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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쏘공이 더 이상 불필요한 사회를 꿈꾸며
난쏘공이 더 이상 불필요한 사회를 꿈꾸며
  • 김병희
  • 승인 2022.12.09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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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광고로 보는 시대의 표정⑫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문학과지성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광고
(동아일보, 1978. 7. 14.)

우리의 주거 공간인 아파트는 오래 전에 어느 가족이 오순도순 살아가던 터전을 몰아내고 세운 자본주의의 성채(城砦)일지 모른다. 산업화의 성과를 알리는 휘황한 불빛 뒤에는 어둠이 더 짙게 드리워졌다. 산업화 과정에서 삶의 터전을 빼앗긴 도시 빈민의 생활은 더 비참해졌다.

1978년 6월 5일에 발행된 ‘난쏘공’은 문학사적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83쪽) 이때부터 난장이는 경제 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소외 계층을 대변하는 전형성을 확보했다. 

문학과지성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광고를 보자(동아일보, 1978. 7. 14.). 광고에서는 소설집의 성격을 이렇게 규정했다. “난장이와 그 가족이 우리 문학과 독서계에 던지는 신선하고도 가열한 충격!” 이어지는 보디카피에서는 ‘뫼비우스의 띠’로부터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에 이르기까지 12편의 단편을 묶은 난장이 연작(連作) 소설집이란 사실을 밝혔다. 광고의 왼쪽 상단에 책 표지를 작지만 또렷하게 배치하고 책값이 1,300원이란 정보도 알렸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초판의 표지 (1978)

평론가 두 분이 산업화에 따른 성장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며 소설집을 읽어보기를 권했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광포한 산업시대의 허구와 병리를 폭로하면서 사람답게 살아야 할 꿈과 자유에의 열망을 보여주는 문제작”이라고 진단하며, 사람답게 살아가는 문제를 소환했다.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70년대 한국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우리 문학에 새로운 비약을 마련해주는 야심작들”이라고 평가하며, 사회 문제에 주목하기를 권고했다.

염무웅이 지적한 1970년대 한국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란 무엇인가? 박정희 정권은 경제 성장을 통해 정권의 정통성을 정립하려 했고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성장 위주의 경제 정책은 계층 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1970년대의 한국사회는 산업화의 시기로 명명할 수 있는데, 산업화를 통한 압축 성장 과정에서 강요된 저임금 문제는 도시 빈민과 노동자의 불만을 야기했다. 전태일의 분신 사건(1970), 동일방직 사건(1978), YH무역 사건(1979)은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살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저항 투쟁이었다.

소설 제목으로 쓰인 ‘난장이’는 1970년대 한국사회의 경제 구조에서 소외된 피지배 계층을 상징하는 전형적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산업화의 그늘에서 이리 쫒기고 저리 빼앗기며 신산(辛酸)스런 삶을 살 수밖에 없던 그런 존재였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구조적으로 불평등한 사회에서 벗어나 상승하려고 몸부림치는 하층민의 낭만적 열망을 상징했다. 소설에서 난장이, 꼽추, 앉은뱅이 같은 도시 빈민들이 등장해 ‘작은 공’을 쏠 그날을 기다리며 현실의 고통을 유예하는 장면들은 실로 눈물겹다.

소설집에 실린 12개의 단편 중 어떤 것을 읽어봐도 소외된 군상들의 비루한 일상이 펼쳐진다. 산업화 과정에서 심화된 양극화 문제와 어두운 현실을 모든 작품에서 비극적으로 제시하면서도, 그 비극을 직접 서술하지 않고 동화적 필치로 묘사함으로써 현실의 실루엣이란 느낌을 주었다. 이런 미학적 성취는 작가의 글 솜씨가 뛰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경지였다. 이 소설은 초판 발행 6개월 만에 10만부가 팔렸고, 2017년 4월에 300쇄를 돌파했으며, 현재까지 약 20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연극, 영화, TV 단막극, 창작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한글 맞춤법으로 보면 표준말은 난장이가 아닌 ‘난쟁이’다. 작가가 표준말 대신에 소설의 성격에 맞게 일부러 속어를 썼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난쏘공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도시 빈민의 고통을 간결한 문체와 환상적 분위기로 묘사한 명작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주인공은 아파트 공사가 한창인 ‘낙원구’의 ‘행복동’ 동사무소를 찾아가지만 난쟁이를 위한 공간은 없다. 소설에서는 독재 정치에 체념하고 자본의 안락함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산업화의 음지 문제를 양지로 소환하며, 도시 빈민의 불평등 문제에 눈을 뜨라는 시대의 표정을 제시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틀라스가 하늘을 떠받치듯, 철거민들의 아우성이 도시의 빌딩 숲을 떠받치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당시 대학생들은 이 책을 읽으며 민중의 열악한 현실에 눈 떴다. 예컨대, 소설가 김영하도 잠실이 모래 위에 세운 꿈의 낙원이 아닌 철거민을 짓밟고 건설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쇠공이 언젠가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을까 불안했었다며, 난쏘공은 “읽을 때마다 새로웠고 읽을 때마다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김영하, ‘70년대 사회 향해 쏘아올린 외침’ 조선일보, 1997. 10. 22.).

소설이 나온 지 45년이 지났지만 도시 빈민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빈부 격차나 양극화 문제가 오히려 심화된 측면도 있다. 난쏘공이 더 이상 불필요한 사회를 만들 수는 없을까?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편집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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