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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가위가 암도 치료한다
유전자 가위가 암도 치료한다
  • 유만선
  • 승인 2022.12.09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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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선의 ‘공학자가 본 세상’ ⑰

생명을 코딩하는 유전자 편집의 시대
유전인자 제거된 아기들이 탄생할까

최근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술지인 『네이처』에 암을 치료하는 획기적인 방법을 시도한 한 미국 대학의 연구성과가 발표되었다.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편집기술을 이용하여 강화시킨 암환자의 면역세포를 인체 내에 주입, 암세포에 대항하는 방식을 임상실험에 적용한 것으로 기존의 암치료 기술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물론 적용했던 환자 중 일부에만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났고, 일부에서는 어지럼증이나 발열 같은 부작용도 발생했다고 하니 아직 일반 환자들에게 적용되기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소식은 얼마 전 업무로 방문했던 대전의 한 연구기관의 연구자분께서 앞으로의 제약산업은 유전자 가위로 인해 큰 변화를 겪게 될 거라 말씀하셨던 것을 떠올리게 했다.

 

인간의 건강한 T세포이다. CAR-T 요법은 면역 T세포를 부착해 암을 치료한다. 이미지=위키피디아

암은 포유류 중 인간에게 유독 많이 발견되는 병으로 의학기술의 발달로 길어진 수명을 갖게 된 현대인들에게 특히 많이 나타난다. 물론, 과거에도 암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원전 2천600여 년 전 이집트의 기록에 암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그 유명한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가 암조직의 단면이 비정상적으로 뻗어나간 혈관들로 인해 ‘게’의 모양과 같다하여 카르키노스(karkinos)라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암치료에 대한 최초의 기록 또한 이집트에 남아있다. 기원전 1550년 경의 기록에 종양이 생기면 해당 부위를 절개한 뒤 더러운 수건으로 문지르라는 치료법이 적혀있는데 이는 해당 부위를 오염시켜 면역세포들이 모여들게 함으로써 암세포를 공격하게 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로마시대에 의사 코르넬리우스 켈수스는 암을 조기에 제거해야지 시기를 놓치면 암이 더욱 사나워진다고 주장하여 암의 절제술에 대해 언급했다. 

근대적인 치료법의 시작은 1800년대 말에 나타났다. 미국의 의사 에밀 그럽(Emile Grubbe)은 뢴트겐(Rontgen)이 X선을 발견한지 오래되지 않아 이를 치료목적에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1896년 재발한 한 여성의 암 제거에 X선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방사선은 세포의 DNA를 파괴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어 물리적인 절제술을 쓰지 않고 일종의 ‘빛’을 이용해 암세포를 파괴하는 것이다. 하지만 X선은 암세포 뿐만 아니라 경로 상에 있는 정상세포도 공격하기 때문에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한편, 화학적 방식도 암치료에 적용되었다. 세계 1차 대전 때 겨자가스(sulfur mustard gas)를 마시고 죽은 병사들의 사체에서 백혈구가 크게 줄어든 것을 확인한 의사들이 이를 백혈병 치료에 사용한 것이 시초이다. 이후 메클로레타민(mechloroethamine)이라는 최초의 화학 항암제가 194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게 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러한 항암제는 DNA의 복제를 방해하여 암세포 분열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화학적인 암세포 공격 또한 방사선 치료와 마찬가지로 다른 정상세포를 공격할 수 있는 단점을 안고 있다. 

절제술이나 방사선치료, 화학적 치료와 달리 앞서 고대 이집트에서 ‘더러운 수건’으로 시도했던 면역세포를 이용한 치료법도 있다. 언뜻 생각할 때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정상세포와 구분해서 쉽게 치료하지 않을까 싶지만 암세포는 면역세포가 달라붙을 때 면역세포의 관문(checkpoint)이라 불리는 곳을 건드려 면역세포의 기능을 약화시킨다. 이를 막기 위해 면역관문억제제라는 약품이 2011년 출시되었다. 또 다른 방식으로 면역세포의 암세포 탐지기능을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CAR-T 요법이 있다. CAR는 키메라 항원 수용체(Chimeric Antigen Receptor)의 약어로 암세포 표면의 특징적인 항원을 인식하는 CAR를 부착한 면역 T세포를 CAR-T라 부르고 이를 증식하여 환자의 몸에 투여하여 암세포의 탐지 및 공격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2017년 스위스 제약업체인 노바티스에서 이러한 방식의 암 치료제 ‘킴리아(Kymriah)’를 출시했다. 

킴리아가 최초의 유전자 편집 암치료제이긴 하지만, 이번 『네이처』에 발표된 경우는 ‘환자 맞춤형 치료’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암환자마다 암세포에서 발견되는 돌연변이 형태의 단백질에 차이가 있어 기존의 범용 치료법으로는 한계가 있었는데 이번 치료법은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 환자의 면역 T세포의 유전자를 편집하여 환자마다 서로 다른 돌연변이 단백질을 추적하도록 한 것이다. 

암의 발병원인은 인간 외부의 환경적 요인과 함께 내부의 유전적 요인도 무시 못하게 크다고 한다. 향후 미래의 어떤 시점에는 암 발병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전인자를 선제적으로 제거한 아기들이 탄생하지 않을까도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바야흐로 생명을 코딩하는 유전자 편집의 시대다.

 

 

 

유만선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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