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6:45 (금)
박정희의 ‘정치교수’ 몰이, 비판적 지식인 쇠퇴에 영향
박정희의 ‘정치교수’ 몰이, 비판적 지식인 쇠퇴에 영향
  • 강일구
  • 승인 2022.12.06 10: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제연 교수, 한일협정반대운동 당시 교수 집단행동 주목
오제연 성균관대 교수(사학과·오른쪽)는 '대학 교수들의 한일협정반대운동 참여와 정칙교수 파동'이란 주제로 발표를 했다. 홍석률 덕성여대(사학과·왼쪽) 교수는 오 교수의 발표에 대한 보충 의견을 냈다.

오제연  성균관대  교수(사학과·사진)는 학생운동 중심으로 다뤄졌던 한일협정반대운동을 ‘교수 참여’라는 관점으로 조명했다. 오 교수에 따르면 1965년 박정희 정부가 한일협정 조인을 강행하고 이에 반대하는 학생을 폭력적으로 탄압하자, 집단적 의사표현을 자제했던 교수와 지식인도 자극을 받아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저항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첫 저항은 1965년 6월 26일 이화여대와 연세대 교수 300여 명이 정부의 비인도적 과잉진압에 대한 항의문 채택이라고 말했다. 

이어 7월 9일 있던 역사학회·한국사학회·역사교육연구회 등 역사학 관련 3개 학회 300~400명의 회원도 공동성명을 내 한일협정 비준을 반대했고, 12일에는 ‘재경(在京)대 학교수단’도 한일협정 국회 비준에 반대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고 했다. 당시 ‘재경대학 교수단’에 소속돼 서명한 교수는 18개 대학 350명이 넘었다. 또한, 이들은 반대운동이 비정치적이며 민주적이라고 규정하며 영구적이고 전국적인 운동을 벌이기 위해 의장단을 선출하고, 이들에게 집행위원회 인선을 일임하기도 했다고 오 교수는 확인했다.

교수들의 조직적 움직임에 박정희 정권은 위협으로 대응했다는 점도 짚었다. 박 전 대통령은 교수나 학교 당국자를 향해 학원 질서를 유지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행정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또한, 박 전 대통령은 교수를 향해 “학생 선동으로 입신출세를 바라는 기회주의자”, “값싼 인기를 얻으려는 사이비 학자”, “신분이 보장돼 책임지지 못할 망언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학자” 등의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다고 했다. 박 정권은 교수 사찰을 강화하고 협정 반대운동에 참여한 교수를 ‘정치교수’라는 낙인을 찍어 대학에 이들을 파면할 것도 요구했다. 

오 교수는 ‘정치교수’ 파동은 개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당대 언론과 대학 모두가 ‘격파’당한 사건이라고 봤다. ‘정치교수’라 낙인 찍힌 인사 중에는 당시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사상계』와 <동아일보>에서 활동하는 교수가 많았는데, 파동 이후 『사상계』가 교수출신 편집위원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을 해촉할 수밖에 없었고 재정적 압박 또한 가해져 사실상 붕괴됐다고 했다. 이로 인해 언론을 통한 교수의 사회적 발언도 약해졌다고 짚었다.

오 교수는 “‘정치교수’ 파동 이후 교수집단은 권력의 의도대로 순치되기 시작했고, 지성인으로서의 책무보다 신분 문제를 더 신경 써야 하는 처지로 몰렸다”라고 말했다. 대학의 변화 또한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교수의 역할이 쇠퇴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그는 “1960년대에 들어 대학이 제도적으로 안정되고 분과 학문이 공고한 체계를 갖추면서 대학교수의 최고 덕목도 비판적 지성이 아닌, 자기 분야 최고 전문가가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라고 짚었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