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19 16:45 (화)
연구자 보호 근거는 ‘저작자’…정규직화 보다는 ‘커먼즈 운동’을
연구자 보호 근거는 ‘저작자’…정규직화 보다는 ‘커먼즈 운동’을
  • 강일구
  • 승인 2022.12.23 13: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구자 권리선언 1주년 학술대회
13개 연구자단체로 구성된 ‘연구자 권리증진과 차별철폐를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지난해 16일 국회 소통관에서 ‘연구자 권리선언’을 발표했다

지난 16일 지식공유 연구자의집을 포함한 11개 연구자단체는 ‘연구자 권리선언’ 1주년을 맞아 연구자 보호 근거를 헌법에서 찾아보고 프레카리아트화 된 연구자의 현실과 대안에 대해 진단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정민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연구자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하는 데 있어 헌법적 근거를 살펴봤다. 그는 헌법에 명시된 ‘학문의 자유’는 자유권적 기본권이라며 연구자 복지를 위한 논리로 활용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사회권이나 청구권처럼 시민이 정부에 특정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 자유를 보장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진 기본권이라는 의미다. 헌법 제22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돼 있다. 정 변호사는 “학문의 자유는 국가가 제도적, 재정적 뒷받침을 하고 이를 요구할 근거가 되기보다는, 자유가 침해받지 않아야 한다는 선언이다”라며 “연구 안전망 마련을 위한 국가의 재정지원 의무 근거로 이를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정 변호사는 헌법 제22조 제2항을 통해 연구자를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헌법 제22조 제2항은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라고 돼 있다. 그는 “연구자는 논문 등의 학문 저작물을 생산하고 해당 결과물에 대한 저작권을 갖고 있기에, ‘저작자’의 범주에 포함된다”라며 “연구자의 권리 역시 이 조항에서 ‘법률로써’ 보호되는 대상이 된다고 해석하는 게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보호 가능성이 있는 연구자 권리의 범위로는 헌법 제22조 제2항을 바탕으로 제정된 ‘예술인복지법’을 참고할 수 있다고 했다. ‘예술인복지법’을 비롯한 예술인 관련 법이 헌법 제22조 제2항에 근거를 두고 있고, 이를 토대로 △예술가가 주체가 되는 예술 활동의 보호 △정부의 예술지원에 차별금지 △예술사업자의  불공정행위  금지제도 확장 △예술가 조합 도입 등을 보장하고 있기에, ‘연구자복지법’ 제정 때도 이 같은 범위 안에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박서현 제주대 학술연구교수는 연구자의 '프레카리아트(precariat)'화를 인정하며 새로운 조직화를 통해 연구자가 겪는 불안정과 불안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한 노동자’를 의미하는 합성어다. 박 교수는 “인구 전체가 프레카리아트화 된 사실이 현실의 중요한 일부로서 이해돼야 하고, 이런 연장선상에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고리가 연구자의 프레카리아트화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임이 제시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연구자의 불안정한 노동에 대한 해결이 사회의 불안정한 노동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박 교수는 이에 대한 대안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커먼즈 운동’이라 제시했다. '커먼즈(commons)'는 공통적인 것의 원리가 현실에 구현된 것으로, 사람들이 재화를 공유하고, 그 재화를 바탕으로 공동으로 생산하며, 생산물을 공동 분배하고, 이 소유‧생산‧분배 과정을 참여자 모두가 함께 결정한 규칙에 따라 운영하는 것을 가리킨다. 대학과 학술생태계 전체를 지식커먼즈로 만들려는 큰 방향성 속에서 보다 많은 연구자들에게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장될 수 있는 새로운 노동시장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박 교수의 제안이다.

박 교수는 오늘날 생산의 영역에서는 구조적으로  비정규직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이런 현실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통해서는 인구 전체의 프레카리아트화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정규직 노동을 정상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도 넘어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프레카리아트 연구자가 겪는 문제를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프레카리아트와 끊임없이 실적을 요구받는 노동자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대학 안팎에서 활동하는 연구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공통의 문제를 결집해 해결하자는 제안이다. 

박 교수는 “연구자 사회주택, 연구자 공제회, 연구자 퇴직연금에 대한 구상 등은 연구자의 불안정한 삶을, 연구자들이 스스로 타개하기 위한 활동이었다”라며 “연구자들이 공통의 문제를 공유하고 공동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임순광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전 위원장은 저작자라는 틀로서 연구자를 보호 받을 수 있다는 정민영 변호사의 의견에 대해 경계했다. 임 전 위원장은 “만약 연구자 권리와 연구자 복지를 연구자의 지적재산권 보장이라는 소유권 논리로 접근한다면 공공성 확대나 카피레프트, 공유의 가치와는 상반되지 않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했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임 위원장의 접근법, 지식재산권을 보장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는 “연구자의 권리에는 공익성·행복추구·권리 확장 등이 포함돼 있어야 사회구성원으로부터 연구자 지원에 대한 동의를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임 전 위원장은 박서현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임노동 관계를 중심으로 연구자의 권리를 증진하는 운동은 지속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이해관계조차 자신의 소속 사업장에서 관철시키려는 노력을 조직적으로 하지 않으면서 정부나 특정 사회집단이 대신해 줄 것이라 기대하긴 어렵다”라며 연구자 조직 대학과의 임노동 관계를 중심으로 조직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13개 연구자 단체는 2021년 11월 ‘연구자 권리선언’을 발표했다. 권리선언의 주요 내용은 ‘연구공간, 자료 접근성, 강의와 교육의 기회 등을 제공할 의무(1항)’, ‘연구자가 생산한 지식을 대중에게 전수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2장)’, ‘학문 공동체에 대한 연구자의 평등한 의결권·피선거권 실현을 위한 제도 마련(3항)’ 등이 포함돼 있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