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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아름다움의 유통
학이사: 아름다움의 유통
  • 서성록 안동대
  • 승인 2006.05.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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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안동대·미학

과분하게도 내가 ‘아름다움을 유통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이보다 큰 영광은 없을 것이다. 하기는 나는 그간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라면 수소문을 하여 찾아다녔다. 고등학교 때부터 미술서클에 들어 그림을 시작한 이래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아직까지도 미술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미의 향기’에 실컷 취하고 싶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미의 처소를 알아내고 그것의 묘미를 만끽하는 것이 나의 생활이자 전공이 되었다. 전공서적에만 의존하지 않고 볼만한 전람회를 관람하고 틈나는 대로 작가의 스튜디오도 방문하여 다양한 채널로 나의 관심사를 충족시킨다. 

강의할 때도 지식과 정보 전달 위주로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아름다움을 더 많이 느끼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숲이 우거진 학교 뒷동산에 올라가 땅을 밟으며 학생들과 식물을 관찰하기도 하고, 감동을 받은 화가의 작품을 이야기해 주기도 하며, 자신의 소중한 기억, 우리 사회를 훈훈하게 해주는 사람들의 미담을 나누기도 한다.

나의 아름다움의 채집습관은 미술 말고도 30년간 계속해온 음악취미로 이어진다. 나는 연구실에 있을 때나 집에 와서도 온종일 음악을 끼고 산다. 한끼 밥은 굶어도 좋은 음악은 거르지 말자는  ‘악착같은’ 음악애호가이다.

음악을 들을 때면 소리없이 내리는 이슬비처럼 마음을 적시는 아름다운 곡조가 내려앉는다. 까탈을 부릴 필요없이 순순히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리가 마음에 소용돌이를 일으켜 잔잔한 파문을 낳는다. 찌릿한 감동의 물결이 수묵화의 선염처럼 잔잔히 퍼져간다.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집착은 낙원의 삶에 대한 소망과 연결되어 있다. 실인즉 내가 찾는 아름다움은 회한과 괴로움으로 얼룩진 그런 지상적인 곡조가 아니다. 지상에서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하늘나라에 가서야 들을 수 있음직한 ‘영화로운’ 노래를 사모한다.

조금만 마음을 열면, 지천에 널려있는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곱게 풀어놓은 물감처럼 푸르게 물든 드넓은 하늘,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산하의 오묘함, 매년 봄이 되면 일제히 순을 내고 꽃을 피우는 것은 기적이 아니고 또 무엇인지, 너무나 오묘한 일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일일이 셀 수도 없거니와 아름다움에 반응하지 못한다.

나는 이같은 자연이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와 보아야 할 ‘풍경’을 제시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까마득히 잊혀진 것들,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천상의 가락들, 우주에 산란하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자신의 ‘부성적인 은총’을 기억할 수 있도록 아름다움을 물상세계에 새겨놓으셨다고 믿는다. 아름다운 사물을 보며 그 분의 선하심을 느낀다. 이렇게 하는 것은 내가 ‘지상의 아름다움’을 ‘천국의 모형’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진짜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예술가들에게, 그 점을 미처 발견치 못한 학생들의 눈을 열어주는 것을 나의 몫이라고 여기고 있다.

나는 평소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더 갈망케 하는 예술품을 좋아한다. 지상에 살고 있지만 결국 우리가 돌아갈 곳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한번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다만 ‘기억의 아지랑이’요 ‘그리움의 그루터기’로 남아 있는 예술을 오늘도 나는 희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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