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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담론 논쟁을 마무리하며
동양담론 논쟁을 마무리하며
  • 교수신문
  • 승인 2001.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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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대안론' 지적 성찰 계기 ... "완전한 대안은 없다"
동양담론에 대한 이상열기는 학계의 논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도올 김용옥 박사의 ‘노자강의’가 이 열기의 진원지였다. 하지만, 철학의 대중화에 대한 긍/부정론, 품위론 등 이른바 ‘도올 논란’은 동양담론의 현재적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로 확대되지 못했다.
그 즈음, 김진석 인하대 교수(철학)가 연세대 대학원 학생회 주최의 강연에서 ‘동양담론의 공허함’이란 주제로 발표를 했다. 그의 주장은 21세기의 대안담론으로 떠오른 ‘동양담론’을 문제삼은 것으로 그 비판의 강도나 내용은 신랄했다. 그는 “‘동’과 ‘서’라는 규정자체는 매우 단순한 추상성에 머물뿐만 아니라 솔직하지도 못한 개념”이며, 군주다움, 신하다움을 강조하는 儒家의 정명론은 신분호칭의 권력에 구성원을 예속시키는 논리라고 비판했다. 道家의 경우도 고도의 지배술적 측면을 가지고 있으며, 노자는 해체의 주체라기 보다, 해체의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노자와 해체론을 관련짓는 학계의 흐름에 대한 정면 도전인 셈이었다. 같은 시기에 ‘한국도가철학회’는 노자를 데리다적으로 해석한 ‘노자에서 데리다까지’(예문서원 刊)를 펴냈다.
김 교수의 문제제기는 동양담론을 둘러싸고 벌어진 세간의 논쟁을 좀더 심화시킬 수 있는 계기라고 판단, 그의 글을 본지 203호에 요약 게재했다. 동양철학계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비판”, “논쟁할 가치가 없는 글”에서부터 “동양대안론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담고 있다”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후 노자철학을 전공한 김성환 군산대 교수의 반론이 그 다음호에 게재됐다. 그의 비판은 격렬했다. 그는 “학문의 서구적 패권을 유지하려는 독단, 철학의 살집에 끼여든 ‘동양’이라는 가시를 견디지 못해 내지르는 투정, 동양이 조금이라도 주목받는 것을 참지 못하는 질투”라고 못박았다. ‘동양개념’의 허구성 주장에 대해 그는 “하나의 문화적 정체로서 동아시아의 실체를 부인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고 비판했다.
김진석 교수의 논리를 “서양패권주의”로 규정하는 김성환 교수의 글은 동양철학계가 처한 ‘현실적 이유’에서 설득력이 있다는 게 중평이었다. 동양철학은 그동안 대학제도 내에서 홀대 당해왔고, 교수수나 강좌에서 서양철학에 비해 차지하는 비율이 현저히 낮았던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서양철학 중심으로 재편되어 왔던 ‘강단철학’의 역사적 구조가 새삼 문제됐던 것이다.
‘관전평’을 보내온 최종덕 상지대 교수(철학)는 “동양철학의 간판을 걸고 장사하거나 전통생태주의를 빙자하여 개인의 보신주의에 빠져버린 주변상황을 볼 때 김진석 교수의 문제제기는 긍정적”이라면서도 공/노자 원전 인용은 편협적인 이해가 있고, 동양철학을 사회철학이란 측면을 배제하고 수양론으로만 보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성환 교수에 대해서는 “또다른 패권주의의 면모”를 지적하며, 김진석 교수의 주된 논지를 빠뜨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지적에 대해 김진석 교수는 “유가에서 형이상학적 측면과 구별되는 사회적 실천의 측면”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했다는 점을 수긍했지만, “당시에 가졌던 유가의 실천적 가치를 지금 회복하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반박문에서 김성환 교수는 노자와 해체론의 접목을 비판하는 주장에 대해 “노자를 ‘해체’한다기보다 강제로 철거시키는 것”이라며, 데리다와 노장의 만남, 하이데거와 붓다의 만남은 “전통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새것’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탐문하는 작업이라 응수했다.
신문지면에서의 ‘학술논쟁’은 단순화의 위험을 피할 수 없다. 두 차례의 공방이후, 한편의 논자가 “신문지상에서 할 수 있는 논쟁의 선을 넘었다”며 학술논문을 통해 본격적인 비판을 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이 논쟁은 일단락됐다. 논쟁을 지켜본 서양철학자 김상환 서울대 교수는 “재미있는 논쟁”이었다며 “앞으로 발전시켰으면 한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논쟁이 마무리될 무렵 도착한 정세근 충북대 교수(철학)의 논평문은 지상논쟁의 결론격에 해당되는 글이었다.
“데리다가 서구의 형이상학을 말하듯 우리는 동양의 철학적 기반을 물어야 한다. 요즈음이 후기 현대일 수 있는 까닭은 오늘이 제2의 현대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동양의 현대’이기 때문이다. 그 현대의 정답으로 노장과 데리다가 반드시 제시되어야할 까닭은 없다.(…) 완전한 대안은 없다. 비판의 수행과 그 결과로서 철학만이 있을 뿐이다.” 생산적인 논쟁을 찾아보기 드문 시대, 본지의 지상논쟁은 그동안 떠들썩한 풍문과 막연한 추상으로만 머물던 ‘동양사상이라는 유령’의 실체를 한꺼풀 벗겨보는 작업이었다. 철학의 몫은 ‘과거의 해석학’이 아니라, 우리시대의 ‘문제’에 대한 해명과 성찰이다. 이 논쟁이 남긴 과제는 바로 그것이다.
김재환 기자 weibli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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