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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기리는 '절제의 미' 긴장 녹여
딸을 기리는 '절제의 미' 긴장 녹여
  • 황보봉 서울산업대 교
  • 승인 2006.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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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한국의 현대건축_(10) 장소성의 체험 ‘이진아기념도서관’

독립문과 서대문 형무소 등이 위치한 서대문 독립공원 뒤편으로 지상 4층, 지하 1층의 아담한 도서관이 2005년 가을 문을 열었다. ‘서대문구립 이진아 기념도서관’이라는 긴 이름을 지닌 이 도서관은 미국 유학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이진아 학생의 가족이 서울시에 50억 원이라는 큰 기부금을 희사함으로써 이루어졌다.

현상설계공모를 통해 선정된 ‘이진아 기념도서관’은 공공도서관에 개인의 이름이 사용된 최초의 사례이며, 한편으로는 ‘조기유학’과 ‘기러기아빠’로 대표되는 우리 교육계의 씁쓸한 자화상을 넌지시 드러내는 건물이기도 하다.

주요 도로에서부터 멀리 떨어져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이 도서관은 한국근대사의 중요한 장면이 연출된 역사적 장소 독립공원안에 세워졌다. 도서관의 한쪽으로는 일제강점기의 억압과 갈등의 상징적인 장소였던 서대문 형무소의 감시탑과 담장을 향하면서 또 다른 한쪽은 80~90년대 경제발전의 가도에 세워진 고층 주거단지를 마주하고 있다.

형무소의 담장과 아파트의 담장은 완화시키기 어려운 대치의 형국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지만, 이 도서관을 설계한 젊은 건축가는 폐쇄와 소통의 대립적인 대지 주변의 상황을 건축적 언어로 적극 수용하여 두 영역사이에 완충적 성격을 지닌 공간을 만들어냈다. 구립도서관의 외관을 크고 경쾌한 유리패널로 연출한 것이나 목재의 부드러움을 외관에 덧붙인 점, 그리고 실내 중정의 설치로 내·외부 공간의 시각적 연속성을 확보한 점 등은 긴장된 주변 환경의 어색함을 상당히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가져온다.

도서관의 서쪽 파사드(전면)는 상층부의 열람실을 24mm의 두꺼운 대형 겹유리 창으로 외부에 면하게 함으로써 독립문 공원과 시각적으로 연결되는 유기적 소통을 이루도록 했다. 형무소의 담장길이 가져다주는 외부공간의 폐쇄적이고 불편한 이미지를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도서관의 조망 속에 담아냄으로써 도서관내부의 유리창을 통해 비춰지는 형무소의 느낌은 개방적인 것으로 전환된다.

실내는 강철 프레임으로 구성된 지붕과 기둥 그리고 누드 엘리베이터로 구성된 中庭 공간을 사이에 두고 흰색의 콘크리트로 마감된 관리영역과 유리패널로 마감된 열람공간으로 나누어진다. 외관과 내부공간 모두 재료의 물성이 드러나는 통일감이나 일체성을 적극적으로 살렸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려보지만 이질적인 재료들을 어색하지 않게 사용하고 있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북쪽의 인왕산을 향해 시야를 크게 열어두어 천장에서 유입되는 자연광과 함께 유리패널로 마감된 실내의 개방감은 텅 빈 중정공간과 더불어 극대화된다. 유리패널로 피복된 중정공간은 여름에 온실효과가 일어나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건축가는 건물내부의 약간의 불편보다는 주변 환경과 연계한 공간의 구성과 외피에 드러나는 시각적인 조화를 더 염두에 둔 듯하다.

주출입구가 위치한 도로면과 서쪽 입면의 처리는 지나치거나 과장된 몸짓 없이 주변의 환경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로 쪽에 면한 주출입구는 도서관의 차분한 이미지를 흐트리지 않도록 소박하게 처리했으며, 공원으로부터의 진입로는 필로티(건물을 지면보다 높이 떠받치는 기둥) 아래 계단과 경사 램프를 설치해 입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편의를 도모했다.

서쪽 입면이 드러내는 이미지는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명작 ‘사브와 주택’의 디자인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주장했던 근대건축의 5원칙(자유로운 평면과 입면, 연속적인 띠창, 필로티, 옥상정원)을 연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편, 동측 입면의 창을 통해 엿보이는 사무실 내부의 사각기둥은 건축가가 의도하지 않은 듯 도서관의 전체적인 조형적 이미지에는 어색한 노출이다. 진입부의 램프천정은 스테인드 스틸로 마감되어 시간의 흐름을 녹이 스는 정도로 미루어 느낄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이 역시 건축가가 일부러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기억의 상징과 실용적 기능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욕심이 느껴진다.

이 도서관이 지니는 건축적 특징은 청담동이나 파주 헤이리 등지에서 지어진 조형적 성격이 강한 건물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소박하고 절제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이 도서관은 걸출한 명작의 자태를 드러내려 하거나 어떤 정교한 건축적 장치를 설치함으로써 방문객들이 민감하게 반응토록 하는 것보다 숨 막히는 도시공간과 버거운 무게를 지닌 역사의 현장에서 잠시나마 숨통을 트이게 하고 천천히 기억속 잔상들을 음미할 수 있도록 한다.  

▲황보봉 서울산업대 교수 ©
황보봉 / 서울산업대·건축학
필자는 영국 쉐필드대에서 ‘건축의 대안적 전통을 찾아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 ‘도심한옥주거지의 형성과 변화’, ‘휴고헤링의 유기적 건축에 관한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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