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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지난 귀국 타령은 이제 그만
철 지난 귀국 타령은 이제 그만
  • 김병희
  • 승인 2022.12.05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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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이 글을 읽은 독자께서 국내파 대 유학파 교수의 갈등으로 오해할까봐 조심스럽다. 국내파와 유학파로 구분해 대립 구도를 부각시킬 뜻은 추호도 없다. 다만 학술대회장에서 종종 등장하는 귀국이란 말의 실상과 허상을 소개하고자 할 뿐이다.

학술대회에 가보면 발표자, 토론자, 사회자가 있다. 각각 자신이 맡은 역할만 잘 하면 될 텐데 어떤 유학파 교수들은 발언 도중에 “귀국한 지 O년째인데요”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한다. 외국 명문대에서 박사를 받았지만 귀국의 ‘귀’ 자도 꺼내지 않는 분들도 많지만, 어느 자리에서든 ‘귀’ 자 꺼내기를 좋아하는 분들도 꽤 많다. 한 번도 귀국해보지 못한 국내파 교수들은 그 순간 감정이 복잡해질 터.

외국에서 남의 말을 읽고 쓰며 공부하느라 고생했기에 갓 귀국한 신진 학자라면 그래도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외국 대학의 박사과정 입학 전형에 합격하고, 외국어로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얼마나 고생이 심했겠나. 어렵게 공부하고 돌아왔으니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이해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10년 이상 교수 생활을 한 분이 귀국 몇 년째라며 은연중에 유학파임을 암시하는 경우도 많으니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귀국하지 말고 외국 대학에 자리 잡을 것이지, 왜 귀국하셨느냐고 묻고 싶을 텐데 참고 있는 분들도 꽤 많으리라. 

취중진담(醉中眞談)이란 말처럼 무의식중에 하는 말이 그 사람의 솔직한 마음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귀’ 자를 자주 내뱉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유학파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알리고 싶어 하는 셈이다. 말 안 해도 다 알고 있는데 10년이 지나도록 유학파라는 사실을 그토록 알리고 싶은 것일까?

자신이 유학파임을 암시하는 소개 방법은 국내파들이 우리나라 어느 명문대의 학부를 졸업한지 10년째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싶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렇게 말했는데, 그가 자주 쓰는 언어의 집합체가 그 사람을 말한다는 뜻이다. 귀국한 지 몇 년째라는 말을 자주 꺼내는 사람일수록 유학파라는 사실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분에게는 유학도 학력 세탁 방법이 되니, 국내 대학시절의 학력 콤플렉스를 귀국이라는 언어로 포장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면, 유학은 좋은 포장지가 되기도 한다. 논리실증주의를 개척한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이다.” 언제 귀국했다는 말 말고 지금의 자신에 대해 딱히 할 말이 없는 교수는 스스로 어떤 한계에 갇혀 사는 분이다.

한 번도 귀국해보지 못한 국내파 교수들은 처음에는 귀국한 분들을 부러워하고 존경하다가도, 입만 열면 ‘귀’ 자를 꺼내는 바람에 나중에는 실망하고 아예 귀를 닫기도 한다. 유학에 쏟아 부은 돈과 공들인 시간을 생각해서라도, 귀국해보지 못한 교수들에게는 다소 어려운 특급 국제 학술지에 좋은 논문을 게재하고 연구에 매진하면 좋으련만, 다른 곳에 정신을 팔고 귀국 타령만 하고 있으니 아예 귀를 닫는 것이다.

국어사전에서는 귀국(歸國)을 “외국에 나가 있던 사람이 자기 나라로 돌아옴”으로 풀이하고 있다. 사전 뜻풀이에 기대면 인천국제공항을 빠져나오는 순간 귀국의 의미는 사라진다. 다음 말을 살펴보자. “그는 엄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을 서둘렀다.” “회사의 부도 소식에 정 회장은 남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급거 귀국했다.” 귀국이란 말은 이런 상황에서 써야 가장 적확하며 언어의 생동감이 발휘된다.

영어의 뜻도 크게 다를 바 없다. 귀국(go home)이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집에 돌아왔으면 출국할 일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귀’ 자를 좋아하는 분들이여! 철 지난 귀국 타령은 이제 그만 멈추시고,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뭐하며 살아가는지 이야기하시면 안 될까요?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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