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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만 강의하란 법 있나
선생만 강의하란 법 있나
  • 김준우 전남대
  • 승인 2006.06.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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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김준우/전남대·사회학

전남대에 와서 통계학 수업을 하면서, 통계학 수업에 많은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도 가르치기 어려운 과목이라서 더욱 더 그러한 것 같다. 통계학을 수강하기 어려운 것은, 나의 경험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통계학 과목은 지루하고 어려웠다. 그러던 내가 통계의 매력을 조금씩 알게 된 것은 유학시절 한 선생님과 함께 설문조사 연구 과제를 같이 하면서였다. 통계가 전공이셨던 그 선생님은 ‘숫자’를 사랑하셨다. 사실 나는 그리 숫자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강의평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준 것도 통계학 수업이다. 어느 해에는 5명의 학생들만이 수강신청을 하였다. 그때만 해도 규정이 덜 까다로웠었고, 또 도와주시는 분 덕분에 폐강은 모면했다. 하지만, 맥이 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해는 수업준비를 거의 하지 않고 수업을 한 것 같다. 화기애애한 수업시간을 보냈던 것은 확실하다. 학생들과 같이 수업시간에 아이스크림을 먹은 기억이 난다. 한데, 학기가 끝나고 강의평가에서는 이런 얘기가 있었다: “선생님이 좀 더 강의준비를 잘 하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다음 해에는 꼼꼼하게 준비를 하고 강의를 하였다. 한데 내가 학생 때 경험하였던 전형적인 지루한 통계학 강의가 되어 버렸던 것 같다. 강의평가에서도 “그리 좋은 교수법이 아닌 것 같다”라는 얘기가 나왔다. 나는 심각하게 학생들 평가를 받아들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다음 해에는 모험을 하기로 했다. 지루한 전형적인 통계수업의 정반대를 추구하기로 한 것이다. 강의 초반은 통계 패키지인 SPSS의 사용법을 얘기해주는 실습으로 채웠고, 후반은 학생들이 직접 조를 짜서 주어진 주제를 실습위주로 강의하도록 하였다. 강의를 맡은 학생들과는 수업시간 이전에 만나서 강의 방향을 같이 논의하였다. 상의는 같이 하되, 수업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학생들에게 맡겼다. 학생들은 훌륭하게 수업을 진행하였다. 직접 만들어온 삼차원 분포 모형으로 다중회귀분석을 설명하는 수업이 그 중 하나이다. 이번 학기에는 표집이 반복될 때 평균값 분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외국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서 수업시간에 소개한 학생도 있었다. 수업을 듣는 다른 학생들도 신기해하였다.

나의 모험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재미있는 점은 강의실 역학의 변화이다. 내가 수업의 대부분을 이끌 때에는, 언제나 수업태도에 조금씩의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강의할 때는 이러한 문제들이 거의 사라졌다. ‘나도 앞에 나가서 강의하는 사람이 된다’는 생각이 강의실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은 것 같다.    

나는 지난 1년간 통계학 교재를 써나가고 있다. 이제 거의 초고를 끝내간다. 여태까지 수업 내용을 기초로 하고 있다. 학생들과의 대화록인 셈이다. 제목도 절반은 학생이 지어주었다. 강의를 맡은 학생에게 내가 준비한 초고를 프린터로 인쇄해주었는데, 나중에 그 학생이 “즐거운 SPSS이네요”라고 무심코 이야기하였다. 나머지 반은 같은 단과대 선생님이 지어주셨다. 그래서 현재 잠정적인 제목이 “즐거운 SPSS, 풀리는 통계학”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학생들이 SPSS를 많이 즐거워하지는 않는다. 나는 사실 통계학 과목 강의평가 점수에서 학교평균을 넘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통계수업을 괴로워하는 학생이 하나라도 줄어든다면, 이는 큰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학생들이 나의 수업을 통해 자신감을 가졌으면 한다. 또한 즐거운 시간도 가졌으면 한다. 많이 배우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함께 일하는 법도 배웠으면 한다. 이러한 바람을 계속 가지고, 이러한 바람을 현실로 만들어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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