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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애족·애민' 지도자의 표상
'애국·애족·애민' 지도자의 표상
  • 안성호
  • 승인 2022.12.15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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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㊴_도산 안창호
도산은 위대한 삶을 살았다. 그 
러나 도산의 비전은 아직 미완 
의 상태다. 사진=위키피디아

최근 『민족독립혁명가 도산 안창호 평전』(2021)을 저술하신 신용하 선생은 필자에게 “도산 없는 항일독립투쟁을 상상할 수 없다. 도산의 항일독립투쟁은 해방 후 대한민국 수립과 민주화운동의 초석이 됐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은 도산에게 크게 빚지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도산의 항일투쟁 목적은 독립만이 아니었다. 도산이 18세에 독립협회에 가입한 후 목숨 걸고 추구한 필생의 비전은 민주공화국의 실현이었다. 도산은 공적 삶의 표준을 민주공화국에서 찾았다. 민중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깊은 신뢰는 도산의 공적 삶과 활동의 특징이었다. 도산의 나라 사랑은 곧 민주공화국 사랑이었다. 

1898년 한 여름날 광무황제 생일에 맞춰 평양 대동강변에서 만민공동회가 열렸다. 수많은 군중 앞에서 스무 살의 도산은 관료부패를 통렬히 성토하며 백성이 나라의 주인임을 설파했다. 청년 도산은 국권이 쇠잔해진 구한말 독립협회가 마련한 공적 자유의 공간에서 필생의 민주공화국 비전을 선포하고 리더십 항해를 시작했다.

1919년 3・1혁명은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을 나라의 주인으로 일깨워 나라를 되찾고 바로 세우려고 헌신했던 도산과 그의 강연을 듣고 새 사람으로 거듭난 남강 이승훈의 독립교육운동이 맺은 열매였다. 도산이 없는 3・1혁명과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상할 수 없다. 도산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헌법은 다르게 쓰였을 것이다. 

안창호는 빈곤한 시골 가정에서 태어나 정식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높은 이상을 품고 스스로 공부해 방대한 지식과 높은 상식을 갖춘 고결한 성품의 지도자가 됐다. 만일 안창호가 링컨과 같은 기회를 얻었더라면 더 위대한 일을 이뤘을 것이다. 

도산은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창건했지만 3개 분파로 분열된 독립세력의 통합을 위해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노동국 총판’이라는 미관말직을 맡은 서번트-리더였다. 도산은 임시정부 밖 독립운동 세력의 온갖 비방과 음해, 분란과 불화 속에서도 젊은 차장들과 힘을 모아 섬김의 자세로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이승만과 이동휘 등 많은 이들이 제 욕심과 명예를 위해 끝없이 다퉜지만, 도산은 어버이의 심정으로 임시정부를 세워 지켜냈다. 

상해 임시정부의 경무국장에 임명된 김구는 도산을 깊이 존경해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의논하고 그의 지도에 따라 행동했다. 임시정부에서 도산과 함께 생각하고 행동했던 2년의 기간이 없었다면, 백범 김구 선생이 과연 임시정부를 끝까지 붙잡고 지켜나갔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폭파사건 후 일제 경찰에 붙잡힌 도산은 “앞으로도 독립운동을 하겠느냐?”라고 다그치는 검사에게 “나는 지금까지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민족을 위해 먹고 잤으니 앞으로도 민족을 위해 일하고자 함에 조금도 변함이 없다”라고 응수했다.

1935년 2년 반의 옥고를 치르고 나와 동포를 만난 자리에서 도산은 “우리 민족이 이렇게 불쌍한 지경에 있는데, 지도자라는 이들이 서로 당파싸움만 하고 있으니…”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저는 이 민족의 죄인입니다. 이 민족이 저를 이렇게 위로해 주는데, 저는 민족을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저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했다. 

일제는 1937년 또다시 도산을 투옥하고 포섭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잔악하게 고문했다.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중병에 든 도산은 일본검사의 심문에 “조선의 독립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해 12월 병보석으로 풀려난 도산은 80여 일 동안 병원 침대에서 사투를 벌이다가 “낙심 마시오”라는 한마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인간의 정신에 희망의 근거와 이유가 있다. 

도산은 위대한 삶을 살았다. 도산의 희생 위에 대한민국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도산의 비전은 아직 미완의 상태다. 복합위기의 시대 여전히 나라가 두 동강이 난 채 북한에서는 핵무기를 앞세운 세습 독재가 계속되고 있고, 남한의 민주공화국에서는 진영 적대정치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 우리가 도산 선생의 대공리더십을 이어받아 복합위기 극복과 고품격 통일민주공화국 실현에 나서야 할 때다. 이것이 도산의 희생과 헌신에 조금이라도 보은하는 길이다.

 

안성호 대전대 명예교수·행정학과
대전대 교수와 부총장, 한국지방자치학회장, 한국행정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개헌국민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최근 『왜 서번트 리더십인가』(2021), 『왜 분권국가인가』(2018)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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