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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산책
  • 최승우
  • 승인 2023.01.0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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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은 지음 | 교유서가 | 80쪽

“그것은 일종의 궤도이탈, 무방향성,
삶의 에너지를 응축시키는 일이었다.”

온전한 삶에 이르기 위한 자기 돌봄의 분투

200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소외된 사람들의 내밀한 고통을 특유의 환상적 장치와 상상력으로 예리하게 보여주었던 김이은의 신작 소설집 『산책』이 출간되었다. 등단 20년의 작가 이력을 쌓는 동안 그의 작품 세계는 조금씩 변모했는데, 이번에 선보이는 소설집에서는 「산책」과 「경유지에서」라는 두 편의 단편을 통해 물질에 대한 집착과 우리 안의 뒤틀린 욕망을 다룬다.

작가는 『산책』에서 집에 대한 우리 안의 물질적 욕망을 응시하는가 하면(「산책」), 진정한 관계가 갈수록 더 피곤하게 느껴지는 세상에서 타인이라는 가능성을 아직도 여전히 믿어도 되는지 묻는다(「경유지에서」). 두 작품 모두 집이 세상에 맞서 바리케이드를 친 일종의 요새가 되어가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 또한 갈수록 관계의 점도(粘度)가 희박해지는 세상을 응시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작가는 닮은꼴의 두 소설 속 인물들의 권태롭고 무기력한 일상을 섬세한 언어로 묘파하며 우리가 사는 현 시대를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시대로 진단한다. 온전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일상을 부유하는 삶의 비극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소설의 시대는 쪼그라들었어도 여전히 작가들은 어딘가에서 스스로의 최선을 다해 소설을 쓰고 있다. 누군가 보아주기를 기다리며 붙박여 흔들리는 후미진 곳의 꽃 한 송이 같다. 인적 드문 그곳에서 자그마한 향기를 뿜어낸다. 크고 화려하고 거대한 세상에서 참으로 보잘것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 막다른 길에 부딪혀 길을 찾지 못할 때 꽃 한 송이의 작은 향기가 위로가 되리라 믿는다. _「작가의 말」에서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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