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물건인 ‘마음’을 가다듬는 공부가 필요
유행 따르며 먹고 마시고 놀자 하는 문화는 절제
율곡 이이(1536∼1584)는 13세 때 진사 초시에 장원급제한 것을 비롯하여 여러 과거시험에 아홉 번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고 불렸다. 율곡은 16세 때 모친 신사임당의 죽음에서 큰 충격을 받았고 3년 상을 마친 뒤 금강산으로 들어가 약 1년 동안 불교에 심취했다.
20세의 나이에 금강산에서 나와 스님과 동행하며 초당에 하룻밤을 묵을 때 지은 선시(禪詩)에 이런 대목이 있다. “도를 배우니 곧 집착이 없구나 … 초당에서 하룻밤 묵어가는데 매화에 비친 달 이것이 풍류로구나.” 고향인 강릉으로 돌아온 율곡은 유학(儒學)으로 향하고자 하는 뜻(立志)의 중요성을 되새기며 “스스로 경계하는 글(自警文)”을 작성했다. 율곡은 자경문에서 “마음은 살아있는 물건”이니 정신을 한결같이 가다듬는 정심(定心)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도 표현했다. 마음을 정하는 힘(定力)이 이루어지 못하면 마음이 요동하여 편안하기 어렵다는 것이 율곡이 성찰한 마음의 특성이었다. 율곡의 나이 40세에, 당시 25세의 임금 선조에게 올린 『성학십요』의 흐름도 자경문과 비슷하게 뜻을 세우는 입지를 주춧돌로 제시한 다음, 항상 마음을 안으로 거두어 가다듬는 경(敬)을 강조했다. 『대학』의 격물치지에 해당하는 ‘궁리(窮理)장’에서는 의리의 해명과 시비 분별의 사유를 엄격하게 할 것을 제안했다. 거경을 단단히 하고 궁리를 충실하게 한 다음에 역행(力行)해야 한다(『이율곡, 그 삶의 모습』, 서울대학교출판부).
열 개의 장으로 구성된 『격몽요결』은 율곡이 42세에 쓴 책으로, “격몽은 몽매한 자들을 교육한다는 의미이고 요결은 그 일의 중요한 비결”이란 뜻이다. 이 책의 목적은 “학문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뜻을 세우고 몸을 삼가며 부모를 모시고 남을 대하는 방법을 가르쳐 바로 마음을 닦고 도를 행하는 기초를 세우도록 노력하게 만든다”라는 데 있다. 자경문의 패턴처럼 뜻을 바르게 세우고, 마음을 바르게 지키고, 행동을 공경히 하라는 거경궁리역행(居敬窮理力行)의 정신을 담고 있다.
독립적으로 살아 있는 물건 같은 마음은 자주 번뇌와 공허감에 휩싸이며 고요를 잃곤 한다. 일반 대중들은 마음이 힘들 때 흔히 중독거리를 찾고, 어떤 대상에 몰입되는 시간 동안 잠시 고뇌를 잊는다. 밖에서 번뇌를 잊게 해주던 대상이 사라지면 또 허전하고 쓸쓸해진다. 그때 다시 오락과 쾌락을 주는 대상을 통해 불안을 씻으려는 시도를 하며 중독에 빠져든다. ‘혁구습장(革舊習章)’은 뜻을 바르게 세우고 용맹정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거경이 우선돼야 한다. 거경을 잃어가는 중독은 ‘나’와 ‘남’ 모두에게 이롭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변하는 유행에 휩쓸리며 바둑·장기·거문고·도박·술·먹고 마시고 노는 것 꾀하기 등은 모두 진실을 지키고 가꾸는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고로 채찍질해서 정화해야 할 구습(舊習)이다.
이치를 궁리하려면 먼저 글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 ‘독서장’에서는 글의 의미를 터득한 다음 실천할 방법을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읽어야 할 책은 『소학』이며, 그 다음에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시경』, 『예경』, 『서경』, 『역경』, 『춘추』이며, 그 다음에는 『근사록』, 『가례』, 『심경』이다. ‘사친장(事親章)’과 ‘거가장(居家章)’에서는 집안의 인간관계와 조상에 대한 예의를 다뤘다. 집안을 다스림에도 예법을 지킴으로써 질서와 화목의 가풍을 세워나가야 한다. 몸을 주신 부모의 은혜에 감사할 것이며, 부부 사이에도 예와 공정한 마음을 지켜야 한다. 자식에게 먼저 읽힐 책도 『소학』이다. 부록의 ‘출입의(出入儀)’와 ‘고사의(告事儀)’ 장에서는 집 밖에 나가거나 귀가할 때 또는 집안의 대소사와 관련하여 사당의 조상님께 “아무개는 장차 아무 곳에 가겠기에 감히 고하나이다.” 또는 “아무는 아무 달 아무 날에 임금의 은혜를 입어 아무 벼슬을 제수 받았고 조상 어른들이 주신 교훈을 받들어 계승하여 봉급과 지위를 얻었나이다”라고 하면서 공손하게 아뢰라고 기록했다. 이는 ‘신화와 의례’를 통해 마음이 무질서하게 분산되지 않게 하는 정력(定力)을 키우고 거경으로 깨어있으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해된다.
최병철 전 청주대 교수(한문교육학과)는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시아출판)라는 저서에서 공자의 사상을 만병통치약이나 약방의 감초로 떠받드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공자의 유효기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공자를 가르칠 때 대부분 유학은 고리타분하다는 부정적인 선입견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 사상에서 “변하지 않고 흐르는 인간에 대한 긍정과 믿음, 사랑”을 바르게 인식하고 오늘날의 사회에 적절하게 적용하는 ‘비판적 계승’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