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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은 진실 
눈감은 진실 
  • 신희선
  • 승인 2022.12.19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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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

“시장이든, 의원이든, 대통령이든 자신이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정치인의 기본”이며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건 “누가 조언을 하고 누구와 함께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비밀을 공유하고 친교를 나누는지”의 문제다. 하워드 가드너는『Five Minds for The Future』에서 힘없는 개인을 어떻게 대하는지에서 존중하는 마음이 드러나고,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윤리적 마인드를 지녔다고 상상하는 건 어렵다고 했다.

최근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정부 여당의 처리방식을 보며, “권력을 가진 이들은 냉소적이며 거만하다”는 뇌과학 결과가 떠오른다. 불편한 진실에 눈감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루 18시간 운전하며 잠도 못 자고 씻지도 못한 채 김밥이나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우리가 귀족인가?” 화물운송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과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며, 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한 화물연대의 총파업은 정부의 강경대응으로 종료되었다.

“일감이 끊길까봐” 밑바닥 운임과 장거리 운행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파업을, 정부와 여당은 “조폭 세력의 횡포”, “종북으로 점철된 정치투쟁”으로 규정하였다. 경제적 위기상황과 시민 불편에 대한 국가 책임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노동자들의 요구에 대한 해결책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대신 업무개시명령을 앞세웠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위반한 것이라는 국제노동기구의 권고도 무시한 채, 대화와 토론 대신 공권력을 발동하고 ‘노조혐오’ 여론을 부추겼다. 

노동문제에 대한 언론보도는 편향적이다. 노사대립 상황이 불거질 때 중립적으로 다루기보다 노동자의 요구가 잘못인양 보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과 자본의 책임을 묻지 않고 극한 상황에 몰린 노동자의 저항과 투쟁만 크게 부풀린다.

퓰리처상을 두 번씩이나 수상한 월터 리프먼은 『Public Opinion』에서 언론이 세상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며  ‘여론에 기대는 민주주의’에 의문을 던졌다. 살아있는 권력을 추종하고 광고를 주는 기업의 눈치를 보며, 노동자의 절박한 현실은 외면하고 노동쟁의로 인한 불편만 보도하는 뉴스들에 우리의 눈과 귀가 점점 어두워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언론을 제4부로 부르는 이유는 국민을 대신한 감시자로서 진실을 보도하라는 데 있다. “뉴스의 진실은 감춰진 사실을 밝혀내고 그 사실들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시켜 사람들이 행동의 근거로 삼을 현실의 그림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권력을 감시하고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이 무얼 말하는지 전달하는 건 언론이 해야 할 중요한 임무다.

미국 언론의 가이드라인인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도 언론이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시민들’이라고 했다.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한다면 그 사회는 투명하고 건강할 수 있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현정부 들어 두 번째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국익을 훼손하는 악의적 보도”라며 취재를 원천 봉쇄하거나 선택한 언론을 활용해 유리한 여론을 만들려는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며, “시민의 알권리를 위협하고 언론인에 대한 괴롭힘을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정 언론의 정보접근권을 차단하고 대통령실에서 주는 자료에 의존하는 상황은 대통령이 중요하게 언급하는 ‘자유’가 실종된 것이다. ‘가짜뉴스’를 엄단하겠다는 정부의 선포로 진실을 탐사하려는 보도가 매도되지 않도록, 깨어있는 시민들의 비판적 사고가 요구되는 시절이다. 

지난 12월 10일은 ‘세계인권의 날’ 7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지금의 정치 엘리트들이 과연 힘이 없는 사회적 약자를 존중하는 마음과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는 윤리적 마인드를 갖고 있는지, 한국사회의 인권의식은 나아지고 있는지 질문하게 된다.

인권의 날 기념행사에서 유최안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인권은 20층 높이의 빌딩 위에 자리 잡지 않는다. 인권은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외쳤던 조선소 하청노동자들, 졸린 눈을 비벼가며 모두가 잠든 밤을 달리던 화물노동자들(…) 속에 있어야 한다.” 2022년 세밑, 그의 말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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