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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검은 고양이
  • 최승우
  • 승인 2023.01.03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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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 지음 | 교유서가 | 84쪽

“분명히 파란빛을 내뿜고 있었다.
야수에게서 볼 수 있는 그런 눈빛이었다.”

사실적 허구와 환상적 현실 사이에 표류하는 진실

세상에는 엄청난 집필 속도로 끊임없이 새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다음 작품이 나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게 만드는 과작(寡作) 작가들이 있다. 백건우 소설가 이야기다. 1988년 제1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고, 1997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가 첫 소설집 『검은 고양이』로 돌아왔다. ‘사이버소설을 본격문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획기적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던 첫 장편 『사이버제국의 해커들』(1998) 이후 24년 만의 단행본 출간이다. 현실과 허구를 교차하며 소설적 진실을 좇는 단편 「검은 고양이」와 「쥐의 미로」 두 편의 소설이 담겼다. 두 소설의 인물들은 각자 상황은 다르지만 모종의 비밀과 마주하고 진실의 심연에 가닿으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골에서 이십 년째 생활하며 만화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책날개에서 “해마다 겨울부터 봄까지 칩거하며 장편소설 한 편씩을 쓰고 있는데, 누군가 봐주리라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쓰는 즐거움으로 시간을 보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워낙 과작인 작가의 유독 더딘 걸음이지만 그 발자국은 여전히 깊고 단단하다. 긴 시간 차곡차곡 눌러 담은 그의 웅숭깊은 이야기가 수줍게 말을 걸어온다.

문단 말석에서 선배, 동료 작가들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는 건 아닐까 늘 걱정하며, 발표할 지면이 없어 하드디스크 속에 파일로 쌓아둔 원고를 가끔 뒤적이며, 내가 ‘소설가’라는 사실을 의심하면서 서 있는 자리가 어색해 주춤거렸다. 경기문화재단의 배려로 써놓은 소설 가운데 두 편을 세상에 드러내면서, 내 작품을 읽을 독자들을 생각하면 기쁘면서 불안하다. 그래도 좋다. 원고가 하드디스크 속에 갇혀 있는 것보다, 욕을 먹는 편이 백 배, 천 배는 더 기분 좋은 일이지 않은가. _「작가의 말」에서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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