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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큰 것을 가르치기
나보다 큰 것을 가르치기
  • 김선아 한양대
  • 승인 2006.05.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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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김선아 한양대 교수 ©
김선아 / 한양대·응용미술교육

 

내가 강단에 서는 순간은 ‘미술’과 ‘교육’이라는 객관적인 지식 체계를 기술적으로 전달하는 일로 축소될 수 없을 만큼,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만족감과 도전을 준다. 학생들이 관심 있게 귀 기울여 듣는 모습을 통해서, 내가 제시한 주제에 관하여 열정적으로 토론하는 모습에서, 또한 그들인 많은 생각, 시간, 노력을 쏟아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과제를 보면서 가르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바로 그 가르치는 일로 인해 깊은 절망과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에 관하여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할 때에나 학생들과 서먹한 관계를 느낄 때 나는 혼란과 고독을 경험한다. 가르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관하여 파커 파머는 ‘가르칠 수 있는 용기’라는 그의 책에서 이를 세 가지로 다루고 있는데, 그의 글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에 앞서 교사로서 나는 누구인가를 인식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첫 번째 문제는 내가 가르치는 학과가 매우 크고 복잡하여 나의 지식이 항상 부분적이라는 것이다. 미술과 교육이 가지는 여러 가지 공통점 중의 하나는 이들이 어느 사회에도 존재하는 ‘실체’이나 몇 가지 이론으로 정리될 수 없는 불확실성과 복잡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미술은 대중의 삶과 유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우리의 문화적 지표가 되기도 하며, 교육은 사회의 해결책으로 여겨지기도 하면서 동시에 모든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기가 일쑤이다.

 

이러한 두 영역이 결합되어 있는 ‘미술교육학’ 안에서 나의 경험과 지식은 한정적이며 그 전체는 내가 알 수 있는 범위 이상의 것이다. 내가 많은 연구와 독서를 통하여 이에 한걸음씩 다가간다 해도 미술교육은 사회와 문화 속에서 다시금 변화하게 되므로 나는 항상 그 뒷모습을 보고 있는 것과 같다.

둘째로 가르치는 일에서 매일 마주치는 문제는 내가 마주 대하는 학생들이 나의 생각보다 크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강의시간은 마치 춤판에 나서는 것과 같다는 표현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날은 신명나게 한판 춤을 추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내가 아무리 춤을 권해도 학생들은 심드렁하기만 하다. 무관심하고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나의 말이 공허한 메아리로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느낄 때, 그저 강의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함께 생각하기를 거부하며 외면하는 학생들에게 현명하게 반응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전인적으로 존중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가 '솔로몬과 프로이드를 합쳐 놓은 것 같은’ 불가능한 사람이 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연구에 매진하고 학생들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욱 교직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세 번째 요인은 강의를 통하여 내가 내 자아를 가르친다는 점이다. 파커 파머는 가르침을 ‘자신의 영혼에 거울을 들이대는 행위’로 묘사하였다. 내가 미술교육과, 학생들과, 학교와, 사회와 의사소통하며 연결되는 방식에는 나의 자아의식이 투영되어 있으며,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의 대화 속에서 나 자신을 보게 될 때 가르침과 배움의 구별은 무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강의실을 들어설 때마다 나는 흥분과 기대 뿐만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은 두려움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모더니즘적 사고에 기초한 근대적 교육은 가치중립적이며 객관적인, 자신과 분리된 공적인 교사상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강의시간은 이제까지 나에게 지적 활동임과 동시에 감정적이고 내면적인 경험이었으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미술이 개인의 창작인 동시에 사회적 의사소통인 것과 마찬가지로, 교육은 지식을 가르치고 지적 관심을 공유하는 공적인 것과 자아를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사적인 것의 교차점에 위치한다.

 

오늘도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회복하는 일은 아마도 이러한 모순을 인정하고 그 관계성을 회복하는 것으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가르치는 일은 개인으로 존재하는 내가 연결짓기를 시도하는 것이며 다양한 관계들을 통하여 ‘우리’가 되는 것을 배우는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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