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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통계정치와 암묵적 지식
대학정론: 통계정치와 암묵적 지식
  • 민경국 논설위원
  • 승인 2006.05.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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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강원대 경제무역학부)

현 정권이 “통계강국”을 내걸고 국가통계인프라를 강화하려고 한다. 이런 강화노력에 대한 반대목소리도 높다. 민간통계에 대한 간섭과 통제의 위험성이 그 반대이유다. 그러나 이런 위험성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정부통계는 국가주의자들이 세상을 보고 듣는 눈과 귀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시장경제를 수정하여 그들이 희망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통계(statistics)와 국가(state)의 어원이 같은 것이 그 증거다. 통계강국의 개념도 정부통계의 낙관적인 믿음을 반영하는 그런 어원의 전통이다. 그러나  이런 낙관 속에 ‘통계의 정치’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정부가 통계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사실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다. 이런 지식은 각처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두뇌 속에 들어 있다. 통계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고유한 현장지식을 전부 ‘의미 있게’ 통계적으로 수집·총합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근원적인 것은 통계수집이 불가능한 지식의 존재 때문이다.  ‘암묵적 지식’이 그것이다. 이런 지식은 계량화는 고사하고 언어로도 표현할 수조차 없는 지식이다. 

하이에크(F. A. Hayek), 폴라니(M. Polanyi)등이  입증하듯이 인간들의 행동의 기초가 되는 지식의 대부분은 암묵적 지식이고 통계적 지식은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인식은 계량-수리경제학의 존재의미를 의심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참혹한 결과만을 남기고 망한 이유, 간섭주의의 실패가 예정되어 있는 이유를 또렷하게 말해준다.

그 이유는 이렇다. 성공적인 계획과 규제를 위해서는 정부가 현장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개개인들의 암묵적 지식을 전부 알아내야 하는데, 이것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정부의 통계생산과 이용이 반드시 필요하고 가능한 영역이 분명히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시민들의 재산과 자유를 보호하는 정부의 과제와 관련된 영역이다.
그러나 이 영역을 넘어서 통계적 지식에 기초하여 펼치는 정부규제는 대단히 위험하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지식에 의존하는 것보다 정부의 숫자노름에 놀아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개인의 존엄성의 박탈이다. 사회과학의 계량-수리적 접근의 위험성을 경시해서는 안 될 이유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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