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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올곧은 말’을 사회에 전파하는 교수신문이 되기를
선비의 ‘올곧은 말’을 사회에 전파하는 교수신문이 되기를
  • 김병기
  • 승인 2023.01.0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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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교수신문에 바란다

“<교수신문>은 더 이상 교수들만의 신문으로 남지 말고 신념을 가지고 올곧은 선비의 바른 말을 대중에게 전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야 한다. ‘대중의 고전화’를 실행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하고, ‘대중적인 것’ 중심의 문화 흐름을 ‘고전적인’ 방향으로 바꾸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가 직접 쓴 서예이다. ‘천인지낙낙, 불여일사지 악악(千人之諾諾, 不如一士之諤諤)’는 『사기』「상군열전(商君列傳)」 에 나오는 말이다. “천(千) 사람이 옳다고 여겨 ‘대강하는’ 좋은 말은 한 사람 선비의 ‘거리낌 없는’ 올곧은 말만 못하다”라는 뜻이다. 김 교수는 올곧은 선비의 바른 말이 필요한 시대라고 지적했다. 특히 정론으로서 교 수신문 역할을 강조했다. 사진=김병기

“천인지낙낙, 불여일사지악악(千人之諾諾, 不如一士之諤諤)”이라는 말이 있다. “천(千) 사람이 옳다고 여겨 ‘대강하는’ 좋은 말은 한 사람 선비의 ‘거리낌 없는’ 올곧은 말만 못하다.”라는 뜻이다. 『사기』 「상군열전(商君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아무 말 대잔치’, ‘아무 말 경연대회’라는 조롱 섞인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로 사람들이 자신에게 이롭겠다 싶으면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아무 말이나 해대는 세상이 되었다. SNS에는 터무니없는 거짓말들이 횡행하고 사람들은 그런 거짓말을 퍼 나르는 일을 마치 오락처럼 즐기고 있다. 

게다가 일부 언론들은 자기 회사의 입장에 맞는 기사만 골라서 확대 재생산하는 보도를 스스럼없이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진실이 호도되고 사실이 왜곡되는 현상이 날로 심각해지면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말을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런 정보를 근거로 무엇이든 다 알고 있는 전문가인양 말하곤 한다. 진짜 전문가인 이 시대의 선비가 하는 얘기는 오히려 소외당하고 대중들끼리 “그래, 맞아, 맞아”하며 맞장구치는 얘기들이 더 설득력을 가지고 사회에 퍼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국민의 의견은 극과 극으로 나뉘고, 국가나 민족을 위해 국민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주장이나 논의도 각양각색이고 횡설수설이다. 게다가 정부가 내세우는 법치의 척도도 불명확·부정확한 경우가 많아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가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다 같이 바보가 되어가는 ‘중우(衆愚)’ 현상과 거짓말이 진실을 이기는 ‘삼인성호(三人成虎)’의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확실한 근거도 신념도 없이 대중이 쏟아내고 있는 이런 저런 천 마디의 말보다는 올곧은 선비의 바른 말 한 마디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인류의 먼 미래를 내다보며 목에 칼이 들어와도 거리낌이나 굽힘이 없이 올곧은 말을 함으로써 국민들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 선비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인 것이다. 

그런데 정작 말을 해야 할 진정한 선비들은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숨어서 지내는 은둔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세상이 이미 선비의 바른 말을 알아들을 것 같지도 않고 알아들으려 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그저 조용히 지내는 것이 명철보신(明哲保身)의 길이라는 생각으로 은둔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아무리 올곧은 선비가 나선다고 해도 잘못 흐르고 있는 세상의 강물을 바로 잡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일찍이 항일시대에 선비의 답답한 신정을 “광상다시욕만하(狂想多時欲挽河)” 즉 “헛된 일, 미친 짓 인줄 알면서도 나는 왜 문득문득 세상의 강물 줄기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 생각을 하는가!”라고 한탄했던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 1982∼1956) 선생처럼 그저 홀로 한탄할 뿐 선비의 올곧은 생각을 세상에 내보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만 볼 것인가? 나는 <교수신문>이 당당한 언론의 힘을 가지고 올곧은 선비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뭇 언론들이 자기 회사의 이익에 부합하는 기사를 써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교수신문>이 나서서 올곧은 선비가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언로를 열어주고, 선비의 올곧은 생각이 사회에 보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교수신문>은 더 이상 교수들만의 신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바른 말과 바른 생각을 전하는 국민의 신문으로 거듭나야 한다. 구독자의 범위를 전 국민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올곧은 교수들이 국민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해야 할 때인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문화의 기저를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자는 의미의 ‘대중화’에 두어 왔다. 인문학의 대중화, 고전예술의 대중화, 서예의 대중화. 그러나 보니 이제는 지나친 대중화로 인하여 본질이 왜곡되는 경우가 허다하며, 문화의 대부분이 통속화, 세속화하고 있는 점도 적잖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대중화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대중으로 하여금 고전의 중요성과 전문영역의 매력을 이해하게 하는 대중의 ‘고전화’나 ‘전문화’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야 할 때이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치 않다. 유치원 어린이들마저도 통속적 가사의 트롯 풍 노래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어린이에게는 동요를 부르게 하자”는 주장을 할라치면 금세 ‘꼰대’소리를 들어야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세계문학명작의 줄거리만 파악하기 보다는 진중하게 책을 읽자.”는 말을 해도 ‘나 때’ 타령이라는 핀잔을 들으며,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 역사를 바로 보자는 말을 하려고 ‘국가’나 ‘민족’이라는 단어만 꺼내도 ‘국뽕’으로 몰아붙이는 판국이다. “국가의 장래를 위해 더 이상 수도권 인구 집중은 막아야 한다.”는 말을 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숙맥 취급을 당해야 한다. 어떤 분야에서도 선비의 바른 목소리가 힘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집단지성의 힘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이제 <교수신문>은 우리 사회에서 올곧은 집단지성의 힘을 모으고 또 보여줘야 한다. 올곧은 선비의 의견을 모아 세상의 흐름을 바꾸려는 “광상다시욕만하(狂想多時欲挽河)”의 마음으로 운동을 전개해야 할 때이다. 다수 대중의 ‘낙낙(諾諾)’한 의견이라는 이유를 들어 중우(衆愚)로 치달아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올곧은 선비의 ‘악악(諤諤)’한 말의 가치를 인정하고 따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교수신문>은 더 이상 교수들만의 신문으로 남지 말고 신념을 가지고 올곧은 선비의 바른 말을 대중에게 전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야 한다. ‘대중의 고전화’를 실행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하고, ‘대중적인 것’ 중심의 문화 흐름을 ‘고전적인’ 방향으로 바꾸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 

2023년 계묘년 새해에는 <교수신문>이 나서서 『사기』에 나오는 “千人之諾諾, 不如一士之諤諤”이라는 말의 의미를 구현하기를 바란다. <교수신문>이 앞장서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창출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중국시
서예가·서예평론가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는 중국문화대학교 대학원에서 중국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중국문화학회 회장, 전주한지문화축제 조직위원, 대한민국 서예대전 초대작가, 국제서예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2010년 제1회 원곡서예학술상을 수상했다.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학고재, 2020), 『김병기의 수필이 있는 서예 축원·평화·오유』(어문학사, 2020)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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