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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학이사: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 송은지 남서울대
  • 승인 2006.05.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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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지/남서울대·계산이론

일찍이 내가 학부시절 수학과에 재학하던 때였다. 우연히 학과 Home Coming Day를 통해 후배들을 격려차 방문해 준 IBM 사에 근무하는 졸업생 선배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막연히 컴퓨터를 동경하게 되었다. 대학 3학년 때 우리 대학에 처음으로 전산학과가 설과되었다. 그 때에 컴퓨터관련 과목인 ‘수치해석’이란 교과목을 수강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퍼스널 컴퓨터가 대중화 되지 않았던 때인지라 프로그램을 카드 구멍에 뚫어 코딩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날로그인 수학이 디지털인 컴퓨터상에 실현 되는 것이 참으로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훗날 일본으로 유학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다. 정보공학과내에 있는 수학소프트웨어 연구실에서 내가 그토록 동경해 왔던 컴퓨터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연구를 해도 아날로그인 수학을 디지털인 컴퓨터에 효율적으로 실현시키려는 노력의 결과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날마다 지루한 수식을 이해하느라 진땀을 빼야 하는 작업은 나의 한계를 인식시키는 것에 불과하였다.

지도교수님은 자동차도 휴대폰도 휴일도 방학도 없이 오직 수학을 컴퓨터에 효율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일본 땅에 운명적으로 태어나신 분 같았다. 그리고 내가 다른 마음을 품고 주변 학과를 기웃거리는 것을 눈치 채시고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신 그 분의 격려는 잊을 수가 없다. 당시에 지도교수님께서는 공학, 물리학, 사회과학 등 각 분야에서 필요한 수학적 모델이 컴퓨터를 통해 효율적으로 실용화되어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루함을 극복하고, 연구하는 희생자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러한 격려의 말씀은 나의 방황을 접게 했으며, 덕분에 내가 7년 동안 일본에서 수식과 컴퓨터 앞에서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어느 날 그 결실은 나에게 벅찬 감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컴퓨터를 통한 재미없는 수치결과를 검토하던 중이었다. 그토록 멀기만 했던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를 한층 좁혔다는 증거인 0에 아주 가까운 작은 숫자들의 나열들을 보고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유학을 마치고 92년 귀국하여 KIST에 첫발을 디딘 후에 96년도에 나에게는 가나안 땅과 같은 현재의 대학교 컴퓨터학과에 부임을 하게 되었다. 특히 교과목 중에서 ‘수치해석’은 당연히 내가 맡아서 수년째 강의를 해오고 있다.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아날로그인 수학적 모델을 디지털인 컴퓨터상에 보다 효율적으로 실현시켜 일상에 도움을 주는 알고리즘을 학습하고 실습하는 재미있는 교과목이라고 그럴듯하게 강의 소개를 하면 고개를 제법 끄덕거린다. 그러나 학생들이 몇 주 후에 비선형 방정식, 연립방정식, 고유치 등을 구하는 알고리즘을 익히며 코딩을 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수식들을 설명할 때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만다. 그럴 때면, 아날로그를 디지털화하면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온갖 수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애쓰며 고민했던 과거에 나의 지루한 경험들을 생각하면서 예전 지도교수가 나에게 그랬듯이 점점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것에 길들여져 있는 학생들을 설득하며 달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최근 나는 어두운 베일에 싸여 있던 암호가 온라인상의 정보유출로 사회 문제화 되면서 세상 밖으로 그 진가를 드러내고 있어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특히 ‘공개암호’에 한때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벗어나고픈 지루한 내 전공과 관련 있음을 알고 결국 전공 ‘매력 없음’이 아니라 ‘연구 부족’ 때문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컴퓨터를 통해 얻고 있는 대부분의 유익함 뒤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수많은 수식으로 고민하는 희생이 감춰져 있음을 알고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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