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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회 가보세요” … 通學問的 시선 인정해야
“다른 학회 가보세요” … 通學問的 시선 인정해야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6.05.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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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_ 인문학 분야 학제적 연구 게재 어려움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 등 학계 전반적으로 학제간 연구가 장려되는 듯하지만, 실제 학제간 연구논문을 쓴 이들은 제때 갈 곳을 찾지 못해 표류하는 경우들이 생겨나고 있다.

연희원 강원대 강사(여성철학)는 지난해 ‘다윈 생물학의 남성중심주의비판: 여성주의 시각에서의 철학적 비판’이란 논문을 소속 학회에 냈다가 게재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유는 생물학적 논의가 너무 많아 ‘철학’논문으로 볼 수 없다는 것. 연 씨는 심사평에 수긍하지 못했지만 게재를 위해 생물학 논의를 대폭 축소, 이후 다른 철학회지에 투고, 게재됐다.

“다른 분야 논문” vs. “내용 깊이가 없어”

김성룡 호서대 교수(고전비평)는 문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연구를 하다가 ‘원효의 글쓰기에 나타난 텍스트적 주체의 문학 사상사적 의의’라는 논문을 국문학회 두 곳에 투고한 적이 있지만, 모두 ‘불가’ 판정을 받았다. “논리의 치밀함이 떨어진다”라는 심사평에는 수긍했지만, “원효의 사상으로 문학을 논할 수 없다”라는 입론 자체가 부정되는 평을 받고선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김 교수의 논문은 철학회지로 옮겨가게 됐다. 김 교수는 “학술지 규정에 맞추기 어려운 글쓰기를 하는 이들은 결국 단행본 저술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라며 기존 학회들의 완고한 틀에 적응하기 어려움을 토로한다.

한국철학 전공자이지만, 선가사상을 주로 연구한 민영현 경상대 강사는 민족종교 관련 논문들을 철학회지에 투고했다가 역시 “철학적 논의가 아니다”라며 부적격 판정을 받았고 결국 단군학회나 동학학회로 옮겨가 적격 평가를 받고 싣게 됐다. 민 씨는 “철학전공자들이 일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고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라고 털어놓는다.

이처럼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들은 학계에서 홀대받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논문게재의 可/不可를 떠나 연구자들이 심사평에 수긍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즉 내용적 평가가 아닌 “우리 학문분야에 맞지 않다”라는 이유로 반려된다는 것. 사실 이런 연구에 대한 평가의 어려움은 심사경험이 많은 교수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문성학 경북대 교수(철학)는 “기존 학회 틀로는 학제간 논문 심사가 어렵다”라고 털어놓는다. 전공영역이 아닌 부분은 잘 모를 뿐더러, 학회들이 경직돼 있어 타 분야는 배척한다는 것. 이왕주 부산대 교수(철학)는 좀더 심각한 이유를 드는데, “학진등재(후보)지들은 논문의 일정비율을 탈락시켜야 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학문적 카테고리에 맞지 않는 것을 우선적으로 탈락시키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한다.

심사과정에서 여러 주관적 잣대가 작용할 여지가 많은 것 역시 심사자들이 인정하는 부분이다. 김석수 경북대 교수(철학)에 따르면, “학제간 논문의 게재여부는 편집위원장이 누구냐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른바 ‘학문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편집위원장이라면 배타적으로 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의 경우 ‘사회와철학’ 편집위원인데, 타분야 논문이 투고될 경우 외부심사자를 적극적으로 섭외한다고 한다.

사실 학제간 연구심사의 어려움은 외부심사자를 위촉하면 간단히 해결될 듯하다. 하지만 “논문심사가 쉽지 않은 일이라 같은 회원 논문도 맡기 꺼려하는데, 외부심사자를 섭외하는 게 현실적으로 간단한 일은 아니”라는 게 몇몇 학회 편집위원들이 털어놓는 속내다.

외부심사위원 위촉 문화 정착해야

물론 학제간 연구들에 대해선 “논리적인 치밀함이 떨어진다”라는 의견이 제출되기도 한다. 즉 “타 학문분야이기 때문”에 떨어뜨린 것이 아닌 질적으로 안따라줘서 탈락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논리의 엄밀성’이냐 ‘주제나 아이디어의 참신성’이냐에 대해선 의견이 갈릴 수 있다. 이왕주 교수는 “학제간 연구라도 학문적 엄밀성이 있어야겠지만, 기존 학문 입장에서 보면 약점이 두드러져 보일 수 있다”며 ‘새로운 주제, 글쓰기, 스타일’에 높은 점수를 줄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즉, “통학문적으로 메타시선을 갖고 자유로운 글쓰기를 해야만 분과학문을 뚫고 학문의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페미니즘적 접근을 시도하는 여성연구자들은 기존 논문심사 틀에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원래는 문학, 철학, 역사전공자이지만 여성주의적 시각을 결부시켜 연구하다보면 자연스레 학제간 연구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여성연구자들은 심사과정에서 “여성학 연구이지 우리 전공이 아니다”라며 불가판정을 받았던 경험을 쏟아놓는다.

한국여성철학회 부회장인 김혜숙 이화여대 교수(철학)에 따르면, “여성철학자들이 논문심사에서 ‘여성학이냐, 철학이냐’라는 논란에 휩싸여 기존 학회에 투고하지 않으려는 심리적 위축반응을 나타낸다”고 한다. 물론 김 교수도 ‘학문적 엄밀성’이 논문심사의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임을 인정하지만 상대적으로 여성연구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목격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 학계는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도 많지 않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러한 논문을 심사할 자격이나 제도가 구비되어 있지 못한 심사과정”이라는 한 연구자의 지적을 되새겨볼만 하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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