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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번역과 번역비평
대학정론: 번역과 번역비평
  • 김인환 논설위원
  • 승인 2006.05.29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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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환 논설위원 / 고려대, 국문학 ©
중국인들은 불경을 번역하는 독특한 방법을 창안하였다. 그것은 최소한 아홉 사람이 공동으로 번역하는 방법인데 아홉 사람이 각각 다른 역할을 맡았다.

1. 산스크리트 말로 된 본문의 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 사람 2. 본문의 구성을 분석하여 읽는 사람이 쉽게 낭독하도록 도와주는 사람 3. 읽는 문장을 듣고 발음의 정확성을 확인하는 사람 4. 산스크리트 단어의 소리를 한자(漢字)로 적는 사람 5. 산스크리트 단어의 의미를 중국어 단어로 옮기는 사람 6. 번역된 단어들을 중국어 문법에 맞도록 배열하는 사람. 7. 번역된 단어와 문장을 본문과 대조하여 검토하는 사람 8. 지루한 부분이나 중복된 부분을 삭제하여 문장을 다듬는 사람. 9. 소루하게 표현된 부분을 부연하여 문장을 마지막으로 다듬는 사람.

이러한 공동번역은 동시에 공동연구이었고 공동창작이었다. 당나라 중엽까지는 외국인이 번역자들을 대표하여 번역의 최종책임을 졌다. 이 시기의 번역은 잘 읽히지만 정확하지 않은 데가 있다고 지적되어 왔다. 7세기 이후에는 산스크리트어에 능통한 중국인이 책임번역자로서 본문을 낭독하였다. 외국인들보다 더 치밀한 언어학자였던 그들은 앞서 번역된 경전들을 모두 정확하게 다시 번역하였다.

‘번역가의 과제’라는 수필에서 발터 벤야민은 모든 작가들이 정성을 다하여 구하는 것은 최후의 신비를 묵묵히 간직하고 있는 참된 언어이며 번역가의 목적도 이 참된 언어를 찾아내는 것 이외에 다른 데 있지 않다고 말했다. 본문의 문장 하나하나가 지닌 특색들을  번역 안에 받아들이려는 정확성과 번역에 온전하고 독특한 자기양식을 부여하려는 可讀性은 참다운 언어를 추구하는 투쟁 속에서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이다.

교수신문에 연재되는 고전 번역 비평을 보면서 번역학과 해석학의 필요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정확성을 문제 삼을 때에는 정확성이 문법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해석의 문제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주자의 설과 다르다”라는 진술은 발화자가 주자는 아니기 때문에 “내가 주자의 설이라고 해석한 것과 다르다고 생각한다”는 진술과 동일하다.

한국어 문법을 무시한 諺解체를 정확한 번역이라고 추천하는 몰상식은 번역학과 해석학의 토대가 결여된 번역비평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번역비평은 어디까지나 더 좋은 번역을 위한 이의제기가 되어야 한다. 번역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없는 자기과시적 번역비평은 평자의 독단적 해석을 드러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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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 2006-06-03 02:49:45
한 가지 덧붙이자면...
본문의 논지대로라면, <교수신문>의 고전번역 비평이 지금과 같이 "누구의 번역이 제일 나은가?"에 답하는 식으로 되어 있는 것도 그렇게 바람직스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EC 2006-06-03 02:44:49
내용에 공감도 가고 예로 드신 중국인들의 번역 이야기도 무척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교수신문>의 고전번역평가 이야기에 대해서는 조금 더 명확히 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실제로 그 코너는 그 자체로 의미도 크지만, 솔직히 어떤 부분에서는 그저 형식적인 코멘트에 그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더구나 그에 대한 비판기사를 다른 매체에서 접한 적도 있는데... 이번에 새로 시작하면서 그런 문제제기에 대한 포괄적인 입장제시 정도라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