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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모욕하는 시대…자기검증은 없고 남탓만 즐비하다
학자 모욕하는 시대…자기검증은 없고 남탓만 즐비하다
  • 김재호
  • 승인 2022.12.11 0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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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를 통해 본 2022년
교수신문 2022 올해의 사자성어 ‘과이불개(過而不改)’ 휘호. 정상옥 전 동방문화대학원대 총장(문학박사)이 직접 썼다. ‘해서(楷書)체’다. 정 전 총장은 중국 산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한민국 서예문인화 원로총연합회 공동회장을 지냈으며, 대한민국 미술 대전 서예부문 심사위원장과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올해였지만 희망과 기대는 잠시뿐이었다. 김건희 여사의 박사학위 논문 검증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 발언 사태, 그리고 인재로 발생한 이태원 참사(10.29)까지, 제대로 된 해명과 사과는 없었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행태가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다.

진실은 사라졌다. ‘2022 올해의 사자성어’는 과이불개(過而不改)가 935표 중 과반 수를 넘긴 476표(50.9%)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과이불개는 『논어』 「위령공편(衛靈公篇)」에 처음 등장하는데, 정확히는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로서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는 뜻이다. 설문에 답한 60대 인문학 교수는 “많은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하는데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라며 “인정하지 않으니 사과할 이유가 없고 그러면 고칠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교수사회에 대한 지적도 반성하도록 한다. “논문 표절 문제가 불거지면 논문제출자만 탓할 뿐 지도교수와 심사위원에 대해서는 아무 책임을 묻지 않는다.”(60대·인문)

2위 욕개미창(欲蓋彌彰)은 137표(14.7%)를 얻었다. 욕개미창을 추천한 남기탁 강원대 명예교수(국어국문학과·한국어문회 이사장)는 추천이유에 대해 “우리 대학의 연구 윤리가 보다 엄격하고 공정하게 적용되기를 바라는 심정”이라고 밝혔다.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는 욕개미창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학자의 윤리의식이 무너지면 미래 교육은 더 무너진다”(50대·사회)라는 지적은 뼈아픈 반성을 자아낸다. 특히 “교육자로서 박사 논문 표절에 대한 대학의 대응 방안은 부끄럽다. 논문 뿐만 아니라 이태원 참사를 진상 조사도 안하고 묻어버리려고 하는 것처럼 보여 이 사자성어는 두 가지 모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40대·사회)라는 의견도 경종을 울린다. 아울러, “공부한 사람을 모욕하는 시대상황과 맞음”(50대·공학)이나 “학문적 진실성의 문제는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50대·인문)라는 선정 이유도 새겨 들어야 한다.

 

개항기보다 심한 격변의 총체적 위기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고 덮으려고만 하니 국민의 불안은 증폭된다. 국가의 위기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3위는 129표(13.8%)를 얻은 누란지위(累卵之危)가 차지했다. 누란지위를 추천한 탁선미 한양대 교수(독어독문학과)는 “글로벌한 보편적 위기에 더해 미중 신냉전, 남북 관계 경색, 폭력적 극우주의 및 민주주의 위기, 젠더/소수자 혐오 문화, 인구소멸 등 겹겹이 난제가 산적해 있다. 어디도 발 디딜 수 없을 만큼 도처가 위태롭다”라며 그 이유를 말했다.

여러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을 뜻하는 누란지위를 선정한 이유는 뭘까. “윤리와 가치의 붕괴로 말세적 혼돈의 시대”(60대·농수해양), “개항기보다 더 심한 격변의 총체적 위기상황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타개할 상상력과 의지를 지닌 사회세력이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60대·사회) 등의 답변이 주목된다. 그래서 “위기 극복의 책임과 실천은 늘 국민 몫이었다. 역사의 반복이 두려운 한해였다”(50대·자연)라는 자조섞인 푸념이 나온다.

위기의 상황이라면 현실을 세밀하게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식인의 역할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 특히 지식인 사회의 자화상”(50대·인문)이라는 답변은 그 누구도 제대로 나서지 못하는 상황을 꼬집는다. 4위에 선정된 문과수비(文過遂非)는 124표(13.3%)를 얻었다. 문과수비는 ‘과오를 그럴듯 하게 꾸며대고 잘못된 행위에 순응한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은 입을 열어 말하기 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의 무게를 생각해야 한다”(60대·사회), “책임있는 정치·언어, 정확한 판단이 중요하다”(50대·인문) 등의 선정 이유에도 시선이 머문다. 문과수비를 추천한 남기탁 명예교수(국어국문학)는 “통치자와 정치인은 자신의 언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신중한 고민과 정확한 판단에 의한 최종적인 정치 철학을 담론화하는 행위임을 각성해야 한다”라고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2022년 올해의 사자성어에 답변한 교수 935명의 의견을 종합해 많이 나온 단어들을 워드 클라우드로 추렸다. 디자인=김재호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함부로 미래 제시

5위 군맹무상(群盲撫象)은 69표(7.4%)를 받았다. 군맹무상은 ‘눈먼 사람들이 코끼리를 더듬으며 말하다’라는 뜻으로, “자기의 좁은 소견과 주관으로 사물을 그릇 판단하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김승룡 부산대 교수(한문학과)는 추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칭 전문가는 더러 보였다. 그러나 과연 그가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특정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지나친 자신감을 보이는 경향이 만연하다. 더 큰 문제는 사회 전반을 조망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내는 리더의 부재이다. 마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코끼리를 만지면서, 자신의 경험을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격이다. 미래의 비전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너나없이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선정 이유에선 “아무것도 모르면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많이 알면 겸손해지지만 조금 아는 사람들이 자기 주장을 하고 세상을 어지럽힌다”(60대·사회)가 폐부를 찌른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남탓만 하는 이들이 즐비하다. 60대 인문학 교수는 “오늘날 진리와 사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식견도 없이 스스로 똑똑하다는 착각에 빠져 어설픈 주장을 함부로 펼치는 많은 사람들, 특히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싶다”라고 분개했다. 70대 자연계열 교수는 “세계의 문명사적 변화나 미래, 그리고 국가 전체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나 인식없이, 오로지 개인 또는 소속집단과 관련된 오늘의 정치적 계산에만 몰입·집착하고 있는 정치 지도자들의 모습이 매우 안타깝기만 하다”라고 탄식했다.

한편, 이번 설문조사는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온라인으로 실시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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