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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민족주의의 주인공, 파우스트의 탄생
오만한 민족주의의 주인공, 파우스트의 탄생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6.06.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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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그는 누구인가?』 이인웅 엮음 | 문학동네 | 526쪽 | 2006

“나란 존재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절규하며 기독교적 속박에서 벗어나려 했던 요한네스 파우스투스((1460/70~1536/39년)를 다룬 작품들은 수없이 많다. 1587년 ‘요한 파우스트 박사 이야기’라는 민중판본으로 활자화된 이후, 레싱, 괴테, 레나우, 하이네, 토마스 만 등 80명의 문학가와 들라크루아 등 50여명의 화가의 그림, 슈만의 ‘괴테의 파우스트 장면들’이란 곡을 비롯한 30여명 작곡가의 음악작품, 나아가 수많은 연극과 영화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 ‘파우스트’다.

이 책은 국내 파우스트 연구자들 24명이 정신적 ‘영속’의 대상인 파우스트의 실체에 다가가고자 공동 집필한 것으로 시각과 소재가 다양해 파우스트의 이채로운 면을 보여준다. 특히 괴테 이전/이후로 나뉘어 이전은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삶을 이끌어가려는 불순한 인간이 지배적인 반면, 이후는 독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해 새로운 인간으로 변형된다. 가령, 19세기 전반 낭만주의 세력들에게 파우스트는 ‘활동하는 유능한 인간’으로 그려져 독일인의 본성과 동일화 된다. 반대로 하이네 등 청년 독일파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거부했는데 내면적·신비적 차원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탓이다. 이후 1871년 빌헬름 제국이 건설되면서 파우스트의 내적 모순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새로운 식민지 개척자로서 이미지가 극대화 되며, 20세기 초에는 급기야 파우스트적-독일적 이데올로기로 니체의 ‘超人’ 개념과 결합되기에 이른다. 다시 말해, 제국주의, 오만한 민족주의의 주인공으로 파우스트가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파우스트는 “범죄자”와 “성스런 괴테의 상징세계”로 각각 수용되는데, 특히 동독에선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모범적 영웅으로 그려졌다. 千의 얼굴을 가진 파우스트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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