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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편 지식인은 ‘추앙’뿐…반지성주의 해방일지
우리 편 지식인은 ‘추앙’뿐…반지성주의 해방일지
  • 김재호
  • 승인 2023.01.11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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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반지성주의』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32쪽

차고 넘치는 전문 지식인에 대한 경멸과 증오
신앙적 확신·성찰 불능·적대적 표현이 그 요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0일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언제부터인가 ‘반지성주의’는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고 있다. 진보·보수 각자의 입맛에 맞게 요리돼서 말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식인의 사유와 대안 모색이 사라지는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갈한 바 있다. “사람들은 공감에서 힐링을 하고, 재미에서 힐링을 하고, 같은 편이라고 확인하면서 힐링을 하고, 수려한 문장에서 힐링을 한다.”, “대학의 강의도 명강의는 재미있는 강의이고, 내가 생각하기보다는 선생님이 대신 생각해주는 강의이다.”, “감성과 힐링과 자극과 공감만이 넘치는 사회를 ‘반지성주의 사회’라고 한다.”(「‘반지성주의 사회’ 경계해야」, <경향신문>, 2019년 1월 10일자)

 

 

반지성주의는 나의 힘?... 편 가르기가 주는 이익

최근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신문방송학)는 『반지성주의』에서 그 개념과 왜 사람들이 ‘반지성주의는 나의 힘’이라고 외치는지 분석했다. 강 교수는 반지성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기록의 차원에서 ‘나의 해방일지’를 썼다고 밝혔다. 책의 목차만 보아도 그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알 수 있다. 왜 대중은 반지성주의에 매료되는가?(제1장), 탁현민이 연출한 문재인의 ‘이미지 정치’(제2장), 민형배의 ‘위장 탈당’은 ‘순교자 정치’인가?(제3장), 왜 윤석열과 김건희는 자주 상식을 초월하는가?(제4장).    

반지성주의는 “지식인에 대한 경멸과 증오”를 의미한다. 이 용어는 미국 컬럼비아대 역사학을 가르쳤던 리처드 호프스태터(1916∼1970) 교수가 『미국의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1962)에서 처음 사용했다. 강 교수는 반지성주의를 “이성적·합리적 소통을 수용하지 않는 정신 상태나 태도”로 정의한다. 

특히 강 교수는 반지성주의의 3대 요소로 △신앙적 확신 △성찰 불능 △적대적 표현을 제시했다. “신앙적 확신은 이미 어떤 사안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정답’을 갖고 있는 상태, 성찰 불능은 그로 인해 성찰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소통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상태, 적대적 표현은 자신의 ‘정답’을 실천하기 위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적대적으로 대하면서 욕설과 인신공격도 불사하는 공격적 태도를 말한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반대편 전문가와 지식인이 매도의 대상이 되는 현상을 지적했다.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면서 편 가르기는 심해졌다. 강 교수는 “전문가와 지식인은 디지털 혁명이 촉진한 부족주의적 편 가르기에 흡수됐다”라며 “무슨 말을 하건, 반대편 전문가와 지식인만 매도의 대상일 뿐 우리 편 전문가와 지식인은 추앙의 대상이다”라고 적었다. 아울러, 그는 “반대편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발산하는 능력이 뛰어난 우리 편 논객들에겐 무한대의 ‘궤변 면책특권’이 주어졌으며, 그들은 같은 부족 진영 내에서 부족원들의 사랑과 존경까지 누리는 정신적 지도자의 반열에까지 오르게 되었다”라고 비판했다. 

현실 정치야말로 반지성주의의 난장판이다. 강 교수는 “문재인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지런한 대통령이지만, 이 좋은 미덕은 주로 ‘이미지 정치’를 위해서만 발휘되었다”라고 분석했다. 그 중심엔 탁현민 전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이 있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부터 2020년 정은경 질병관리청 청장 임명 등 이미지만 난무하고 지성주의는 부족했다는 비판이다. 

현 정부 또한 반지성주의의 극치다. 강 교수는 여성 혐오적 편견은 경계하면서도, 자주 상식을 초월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지적했다. 지난해 발생했던 대통령 취임식 초청 명단 의혹과 대통령 동선 공개 논란 등은 그런 예이다.

반지성주의가 현실이라고 해서 절망만 할 순 없다. 강 교수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반지성주의가 흘러넘치는 세상일망정 그곳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라는 점을 긍정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좋을 게다. 적어도 우리의 행복을 위해선 말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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