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6 14:10 (화)
복지와 성장, 교육정책의 새로운 이분법?
복지와 성장, 교육정책의 새로운 이분법?
  • 박구용
  • 승인 2023.01.02 08: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딸깍발이_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 전남대 철학과·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교육개혁에 대한 현 정부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왜 공교육이 아이들의 창의성을 살리기보다 죽이는 쪽으로 가고 있나요?”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두 명의 시민이 대통령에게 던진 교육 관련 질문이다. 대통령의 대답을 들어보자.  

“저는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국가의 교육 서비스라고 하는 것은 하나는 복지 쪽이고요, 하나는 성장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아 돌봄부터 중등교육까지는 복지 차원에서 모두가 공정하게 국가의 교육 서비스 혜택을 누려야 하고, 그다음에 고등교육인데요. 고등학교 교육부터 시작해서 대학으로 넘어가는 고등교육은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 대신 간섭하지 않고 자율성을 줘야 합니다. 우리 헌법에도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라고 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 특히 고등교육에 대해서는 지방정부에 권한을 완전히 이양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되면 저는 지금 광역 시도지사와 교육감을 분리해서 선출하는 것보다 러닝메이트로 출마를 하고 지역 주민들께서 선택을 하신다면 그것이 지방 시대, 지방 균형 발전에 훨씬 도움이 되지 않겠나.”  

‘악의적으로 편집했다’는 의심을 안 사려고 대통령 편에서 윤문을 했다. 잡스러운 접속사, 수식어, 의성어를 제거했지만 여전히 어수선하다. 핵심을 추려 일곱 명제로 정리해 본다.

①국가의 교육 서비스는 복지와 성장으로 나뉜다. ②유·초등·중등 교육은 복지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③유·초등·중등 교육은 처지에 상관없이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④고등교육은 국가 경쟁력 강화에 기여해야 한다. ⑤국가는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지원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⑥고등교육 관련 교육부의 권한을 지방정부에 완전히 이행한다. 그러니 ⑦광역 시도지사와 교육감을 러닝메이트로 하는 선거제도를 마련하자.  

교육을 ‘복지와 성장’이라는 두 축으로 설명하는 대통령의 언어는 신선하다. 하지만 두 축을 분리시킨 이분법은 초급 공무원 발상이다. 교육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곧 인권이다. 인권으로서 교육의 권리를 최대한 확장하면 복지의 지평에 들어선다.

유·초등교육부터 고등교육까지 누구나 처지에 관계없이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 복지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은 중학교까지만 교육이 복지라고 못을 박는다. 심각한 문제가 예견된다.

교육은 권리, 곧 성장할 권리다.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성장은 생존경쟁에서 출발해서 자기형성과 디자인에 이르는 전 과정이다. 성장은 혼자가 아니라 서로 함께 하는 것이다. 어제의 교육정책이 하나의 기준으로 적대적 성장을 강요했다면 내일의 교육정책은 학생 각자의 기준으로 성장하는 상보적 길을 제공해야만 한다.

성장 교육을 국가경쟁력 향상으로 환원시키는 대통령의 설명은 오래전 ‘국민교육헌장’을 떠올리게 한다. 더구나 대통령처럼 성장 교육을 고등교육으로 한정시키면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성장의 잠재력은 고등교육 이전에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철 지난 이분법에 기초한 교육정책은 교육만이 아니라 복지도 성장까지도 모두 불구로 만들 위험이 크다. 

지방정부에 고등교육 권한을 완전히 이양하고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를 존중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대통령이 고등교육에 고등학교 교육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명확하게 알았으면 좋겠다.

디테일에 약한 지도자는 속기 쉽다. 속는지도 모르고 속는다.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베버가 말했듯이 국기문란을 막으려면 대통령 스스로 개별 사안에 대해 열정을 가져야 한다. 알려고 하는 열정만이 이분법을 넘어서는 힘이다.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전남대 철학과·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