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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민주화...'자유주의적 계기' 없었다
미완의 민주화...'자유주의적 계기' 없었다
  • 최승우
  • 승인 2023.01.13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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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과)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4회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본다. 지난 10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과)가 「한국에서 자유의 개념과 자유주의」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33강은 김경일 명예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의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제34강은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교수(지역학협동과정)의 「헌법,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 제35강은 고세훈 고려대 명예교수(공공행정학부)의 「경제 발전과 자유주의의 문제」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한국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보다, 자유주의의 지적, 문화적 사회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의 위치는 애매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하다. 보수든, 진보든 그들 사이에서 자유주의를 이해하는 관점은 극히 상이하다. 민주화 이전 구체제하에서 보수파들에게 자유주의는 체제를 수호하는 공식적인 이념이자, 슬로건으로서 민주주의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수용된 바 있다.

물론 그들이 실제로 자유주의를 실천했느냐 아니냐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그렇다. 반대로 진보파들은 자유주의를 냉전반공주의 이외에 다른 말이 아닌 것 혹은 부르주아지의 이념으로 이해했고, 그런 이유에서 부정적으로 보거나 아예 관심을 갖지 않았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과)는 “자유주의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한 민주화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과부하 걸리게 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라며 “한국의 민주화가 자유주의적 계기를 가져오지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지난 1980년대 민주화 이후에도 자유주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민주주의와 어떻게 접맥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한국에서의 민주화는 법적, 제도적 차원에서는 몰라도, 이념적, 정신적 차원에서는 “자유주의적 계기”를 갖지 못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만약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수용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먼저 오고 그다음 자유주의가 이를 뒤따르는 양상으로 특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험은 역사적 전개의 계기에 있어 자유주의가 자리 잡은 이후 민주화가 이루어진 서구 사회와는 역순이 되는 사례가 아닌가 한다.

이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민주화 이후의 자유주의는 민주화 이전의 자유주의와 어떤 다른 점을 갖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과제와 어떤 관계를 갖는 것인가? 제기되어야 할 질문은 크고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는 하나의 빈 공간처럼 느껴진다. 완전히 비어 있는 것은 아니라 면, 아주 빈약한 상태로 보인다. 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공동체주의, 공화주의, 생태주의,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마르크시즘 등 다른 어떤 이념들에 의해 대신 메워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유주의가 관여되는 도덕철학 내지 정치철학의 성격은 두 가지 흐름으로 대변된다. 하나는 무엇이 본질적이고 내재적으로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를 추구하는 이론이다.

도덕적인 급진파들은 거의 숙명적으로 이를 추구했다. 다른 하나는 정치철학을 실천이성의 부분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실재하는 현실에서 사용하는 지적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현실 행위에서 좋은 결과나 좋은 도덕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에 일차적인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 방향에서 실천이성은 나쁜 결과나 상황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가치 기준의 조율을 허용하는 개방적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실천적 지혜와 사회적으로 민감한 자유주의는 정치적 실천의 영역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데 창조적일수 있고, 권력이 실제로 작동하는 상황에서 광범위한 적응력을 가질 수 있다.

냉정한 현실주의를 말할 때, 그것의 핵심적 요소인 갈등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현실주의는 인간의 선을 함영하고, 좋은 사회를 형성하는 요건으로서 정치에 있어 갈등의 역할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관점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갈등은 국가와 개인 간의 갈등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

자유주의는 그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나라마다 상이한 정치 이념이나 실천 또는 운동과 접맥되면서 정치적 실천을 통해 대중에 의해 수용됐다. 처음에는 산업혁명과 연계된 사회주의 이념, 그 뒤에는 민주주의와 충돌하면서 자유주의 이념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발생했다.

먼저 자유주의는 산업혁명 이후 나타나는 자율적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한 경제적 자유주의와 대면했다. 그리고 오늘의 현대적 조건에서 신자유주의와 접맥되기도 했다. 이 점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포괄하는가? 그리하여 경제적 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핵심적 내용을 구성하는가? 나아가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와 관련해 필자의 관점은, 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그것이 시장 자율성을 중심으로 하는 19세기 경제적 자유주의이든, 20세기 후반 이래의 신자유주의이든—와는 상이한 것이고, 양자는 구분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생각할 때, 자유주의 위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화 이후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조건이 형성됐다는 점이다. 그것은 자유주의가 민주화의 기초가 되지 못하고, 민주화가 자유주의를 정치 현실로 불러올 필요를 느끼게 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건국 이후 ”자유민주주의“는 국가 건설의 존재 이유로 나타났지만, 민주주의가 정치적 실천을 통해 보편적인 이념으로 자리 잡은 것과는 달리, 자유주의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자유주의의 중심적 가치들이 상당정도 민주주의의 가치와 이념 속으로 포괄되는 동안에도 자유주의가 정치적 이념으로서 중심적인 위상을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유주의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한 민주화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과부하 걸리게 하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민주화가 자유주의적 계기를 가져왔느냐 하는 문제 또한 그렇지 못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민주화 과정에서 독재 권력을 타도하는 정치적 목표를 넘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의 구현으로서 얼마나 자유주의적 가치와 원리의 중요성을 일깨웠는가에 대해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민주화 과정에서 자유주의적 가치가 얼마나 큰 열정과 감동, 내면적 울림을 가져왔는가에 대해서도 그렇지 못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자유주의 내지 시장경제와 관련해 자유주의가 이해되는 방식은, 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와 동일한 것이거나 다른 종류의 이념이라 하더라도 양자는 불가분리의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 점은 자주 착시 현상이랄까 자유주의에 대한 오해를 불러오는 원인이 된다. 

그로 인해 보수주의자들은 자유주의로 인식되는 동안, 진보파들은 반자유주의자로 인식된다. 한국의 진보파들은 그들이 진보적일수록 넓게는 시장경제에 대해 좁게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이를 수용하지 않거나 이에 비판적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 또는 신자유주의는 엄연히 다른 종류의 사상이고 이념이고 교리다. 이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사회의 보수파들은 경제적 자유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자일 수는 있어도 자유주의자는 아니다.

동시에 경제적 진보파들은 경제적 자유주의나 신자유주의자는 아닐지 몰라도 자유주의자 일 수는 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현실에서 진보파들을 자유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

현대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줄임말이다. 자유주의는 접두사로서 민주주의를 수식한다 하더라도 현대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균형적으로 결합될 때, 이념, 가치, 교리로서의 자유주의와 정치 체제 내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균형을 이룰 수 있고, 양자는 비로소 상보적으로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서는 자유주의의 이념, 원리, 가치는 일제 식민 통치와 냉전적 이념들의 양극화라는 역사적 과정을 통해 취약성을 면치 못했다.

이 불균형이 해방 이후 권위주의하에서만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주의를 과부하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에서조차 민주주의를 취약하게 만드는 조건이다.

한국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보다, 자유주의의 지적, 문화적 사회적 기반을 강화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의 이 에세이의 주제는 그것이 비록 역사의 과정에서 실패가 아니라면 취약했다 하더라도 중심을 만들기, 또는 균형자를 만들기가 아닐까 한다.

그것이 곧 자유주의와 자유의 역할이다. 이 점에서 젊은 세대의 연구자들이 한국 현대사를 통해 드러난 바 있었던, 그리고 지금도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분법적 역사 이해와 정치적 행위의 틀을 지적으로 넘어서고자 하는 관심과 노력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본 강연자는 자유주의로부터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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