 위한 혜인선원-고려사(임시명칭)가 2006년 가을 항주 시내에 복원될 예정이다.

셋째는 한국독립운동 연구를 위한 국제학술 심포지엄이 본 연구소 주최로 한국민족운동사 연구회와 한국국가보훈처 지원 하에 한·중 공동으로 개최됐다. 한·중 전문연구가들에 의해 수집된 자료를 토대로 연구된 논문에서 연구된 실적을 근거로 상해의 독립기념관이 문을 열었으며, 이어 항주시내 중심지에 2007년 하반기 임시정부 구 청사 기념관이 문을 열게 된다. 연구소 자료실에는 한·중 법인단체 혹은 개인으로부터 기증받은 다수의 귀중서적을 소장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는 한국의 전해종 前 서강대 교수가 일생동안 수집한 연구서적을 연구소에 기증했다. 이 외에도 ‘고려대장경’을 비롯해 한국서적 약 9천권, 중문판 서적 6천여권, 기타 중외 잡지 31종이 비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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