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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일생에 반드시 한번, 무슬림 메카 성지순례
[글로컬 오디세이] 일생에 반드시 한번, 무슬림 메카 성지순례
  • 정진한
  • 승인 2022.12.08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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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정진한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
성지순례의 관문 젯다의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사진=정진한 

올해 세계 50여개국 이슬람 국가들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내년에 더 많은 성지순례 비자를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대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는 올해 성지순례가 끝난 직후인 8월부터 종교부 장관이 자국에 배정된 내년도 성지순례 비자의 쿼터를 늘려달라는 담화를 발표했고, 9월에는 대통령이 자국을 방문한 사우디 성지순례부 장관에게 이에 대한 확답을 요구했다.

이와 같은 지속적인 요구에는 자국민에게 최대한 많은 비자를 확보해 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지만 이를 달성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쿼터 확보는 여러 이슬람 국가들의 고질적인 난제였지만, 올해에는 더 어려운 문제가 됐다.

이슬람은 건강이나 재산상의 어려움이 없는 모든 무슬림에게 일생에 반드시 한번은 이슬람력 12월 8일부터 12일 사이에 정해진 코스를 따라 사우디의 메카와 메디나 사이의 성지들을 순례하는 ‘핫즈’를 하도록 의무지었다.

핫즈는 반드시 사우디의 ‘핫즈와 우므라(핫즈 기간 외의 성지순례) 부(Ministry of Hajj and Umrah)’가 발급하는 ‘핫즈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이 비자의 발급 건수는 사우디가 매해 개별 국가와 협의해서 결정한다.

문제는 각국이 원하는 숫자만큼 사우디가 비자를 발급해 줄 수 없다는 점이다. 산술적으로 세계 19억 명 무슬림들이 생애 내에 모두 순례를 완수하려면 성지들은 매년 2천만 명 이상을 한꺼번에 수용해야 한다. 여태껏 사우디는 반복적인 확장을 통해 1920년대에 10만 명 에도 못 미치던 수용 가능 인원을 2012년 316만 명 까지 끌어올렸지만 여전히 수요에는 크게 못 미친다.

그마저도 연이은 사고를 거치며 최근에는 250만 명 내외로 조정했다. 이에 사우디는 전 
세계 무슬림들에게 공평한 기회가 가도록 나라 별로 약 1천 명의 무슬림 당 한 명분의 쿼터를 매년 배분해 준다.

이에 맞춰 각국은 순례객들을 선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우디는 ‘핫즈’ 비자를 발급한다. 이처럼 구조적으로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치니 해마다 각국 정부는 사우디에 자국 몫의 쿼터 증가를 요구한다. 만약 전년보다 많은 쿼터를 확보할 경우 이를 자국민에게 적극 홍보하고, 여의치 않을땐 이미 확보한 쿼터를 줄이지 않을 것을 사우디로 부터 확인하는 협약식이라도 맺는 등, 각국은 자국의 외교역량을 총동원해 보다 많은 쿼터를 확보하려 한다.

이처럼 핫즈 대기자가 적체되던 2020년,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매해 250만 명이 대기선상에서 빠져야지만, 2020년에 1천 명, 2021년에 6만 명, 2022년에 100만 명만이 순례를 마치면서 650만 명이 대기 인원에 더 보태졌다. 덕분에 인도네시아에는 40년 치의 순번이 밀려버렸고, 말레이시아는 심지어 114년이나 기다리게 생겼다.

더구나 올해 순례는 전염병에 취약한 65세 이상 고령자의 순례를 제한했기에, 많은 노령층은 순례를 갈 수 없는 건강상태에 놓이거나 자신의 생애에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초조해하고 있다. 

실제로 필자는 여러 시골 마을에서 대부분의 노인들이 미리 순례비를 공탁하고 매년 추첨에 응모했음에도 대부분은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기 전에 운명하는 현실을 목도했다.
물론 사우디는 적극적으로 이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먼저 쿼터에서 25%를 65세 이상 노인에게 우선 배정했고, 순례 대상자였지만 팬데믹으로 지연됐던 이들부터 비자를 발급했다.

또 2030년까지 스마트 ID 등의 디지털 기술까지 동원해 핫즈와 우므라 순례객의 수용범위를 3천만 명까지 확대하겠다고 했고, 타우피끄 알-라비아 핫즈와 우므라 장관은 무려 2천억 사우디 리얄(약 71조842억 원)을 쏟아부어 메카 대성원을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 시설의 확충은 한편으로는 경제적 기대 효과가 큰 투자이기도 하다. 관광시장 개방 이전인 2019년까지 사우디는 순례만으로도 이미 관광 대국 이집트와 모로코를 아득히 뛰어넘는 중동 최대의 관광지였다. 성지순례는 몇백만 원 선에서 일주일 내에 순례를 마치는 간소한 여정부터 몇 주 또는 한 달 이상 체류하며 수백에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여정까지 다양하다. 

순례 말미에 순례객들은 성스러운 잠잠 샘물 등의 각종 기념품들을 한껏 구입해 친지와 지인들에게 선물한다. 이 덕에 메카는 사우디에서 세번째 가는 대도시로 성장했다. 하나님의 성지 메카와 예언자 무함마드의 성지 메디나, 그리고 이 여정의 관문인 젯다를 오가는 성지순례는 이제 일반 관광과의 접목을 시도 중이다.

지금 성지순례코스에는 대규모 박물관과 역사 문화 탐방코스가 레져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연계해 개발 중이고, 대형 숙박시설과 쇼핑센터 및 의료관광 시설도 함께 들어서고 있다. 

메카와 달리 비무슬림의 접근이 가능한 메디나에는 이미 한국의 패키지 관광객들이 입국을 시작했다. 일반 관광에 대한 투자와 성지 순례 시설의 확장이 일으키는 시너지가 순례를 
갈구하는 이들의 기다림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를 기원해 본다.

 

정진한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

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이슬람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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