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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동아시아의 세계화와 언어제국주의(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
[초점]동아시아의 세계화와 언어제국주의(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0.11.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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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식해오는 영어 앞에 ‘우리말’은 무엇인가
지난 정권의 캐치프레이즈로 등장했던 ‘세계화’가 ‘지구화’ 등의 다른 역어로 옮겨지면서 숨겨진 의미를 드러낸 지도 한참이다. 이제 정권도 바뀌고 세계화의 허실은 이론적으로나마 그 윤곽이 드러났다. 하지만 ‘상처는 아물어도 상흔은 남는다’고, 세계화가 남긴 영어화의 잔해는 더 기세를 부리고 있다. 지난 10일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소장 최창희 한림대 교수)가 주최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동아시아의 세계화와 언어 제국주의’라는 주제의 국제학술연구발표회에서 문제 삼은 것도 결국 ‘세계화’와 ‘영어화’였다.

세계화는 언어제국주의의 완곡어법

김영명 한림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세계화와 언어 문제’라는 발표문에서 지금의 세계화가 미국의 패권국화에 다름아니라고 주장했다. 경제로 보면 자유시장주의이고 문화면에서는 언어제국주의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것이다. 김교수는 ‘세계화론의 사기성’과 같은 거침없는 어휘선택으로 그의 논지를 증명했다. 영미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세계화 논의는 영어로 전개되므로 자연히 비영어권 국가들의 상황에 대해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것. “단일 언어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토착언어운동이 일어날 것이므로 언어의 획일화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영어권의 논리 또한 ‘편리한 침략과 지배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그는 일본 사상가 쓰다 유키오의 말을 빌어 언어가 권력을 행사하고 지배를 유지하는 수단임을 주장했다. 가령, “영어는 기독교 사상을 전하는 수단이고 인류를 앵글로색슨처럼 만드는 수단”이라는 맹신이 필리핀 침공에 대한 미국인의 무의식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근대화시기 루신과 마루야마 마사오같은 이들은 언어가 근대화의 결절점임을 숙지하고 언어적 근대화에 사력을 다했음을 김교수는 상기시켰다.

한글문화연대의 활동가이기도 한 김교수의 발제에서 논란이 되었던 부분은 역시 ‘우리말글로 학문하기’의 실천성이었다. 김교수는 “담론생산만으로 그치는 인문학계의 성향이 안타깝다”고 말하며 “말보다는 행동이 시급한 때”라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에 대한 반응의 향방은 사뭇 달랐다.

홍성민 동아대 교수(정치학과)는 ‘우리 언어의 정체성과 탈식민주의’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탈식민화’와 ‘반식민화’를 구분하며 김교수의 주장이 나/우리, 동양/서양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내포하는 ‘반식민화’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반식민의 주체인 한국적인 무엇이 선험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사회의 아비투스 속에서 형성되는 것임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홍교수는, 오히려 문화적 혼합성 속에서 서구에 대한 문화적 종속을 ‘전유’하거나 ‘되받아쓰기’하면서 탈식민할 수 있다는 서구 탈식민주의 이론에 기대어, 실천적 맥락이 자칫 내적 억압이 될 수 있음에 우려를 표했다.

'민족=언어=국가'라는 근대적 도식 탈피해야

이연숙 히도츠바시대 교수(사회학부)는 ‘일본의 영어공용어화론’을 발표하면서 비근한 일본의 예를 통해 한국적 상황을 해석해냈다. 그 가운데 민족이 곧 언어이며, 언어가 곧 국가인 일본식의 등식에 관한 설명은 이번 발표회의 논의가 놓치고 있던 지점에 대한 지적이었다. ‘우리’라는 테두리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혹은 우리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들에 다시 대답하지 않고는 논의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다는 것. 이교수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이런 성찰이 부족했기 때문에 세계주의와 국수주의, 즉 영어숭배와 ‘고쿠고’(國語)숭배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양상을 보였다고 했다. 이교수는 민족과 언어, 그리고 언어와 국가를 동일시하는 등식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한국현실에도 급선무이고, 언어는 사회적, 생리적인 면 등 다층적 접근이 필요한 대상이기 때문에 섬세한 논의가 요청된다 했다. 이어진 종합토론에서 이교수는 지식인의 공부가 실천으로 이어질 때 전환의 방식에 대한 발본적인 차원의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의 경우 사회를 바꾸는 힘이 지식인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며 연구자의 겸손함이 요청되는 현실도 지적했다.

현세태 사상적 고찰 필요

외부에서 바라볼 때, 세계화와 영어화의 대세에 반응하는 우리의 모습은 이처럼 성글게 보였을 것이다. 말과 얼이 분리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은 감정적인 불만을 토로했지만 논의로 이어지지 못했고, 한글사용에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이를 위한 압력단체로서의 활동도 어쩌면 새삼스러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토론자로 나섰던 탁석산 한국외대 강사(철학과)의 조심스런 항의는 적절했다. “세계화와 영어화에 대한 일본의 지적흐름은 서구에 대한 모방과 대결의식이라는 일관적인 배경에서 기인한다”며 세계화와 영어화에 대한 국내 대응의 면모가 일이관지하지 않음을 꼬집었다. 이는 학술발표회에 대한 苦言이기도 했다. 발표회 자리에서 토의되었어야 할 것이 대응의 패턴과 사상적 탐색임을 잊고 있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지적은 정당했으나, 발표회 자체가 정치학과 사회학의 층위에서 이뤄진 데 따른 한계는 불가피한 듯 보였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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