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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만장일치”… 다양성 부족한 헌법재판소
“‘툭’하면 만장일치”… 다양성 부족한 헌법재판소
  • 박수진 기자
  • 승인 2006.05.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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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쟁점: 헌재와 한국사회

지난 2년간 헌법재판소는 ‘현직대통령에 대한 탄핵사건’과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확인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에서 최후의 심판자로 등장함으로써 “사법을 통한 법치주의가 도달할 수 있는 頂点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단순히 ‘법치주의의 승리’라고 보기에는 ‘과도한 정치의 사법화’ 우려가 만만치 않다. 이제 새로이 위상과 대중 인지도가 높아진 헌법재판소는 주어진 권한을 ‘어떻게’ ‘어디까지’ 행사해야 하며, 현재의 헌법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기능적·인식적 전제조건은 무엇인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편집자주

지난 2004년 ‘대통령 탄핵 심판’과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에 관한 결정’ 이래로 헌법재판소에 청구되는 사건 수는 급격히 늘고 있다. 2004년 1년 간 제기된 헌법소원 수는 1천1백79건으로 전년도(1천1백36건)와 비슷하다. 그러다 2005년에 1천4백34건으로 1년 사이 21.6%나 증가했다.

올해는 더 늘 것으로 보인다. 올 1월 헌법소원 수가 1백61건, 2월 1백53건으로 전 달에 비해 각각 18건, 59건씩 늘었다. 3월 한 달에도 153건의 헌법소원이 접수됐다. 대국민 인지도나 위상이 높아지면서 평소에 어디 있었는지도 몰랐던, 또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지도 몰랐던 헌법재판소가 국민 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국민에게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새로운 역할을 하고 있다. 보수 세력들의 정치적 보루 역할이 그것이다. 정태호 경희대 교수(헌법)는 “기득권 세력들이 원내 다수 세력을 잃어버리고서 개혁세력들이 만든 법들을 수용하기 힘들어지자, 헌법재판소를 최후의 보루로 삼고 ‘신문법’이나 시행되지도 않은 ‘개정 사학법’에 대한 위헌성을 심판해달라고 헌재로 사건들을 가져다 놓고 있다”며 “헌법재판소가 ‘정치의 연장전’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헌법이란 ‘정치의 제도나 한계’를 정하는 법이지 정치의 시시콜콜한 사항들을 정하는 법은 아니기 때문에 정치권이 모든 결정을 헌재에서 하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다”라고 정치권의 헌재 이용을 비판했다. 

헌법재판소에 부여된 기능은 헌법보장, 인권보호, 권력통제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인권보호와 권력통제의 기능을 가진다는 점에서 헌재 재판관에는 강한 민주적 정당성이 요구됨에도 현재 헌법재판관 구성에는 ‘민주적 정당성이 빈약하다’는 것이 헌법학 교수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헌법재판관이 되려면 헌법 제 111조 2항에 의해 “법관의 자격”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 헌법재판소법은 ‘법관’의 자격 요건을 더 강화해 “15년 이상 판사·검사·변호사, 변호사의 자격이 있는 자로서 국가기관, 국·공영기업체, 정부투자기관 기타 법인에서 법률에 관한 사무에 종사한 자, 변호사의 자격이 있는 자로서 공인된 대학의 법률학 조교수 이상의 직에 있던 자 중 40세 이상에 달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김종철 연세대 교수(헌법)는 “현재의 헌법재판관 자격 요건으로 인해 ‘엘리트 판사 위주의 법관 선정’으로 인한 동질성이 부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며 “법관 뿐만 아니라 헌법 학자나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전문성을 가진 이들로 자격 범위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15년 이상의 활동 경력으로 재판관 연령이 고령화되어 급변하는 사회에 헌법재판소가 적응하지 못하는 문화적 지체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며 “재판관 고령화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다양성 부족은 현재 속속 나오는 ‘만장일치’ 판결로도 입증된다. 김종서 배재대 교수(헌법)는 “보통 사람도 아홉 사람이 모이면 생각이 저마다 다른데 헌법재판소는 어찌 된 게 ‘툭’하면 만장일치로 모든 재판관이 같은 의견을 내는지 모르겠다”며 “점점 만장일치로 합헌 혹은 위헌 결정 내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이는 법조인 양성 시스템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다. 한국 사회에서 대법관·헌법 재판관으로 임용될 만큼의 법조인 경력을 지닌 이들의 생활 방식, 사고의 배경 등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해 ‘소신에 따라 판결해도’ 만장일치가 다반사라는 것. 결국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양성 확보를 위해서는 자격 완화는 물론이고 현재의 지명방식도 바꿔야 한다. 현재의 대통령 3인, 국회 3인, 대법원장 3인 지명 시스템은 대통령 지분과 여당 지분,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원장의 지분까지 모두 대통령에게로 집중될 우려가 있다. 대법원장의 경우 민주적 정당성도 없는데, 그 지명에 아무런 제재조건이 없는 것도 문제다. 남복현 호원대 교수(헌법)는 “단순한 지분 분할 방식으로 구성돼 있고 여기에 정당이 개입되면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론의 본질이 왜곡될 여지가 크다”며 “숫자로 3등분 돼 있다고 해서 그게 권력분립이 돼서 삼부의 다양성이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국회 선출 방식이나 검증 시스템 등이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다. 남 교수는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되 중립성을 지킬 수 있도록 정치성을 탈색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돼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6년 연임제 역시 헌법 재판소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요소다. 조홍석 경북대 교수(헌법)는 “연임제도는 재판관들이 ‘연임되지 못할까봐 판결에 있어서 여기저기 눈치를 보게 한다”며 "헌법재판관의 독립성이 상당 부분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임기를 늘리는 대신 단임제로 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헌법재판관 구성의 변화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 및 다양성을 부여하는 것은 ‘헌법 개정’ 절차가 필요해 보다 많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헌재 판결에 대한 수많은 논란 종식 차원에서라도 하루빨리 구체화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수진 기자 namu@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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