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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의 정치경제학을 해명한다 - 김기수 캐나다 메모리얼대 교수와의 대화
한국교육의 정치경제학을 해명한다 - 김기수 캐나다 메모리얼대 교수와의 대화
  • 교수신문
  • 승인 2001.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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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24 17:32:56
한국의 교육은 위기를 넘어 이미 죽음직전의 상태이다. 누구나 교육문제를 말하지만, 속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교육 위기의 구조를 역사적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김기수 캐나다 메모리얼대 교수의 시각이 돋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본지 199호 참조) 그는 ‘정치경제학적 입장’에서 교육문제를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교육에 대한 기능주의적 접근을 벗어나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교육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의 정부 초기인 지난 1998년 입시문제의 해결방안으로 ‘2002학년도 이후의 입학제도 개선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개선안은 정책당국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캐나다의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교수이면서 한국의 교육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그는 “한국 교육의 정치경제학을 해명하는 것”을 필생의 작업으로 삼고 있다. 그를 ‘신자유주의자’로 분류하는 시각에 대해 김 교수는 “이데올로기적 낙인찍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현재 대진대 교수를 겸임하면서 교육활동가들을 상대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는 그를 만나 보았다.
● 일시 : 2001년 7월 12일
●장소 : 대진대 북방연구소
●대담·정리 : 김재환 편집차장

△ 대진대에서 교육문제에 관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이 참석하시나요.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은 대진대 북방연구소입니다. 북방정책은 화해와 협력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의 경우 입시경쟁에 의존하는 교육체제 속에서 화해와 협력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육과 북방문제는 심층적 수준에서 서로 연결되지요. 교육문제를 정치경제학적으로 해명하는 이 세미나에는 교육운동가, 정책담당자, 교육학자, 교육문제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이 참석하고 있습니다. 주말 동안 국가와의 관련속에서 교육문제를 사고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능주의적 처방에 그친 교육개혁

△ 교육문제를 국가와의 관련속에서 파악한다는 것은 교육제도를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 규정한 알뛰세의 이론을 연상시킵니다. 왜 국가라는 틀을 대입시켜야 한다고 보십니까.
“한국은 공교육이라는 말을 잘못 쓰고 있습니다. 공교육은 국가가 학교를 세워 무료 또는 염가로 교육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으로 공립 혹은 국립학교를 말합니다. 오늘날 어느 나라나 국가가 교육에 개입하고 있습니다만, 한국의 경우 국가개입은 크고도 넓습니다. 국가개입으로 교육이 크게 변화합니다. 교육학자나 정책당국 모두 입시제도와 같은 부분적 제도만을 보고 있고 기능주의적 처방을 내리고 있습니다. 근대사회의 문제는 정치경제학적 관점을 취하지 않으면 설득력 있는 논리전개가 어렵습니다. 한국은 국가의 통제와 개입에 의해 교육위기가 심화되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개입해왔다고 보십니까.
“현재 공교육위기라는 말은 실제로는 ‘학교교육의 위기’를 뜻합니다. 여기에는 공사립 학교 모두가 포함됩니다. 사교육은 개인이 사재를 털어 교육기관을 세우고 자신의 교육관에 따라 독자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죠. 한국의 사립학교는 사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모든 것을 국가가 개입해 통제하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사립학교는 각종 보조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독립할 생각도 안하고 있습니다. 교과서조차도 국정교과서를 쓰고 있고, 교과과정도 국가가 정한 틀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학생수급, 교육과정, 교과서, 등록금 등에 관한 권한이 없다면 사립학교가 아닙니다. 결국 공교육 위기는 학교교육의 위기이고, 이는 국가개입을 통한 교육을 통해서는 더 이상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교육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교육기관의 기능 상실한 ‘사립학교’

△ 근대적인 교육의 정착을 위해 국가의 개입은 불가피했던 것 아닐까요.
“박정희 시대부터 보죠. 1958, 9년에 국민학교 취학률이 96.7%까지 올라가면서 국민학교의 보통교육화가 성공했습니다. 취학률만 늘어났지 시설이나 교사수는 절대 부족해서 노천수업, 2 ∼3부제 수업, 학급당 학생수가 1백여명에 육박하는 사태가 벌여졌죠. 그뒤로 김영삼 정부때까지 교육예산의 대부분이 시설, 교사 확대에 들어갔습니다. ’61년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경제개발을 추진하고, 교육에 대한 재정지출을 줄이기 위해 대학구조조정을 실시합니다. 학과통폐합, 정원축소가 이뤄졌죠. 그리고 중학입시와 대학입시를 국가가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높아진 국민학교 취학률 때문에 중학입시는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죠. 이때부터 교과서내 출제, 객관식 사지선다형이 등장하고, 모의고사 등이 생기면서 전국이 석차경쟁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입시경쟁은 국가가 국가시험제도를 통해 촉발시킨 것이죠. 중학입시를 감당 못하는 상황이 되자, ’68년부터 중학무시험전형이 실시됐습니다. 70년대 말에 이르러 중학교의 1백% 취학이 이루어졌습니다. 국가에 의한 경쟁체제는 도저히 가망없는 학생들까지도 대학에 가야한다고 부추기면서 ‘진학드라이브’를 강화시켰습니다. 사립학교에 국가가 석차에 따라 학생들을 배정해주면서 사립학교는 공교육에 편입되었죠. 사립학교는 학교운영이 쉬워졌죠. 국가가 모든 것을 해주니 교육과정, 교과연구, 학생충원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게 된 거죠. 그 뒤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가 늘어 이제 고졸자의 거의 전부가 대학을 가는 상황입니다. 98년 현재 고졸자의 83.7%가 대학에 진학하고 있습니다. 캐나다는 3명중 한명, 유럽은 20∼30% 정도에 불과합니다.”

△ 교육위기에는 국가의 개입과 통제만이 아니라 다른 요인들도 작용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학교폭력이나 왕따 등의 현상은 외국에서도 두루 나타납니다. 이것은 공교육 자체가 가진 특성이기도 합니다. 미국은 예전에 초등학교만 마쳐도 취업이 가능했지만, 취업을 위한 필수학력은 점점 높아져가고 있습니다. 학교가 주는 보상이 줄어든 것이죠. 학교의 운영도 공장을 운영하듯 기계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허버트 긴티스라는 교육학자는 공교육의 문제는 ‘관료주의’에 있다고 말합니다. 한국의 경우 거기에 더해 각 학교의 모든 프로그램이 똑같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특성이 없죠. 요컨대, 공교육 자체의 문제도 한 원인이지만, 한국의 경우 국가의 지나친 개입과 통제가 다양성이 없는 단조로운 교육풍토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는 거죠. 학생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문화나 흥미를 유발시키는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국가의 개입을 줄이고 사학에 전면적인 자율을 준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학비리는 사학자체가 책임 있게 운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 아닙니까.
“사립학교를 먼저 비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립학교는 장기적인 국가주도정책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희생자입니다. 국가의 개입과 통제로 인해 사립학교의 자율권이 상실돼 독자적인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내지 못한 점이 근본원인입니다. 그 결과를 두고 문제삼는 것은 잘못된 것이죠. 한국의 대학등록금은 선진국에 비해 결코 낮지 않습니다. IMF 이전의 한국대학 이공계의 등록금은 미국의 사립대 수준에 육박합니다. 국가에서 정원과 등록금을 통제해 학생과 등록금이 자동 공급되니까 사립대는 양질의 교육을 할 필요가 없죠. 교육과정을 개선해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거죠. 시설투자 늘리고, 교수월급을 높여 유능한 교수를 뽑을 이유가 없습니다. 사학비리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국가시험-대학서열체제’가 개혁의 핵심

△ 교육개혁의 핵심이 입시문제로 귀착된다는 말씀이시군요.
“입시문제만을 떼어놓고 보면 안됩니다.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의 개혁도 근본적인 구조를 고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거죠. 입시경쟁은 국가시험이라는 측면, 대학간 서열체제라는 두가지 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열체제는 영구불변입니다. 서울대는 언제나 일등이고 순위는 고정되어 있죠. 왜냐하면, 서열은 대학교육의 질적 수준에 따라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국립/사립, 서울/비서울 등 형식적 요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서울대에 진학하는 학생이나 학부모는 거기서 뭘 가르치는지, 교수가 누군지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일류대라니까 가는 거죠. 이렇게 고정된 서열체계에서 국가가 시험을 통해 상위대학부터 아래로 학생들을 일률적으로 배치하는게 현재의 입시제도입니다. 연구중심/대학원중심대학이라는 아이디어는 대학입시경쟁을 대학원입시경쟁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것에 불과합니다. 막대한 금액을 투입해 서울대, 연고대의 학부과정을 줄이고 대학원중심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 교육부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이 제도를 시행하지 말 것을 건의했습니다. 그러나 듣지 않았죠. 이해찬 장관이 연구중심대학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유는 돈을 대거 투입해 몇 년안에 하버드 수준의 대학을 만들면 정권의 치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을 겁니다. 동경대의 하스미 총장은 홍콩의 아시아위크지가 대학평가를 위해 자료를 보내달라고 했을 때 거부했습니다. 서울대 총장은 서울대가 세계 몇등이라고 자랑하고 다니죠. 여러모로 대조됩니다. 이해찬 장관은 정원정책, 등록금 정책 등은 고치지 않고, 무시험전형제도 하나만을 시행했죠. 그러나 그것도 방법만 다를뿐, 또다른 석차경쟁이죠. 면접, 사회봉사의 점수화니까요. 석차경쟁을 없애기 위해선 대학들이 점수에 따라 학생을 받아봤자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게하는 것이죠. 수능시험을 쉽게 출제하는 겁니다.”

‘연구중심대학안’은 또다른 입시경쟁

△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누구나 인정하고 있지만, 개혁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총체적으로 풀기 위해선 난관이 많습니다. 거대한 관료체계를 구축한 교육관료들도 원하지 않고, 기득권을 가진 국립대 교수/총장이나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교사, 돈많은 학부모 누구도 원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현재 한국교육의 상황은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정부와 학부모가 교육에 투입하고 있는 돈은 유네스코 자료에 의하면 캐나다 다음으로 2등입니다. 노동연구원의 자료에 의하면, 월수입 40만원의 노동자도 과외를 시키고, 1백만원 소득자도 40만원을 교육비로 쓰고 있습니다. 정부 예산의 24%가 교육비죠.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추세속에서 국민국가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있고, 유엔기구는 한국의 입시교육에 대해 공식항의하고 있는 마당입니다. 국가에서 학교에 돈을 투자하면 국제금융기구에서 돈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돈을 더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고쳐야 합니다. 사교육부문, 즉 민간부문은 시장원리에 맡기고, 공공부문인 공교육은 시장원리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사교육의 명확한 구분을 통해 교육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 사교육부문인 사립학교에 시장원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은 신자유주의로 해석될 소지가 많은데요.
“공사의 구분은 소유주체에 있습니다. 칠레는 교육개혁을 하면서 기존의 사립학교를 공교육에 편입시키거나 독립시켰죠. 독립된 사립학교에는 국가가 재정을 투입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공교육기관에 재정투입을 늘리는 거죠. 개혁을 통해 낭비되는 돈, 예컨대, 사립학교에 들어가는 돈, 거대한 관료체제를 운영하는 데 드는 돈 등을 공교육에 투자하면 더욱 내실 있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내 입장을 신자유주의라고 평가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겁니다. 이데올로기에 대해 찬성 혹은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것은 학자로서 자기를 속박하는 겁니다. 국가주도의 교육정책 때문에 피해를 입는 것은 오히려 하층민입니다. 교육비로 엄청난 돈을 쓰고 있는 거죠. 이 체제를 바꾸어 불필요하게 대학갈 필요가 없게 하고, 제대로 된 공교육 체제에서 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게 더 중요합니다. 입시경쟁체제, 부모의 희생을 강요하는 체제를 그냥 놔두는 것이야말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 약력 : 1946년 전북 장수 출생으로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알버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메모리얼대의 정교수로 재직중인 그는 교육의 정책적, 철학적 주제에 관한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국민의 정부 초기 교육개혁안의 입안과정에 참여했으며, 여름 방학동안 일시 귀국해 현재 경기도 포천의 대진대 북방연구소에서 교육문제에 관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 출간된 저서로는 『자녀교육을 위한 철학』 『아직 과외를 그만두지 마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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