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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전, 별에서 온 영웅들의 이야기
수호전, 별에서 온 영웅들의 이야기
  • 최승우
  • 승인 2022.12.02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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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민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24쪽

“젊어서는 『수호전』을 읽지 말고, 늙어서는 『삼국지연의』를 읽지 말라?”

한 권으로 읽는 108 수호 영웅의 활약상과 흥망,
다면적인 캐릭터와 다채로운 풍속도가 펼쳐지는 장르콘텐츠의 원형을 찾아서

기기묘묘한 옛날이야기는 어떻게 이어졌는가?

주자학의 도그마에 갇혀 있던 시절에 『수호전』은 “도둑질을 가르친다”며 종종 금서로 지목되곤 했다. 하지만 금서 조치는 결국 행정적 액션에 그쳤을 뿐, 독서의 열기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선의 왕 정조가 “근래 잡서를 좋아하는 자들이 『수호전』은 『사기』와 비슷하고 『서상기』는 『시경』과 비슷하다고 한다”며 비판하고, 정약용이 “요즘 뛰어난 선비들이 대부분 『수호전』, 『서상기』 같은 책에서 발을 빼지 못한다”고 우려해도 소용없었다.

중국 명나라 말기부터 시작된 ‘미디어 혁명’으로 출판 인기 아이템이었던 소설류 중 특히 ‘수호열水滸熱’의 독서광풍이 조선의 새로운 문화적 트렌드가 되었던 것은 당연지사. 처음에는 악평을 퍼붓던 허균조차 『수호전』의 뛰어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 간 사신들의 연행록에도 『수호전』에 등장하는 지역을 지나면서 감상을 남기거나 수호 이야기 공연을 본 견문 등이 언급된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18세기 이후 관례가 되다시피 했다.

이처럼 수백 년간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널리 읽혀온 『수호전』은 영웅소설 계통은 물론 근대의 무협소설, 특히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끈 진융金庸의 소설 등에까지 이어지면서 끊임없이 변주되고 재생산되어왔다.

시대를 뛰어넘어 수많은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수용되고 있는 『수호전』의 장르콘텐츠로서의 원형성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니, 장편 역사소설 『폼페이 최후의 날』을 쓴 에드워드 리튼의 말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에서는 최신의 연구서를 읽고, 문학에서는 가장 오래된 책을 읽어라.”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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