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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대응력 상실한 대학축제 유감
사회적 대응력 상실한 대학축제 유감
  • 권성우 숙명여대
  • 승인 2006.06.07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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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축제와 지성

▲80년대 대동제의 모습 ©

5월말로 각 대학의 봄 축제가 모두 끝났다. 축제는 한마디로 대학문화의 꽃이다. 한 시대 대학의 문화적 감각과 풍속, 사유, 지성, 유행, 가치관 등등이 축제를 통해 가장 자유롭고 열정적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시대 대학의 분위기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축제의 풍향에 대해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두루 알다시피, 대학축제의 풍경은 역사적 맥락에 따라 변화해 왔다. 1970년대의 대학축제는 흔히 쌍쌍파티나 통기타, 트윈 폴리오의 ‘축제의 노래’로 대변되는 서구적이며 낭만적 감성과 유신정권에 대한 저항과 민속가면극으로 대변되는 다소 소박한 역사적 감성이 공존했다고 볼 수 있다. 1980년 5월 이후, 이 땅의 대학축제는 흔히 ‘대동제’로 불리면서 시대와의 불화를 전면화했다. 당대의 현실을 날카롭게 진단하는 수많은 학술제와 비판적인 상상력으로 무장한 역동적인 공연들이 진행되었으며 폐막일은 늘 교문 앞에서 전경들과 대치하면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곤 했다. 이런 의미에서 80년대의 대학축제는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의 수단이었으며, 정치적 계몽의 자리이기도 했다. 보컬그룹과 쌍쌍파티로 대변되는 ‘학도호국단’이 주관하는 공식적 축제행사를 ‘향락축제 거부한다’는 구호 아래 전면 거부했던 80년대 초반의 어느 대학의 풍경은 그 시대 대학인의 축제에 대한 가치관을 인상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이 땅의 대학축제는 급속히 소비자본주의의 물결에 포섭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간 각 대학의 축제를 조금씩 둘러보면서 느낀 점은 시대현실에 대한 성찰을 상실한 유희정신만으로 축제가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즈음 대부분 대학의 축제는 酒店과 응원제, 신세대스타가수의 공연 등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대신 대학인의 사유와 지성을 표상하는 학술제나 현실과 뜨겁게 포옹하는 공연문화는 급격하게 감소하거나 위축되고 있다.

▲2000년대 축제는 신세대 스타가수의 공연 등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물론 지나친 정치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80년대식의 대동제가 바람직하다는 말은 아니다. 또한 진지한 학술제나 현실비판적 공연만으로 축제가 채워지는 것도 다양한 대학문화를 위해 긍정적인 축제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제대로 노는 것이야말로 축제의 중요한 한 축이라고 한다면 발랄한 유희정신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이 시대 대학인의 유희정신과 예술적 감성, 놀이하는 인간으로서의 상상력이 왜 하필이면 대동소이한 무수한 주점문화와 인기가수에 대한 열광으로 표출되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시대 대학축제의 모습에서 소비자본주의에 포섭된 ‘지성의 퇴행’ 현상을 광범위하게 발견한다. 대학인만이 지닐 수 있는 지성과 감성, 현실에 대한 촌철살인의 대응이 조화롭게 응축된 축제를 볼 수는 없는 것일까. 80년대의 축제가 지나치게 비판적 지성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 시대의 축제는 너무나도 일회적 유희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최근 대학축제의 모습은 사회적 대응력을 상실한 이 시대 대학의 풍경과 그대로 겹쳐진다.

최근 한총련 탈퇴를 선언하면서 실용주의 노선을 천명한 서울대 총학생회에 대해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대학생들이 너무 사회의식이 없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학생들이 취직, 공부, 연애 하는 것 말고 나라 걱정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소설가 조정래 씨도 서울대 총학생회의 한총련 탈퇴와 연관하여 최근 대학생들의 사회의식 부족을 비판했다고 한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과자 자판기를 설치하는 것이 총학생회의 공약일 수는 없다.

대학이 현실과 대한 진지한 대응을 포기할 때, 그것은 취직사관학교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 시대 대학이 단순한 취직사관학교로 전락하는 것을 나는 결코 보고 싶지 않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 중의 한 가지는 천편일률적인 축제문화를 현실과의 역동적인 대화 속에서 변모시키는 것이 아닐까. 대학축제를 좀 덕 흔쾌한 마음으로 함께하고 싶은 한 대학선생의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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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교수 2006-06-08 17:32:52
진작 이런 측면에서의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지적을 해 주셨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