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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 수탈한 유럽 식민주의...육두구의 저주
향신료 수탈한 유럽 식민주의...육두구의 저주
  • 김재호
  • 승인 2022.12.14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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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육두구의 저주』 아미타브 고시 지음 |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488쪽

지구 위기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탐구

아미타브 고시는 『대혼란의 시대』의 야심 찬 후속작 『육두구의 저주』에서 오늘날 기후 위기의 기원을 인간의 삶과 자연환경에 대한 서구 제국주의의 폭력적 착취에서 찾는다.

역사·에세이·증언·논쟁을 아우른 강력한 이 책에서, 저자는 오늘날 지구 위기의 뿌리를 찾기 위해 신대륙 발견과 인도양 항해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한 여정을 거치면서 그는 오늘날 기후 변화의 역학이 서구 식민주의가 구축한 수백 년 역사의 지정학적 질서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육두구 이야기는 저자의 작가적 상상력에 힘입어 환경 위기에 대한 은유로 거듭난다. 그는 육두구의 역사를 통해 인류 역사가 언제나 향신료, 차, 사탕수수, 아편, 화석 연료 같은 지구 물질과 얽혀왔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백인의 역사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적 부를 쥐어짜는 기계에 필요한 자원을 추출하고 통제하기 위해 ‘권리를 박탈당한 자들’을 착취하는 소수 특권층의 역사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을 위해 책 앞머리에서 1621년 인도네시아 반다제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은 반다제도가 1600년대에 세계를 반쯤 미치게 만든 향신료인 육두구의 유일한 생산지였기 때문인데, 그 악마적 사건은 이어지는 수백 년 동안 지배적 세계 질서로 부상하는 유럽 식민주의의 전조였다. 저자는 오로지 기업적 이윤에만 사로잡혀서 지구를 정복하고 재형성하려는 인류의 발자취에 내재된 욕망과 탐욕을 발가벗긴다. 또한 식민주의, 토착민과 원주민에 대한 제노사이드, 노예제, 인종 차별적 자본주의 같은 더 큰 주제로 나아간다. 그러면서 그것들이 결국 오늘의 기후 위기로 귀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코로나19 팬데믹과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가 한창이던 와중에 책을 집필한 고시는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식민주의 역사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보는 심각한 불평등을 연결 짓는 식으로 여러 역사 이야기를 다룬다. 저자는 세계 석유 무역사, 이주 위기, 전 세계 원주민 공동체의 애니미즘적 영성 등에 대한 논의를 아우름으로써 서구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인류 역사가 비인간 힘들에 의해 형성되는 놀라운 방식에 대해 들려준다.

 

아미타브 고시는 인도의 작가이다.  2018년에 인도 최고의 문학상인 제54회 Jnanpith 상을 수상했다. 사진=위키피디아

 

기후 위기, 서구인의 자연관과 프랜시스 베이컨, 테라포밍

우리는 많은 논의의 세례를 거치면서 현재의 기후 위기가 산업혁명보다 훨씬 뒤인 최근 몇십 년 사이에 생겨난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물론 최근 몇십 년 사이의 ‘거대한 가속(great acceleration)’이 오늘의 기후 위기를 한층 빠른 속도로 부채질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실상 그 위기의 씨앗은 인류가 ‘물질적 안녕’이 좋은 삶의 최고봉이라고 믿도록 세뇌당한 오래전에 이미 뿌려졌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초기에 이 같은 유럽의 제국주의 교리를 구축한 인물로 지목한 이는 서구의 위대한 정신으로 꼽히는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반다 대학살이 자행될 무렵 …… 출간한 책 『성전에 관한 광고』에서 베이컨은 기독교를 믿는 유럽인에 의한 특정 집단의 존재 말살이 왜 합법적이라고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소상히 늘어놓았다. ‘일부 국가에서 민법에 의해 불법화되고 금지된 특정인이 존재하듯 자연의 법 및 여러 국가의 법에 의해, 또는 하나님의 계명에 의해 불법화되거나 금지된 국가들도 있게 마련이다.’ 베이컨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방탕한 국가는 기실 국가도 아니요, 그저 자연법칙에 비추어볼 때 완전히 뒤떨어진 ‘불온한 사람들의 떼거리’일 따름이다. 그런 연유로 ‘시민정신이 투철하고 치안이 잘 갖춰진 국가가 …… 그들을 이 지구상에서 제거하는 것은 합법적일뿐더러 신의 뜻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이 주장은 사실상 기독교를 믿는 유럽인에게 그들 눈에 잘못되었거나 괴물처럼 보이는 민족을 공격하고 말살할 수 있는 천부적 권리를 부여했다.”(40쪽)

저자는 이런 발상의 지원을 받은 식민주의와 경제 성장을 주축으로 하는 서구 문명을 비판하는 한편, 기후 변화가 식민화와 함께 시작되어 토착민의 낙원과 그들의 환경을 파괴한 자원 추출 방식의 직접적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것을 ‘테라포밍’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데, 테라포밍은 식민지 개척자들이 장소 이름을 새로 바꾸고 가축을 도입하고 농경지를 일구고 공유지를 사유지로 변경하고 이동식 거주 형태를 영구 거주 형태로 바꾸는 등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 같은 제국주의적 지배를 강력하게 뒷받침한 것이 다름 아니라 지구에 대한 ‘기계론’적 관점이다. 자연은 행위 주체성과 의미로 가득 찬 자체의 힘이 아니라 인간이 그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고 정복할 수 있는 자원으로만 존재한다는 관점 말이다. 그리고 그 자연에는 가난한 사람, 토착민 등 서구 백인 이외의 인류 다수도 포함된다. 이런 사고가 지구 위기의 근본 원인인 식민지화와 테라포밍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기후 변화를, 지구에 대한 광범위한 테라포밍이라는 도전을 향한 지구 자신의 응전으로 해석한다.

서구 엘리트들은 스스로가 선택받은 존재로서 역사적으로 겪어온 숱한 전염병에서도 살아남았듯이 오늘날의 기후 위기도 무사히 피해갈 수 있으리라는 낙관적 가정 아래, 토착민이나 가난한 사람에 대한 ‘무행동’으로 그들을 곤경에 빠뜨려왔다. 저자에 따르면, 그러나 괴물 같은 가이아는 종전에는 역사의 승자 편에 서주었을지 몰라도 더는 누구 편도 들지 않기로 작정한 듯하다. 서구의 엘리트들과 비서구의 그 상대역들이 살아가는 곳이 공교롭게도 가장 테라포밍의 간섭을 많이 받은 지역이고, 그런 장소들이 가장 집중적으로 기후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렇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구는 마치 서구 엘리트들이 문명을 일구었을 때 가정한 기계론이 틀렸음을 입증하기라도 하려는 듯 산불·폭우·가뭄·폭염 같은 이상 기후의 모습을 한 채 더는 고분고분 당하고만 있는 말 없는 비활성 실체가 아님을 연일 증명해 보이고 있다.

 

지구 위기 해법

이러한 저자의 진단에 따라 자연히 그가 내놓은 지구 위기 해법은, 지구도 행위 주체성을 지닌 살아 있는 실체라는 ‘생기론’적 사고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불과 몇백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지니고 있었고 누려왔던 그들과의 소통법을 잃어버렸다. 그 감각을 되살려줄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생기론적 사고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토착민, 문명의 이기를 누리지 못하고 자연법칙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문명 속의 가난한 사람들이다. 저자에 의하면, 그들이 양자의 대화를 이어줄 통역관 노릇을 할 테고, 우리는 그들에 힘입어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에만 비로소 지금의 기후 위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 저자는 “인간, 그리고 우리의 모든 친척들의 운명은 바로 거기에 달려 있다”고 글을 맺는다.

저자에 따르면, 공식적 근대성이 지워버린 비인간 목소리를 본연의 장소로 되돌려놓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토리를 복원해야 하는데, 이것은 바로 오늘날의 작가·예술가·영화 제작자 등 스토리텔링에 종사하는 이들이 떠안아야 할 임무다. 그는 이 임무가 미학적임과 동시에 정치적 과업이라고 주장한다. 이로 보아 그는 정치 자체의 힘보다는 스토리텔링으로 정치를 변화시키는 스토리텔러의 힘을 더욱 신뢰하는 듯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강화된 세계적 연결성은 많은 파괴적이고 분열적인 결과를 초래했지만, 다른 한편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대륙 간 연합을 통해 지구 위기를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이 점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지구 위기의 규모는 하도 커서 어떤 한 나라, 또는 심지어 ‘서구’ 같은 여러 국가로 이루어진 느슨한 집단이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제 탄소 경제의 궤도를 좌우하는 것은 더 이상 서구가 아니다. 서구가 지구 온난화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거야 어김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서구가 세계 인구 절대 다수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 없이도 지구 위기를 제대로 다룰 수 있다, 심지어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해법을 찾기 위한 첫걸음은 공통의 표현 양식과 공유된 이야기를 모색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들끼리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친척들’과 서로 의존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의 내러티브를 말이다.”(337쪽)

뼛속 깊이 세뇌된 우리의 서구 문명 중심적 사고를 질릴 정도로 비판하면서 우리가 새로운 관점에 서도록 안내하는 저자의 노고와 통찰력에 크게 감동받지 않을 수 없다. 시종일관 가난한 자, 쫓겨난 자, 고난받는 자, 차별받는 자의 입장에 서고자 하는 그의 도덕적 헌신에도 숙연한 마음이 들 것이다. 읽는 내내 작가의 상상력은 정말이지 특별하고,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는 데에도 남다른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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