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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보다 '전문가' 요구’…知性 회복이 해답
'스승'보다 '전문가' 요구’…知性 회복이 해답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6.05.12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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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에 ‘스승’을 생각한다

1958년 충남 논산에 위치한 강경여고(現 강경고) 학생들이 병상에 누워있는 한 스승을 위문하고 퇴직교사를 기리면서부터 시작된 ‘스승의 날’이 올해로 48년째를 맞이했다. 비록 몇 명되지 않는 여고 학생들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지만, 반세기의 세월이 지나면서 이제는 매년 5월의 중요 기념일로 여겨질 만큼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스승의 날’의 유래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현실이 증명하듯, 최근 ‘스승의 날’의 의미가 애초와 달리 퇴색해 가고 있다. 스승도, 제자도 그리고 학부모까지 부담스러워 한다.

“저기요”로 불리는 교수

대학 사회 역시 이런 풍경이 고스란히 보인다. 학과 학생회 차원에서 마련되던 ‘스승의 날’ 행사는 슬금슬금 하나둘 씩 사라진 지 오래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오히려 교수가 고사하는 사례도 종종 보인다. 물론 일부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음식을 직접 마련해 오찬을 대접한다거나, 총학생회 집행부 학생들이 교수에게 꽃을 달아주는 ‘일회성’ 행사가 계획되어 있지만, ‘스승의 날’이 거죽만 남아가는 현실을 부정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런 상황을 두고 원인 분석이 분분하지만 일단, 교수의 지식인으로서의 책무 방기가 ‘스승’이라는 개념을 쭉정이로 만들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이왕주 부산대 교수(철학)는 “독재정권 시절 학생들이 권력과 싸울 때 교수들은 오히려 독재 권력에 동원되고, 학생들에게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맞서라는 말을 못했던 현실로 인해 ‘스승’은 ‘가르치는 사람’으로 변질됐다”라고 말한다.

 

삶 속에서 학생들에게 깨달음과 배움의 화두를 던져주지 못함으로써 스스로를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로 한정짓고, 이에 따라 교수가 기능인으로 전락하는 안타까운 현실과 마주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80년대 학부과정을 마쳤다는 어느 교수 역시, “수업 시간에 중의적인 방식으로라도 사회 현실을 비판하는 교수님이라야 진정한 선생님으로 받아들였던 분위기였다”라며, 이러한 의견에 뜻을 같이했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라는 거대한 과제가 해결된 후 대학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는 ‘스승’의 무게감을 다시 한 번 반감시켰다는 의견도 나온다. 양진오 대구대 교수(국문학)는 “교수들이 점점 더 학생 취업률, 연구 성과 등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이게 되면서 ‘스승-제자’의 관계를 맺기가 사실상 어렵게 됐다”라고 말한다. 학생 자원을 두고 대학과 대학 사이의 피 말리는 경쟁을 벌여야 하고, 끊임없이 연구 성과를 내놓지 않으면 교수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상황으로 인해, 스승-제자보다는 지식의 제공과 수용이라는 기능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교수-학생 관계만을 맺을 수밖에 없게 됐다는 해석이다.

이런 현실은 학생들이 교수에게 스승이기보다 전문가이기를 요구한다는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교수신문이 전국 5개 권역의 대학 신입생 6백30명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8명의 학생들은 교수에게 ‘풍부한 학문과 지식 전달’(62.1%), ‘진로 및 취업 상담’(18.9%)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교수와의 격의 없는 대화를 하고 싶다는 의견은 12.1%에 불과했다. 나기정 충북대 교수(수의학)는 “전문성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것은 기본”이라면서도, “인간적인 면이 빠진 채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교수와 학생 사이에 관계가 맺어지는 것은 씁쓸한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교수 스스로가, 그리고 대학에 스며든 경쟁담론이 ‘스승’이 발붙일 곳을 없애면서 모두가 스승의 날을 ‘의례적인 행사’로 느끼도록 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승훈 경성대 교수(한문학)의 경험처럼 학생들에게 “교수님”도 아닌, “저기요”라고 불려도 그저 서글픔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러한 맥락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스승, 새로운 세대 ‘어법’ 이해 필요

이처럼 시대가 변화하면서 ‘스승’의 의미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퇴색돼가지만, ‘21세기 스승상’의 정립은 결국 학문적, 시대적 소명을 다하는 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임운택 계명대 교수(사회학)는 “널리 알려진 이가 아니더라도 마음씨 좋은 ‘키다리 아저씨’가 되기보다는 학문적 수행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하면서도 시대적 과제에 대해 깨어있는 지식인의 역할을 하는 이가 결국 스승이 아닌가 싶다”라고 말한다.

김국태 호서대 교수(철학)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 사회적, 문화적 코드가 다른 새로운 학생 세대의 ‘어법’을 이해하는 데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 “스승이라면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 학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왕주 부산대 교수는 “현재는 스승의 날이 허위의식처럼 느껴질 정도로 고통스러운 과정에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스승상을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올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민선 기자 dreame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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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06-05-13 22:59:21
교수를 저기요라 부르는 일이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서글퍼고요. 그런데 그 분석이 좀 이상하군요. 군부독재 때 할 말을 안해서 그랬다고 하는데 지금 대학생이 80년대 분위기 파악을 해서 그럽니까? 그때부터 주욱 이어졌다고요? 그럼 설문조사에서 전문지식을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선택한 요즘 대학생들과 충돌합니다. 그리고 이 설문 해석도 이상하네요. 전문성이 기본이지만 인간관계를 소홀히 해서 스승이 없어졌다고요? 그럼 그 설문에서 이 두 항목을 동시에 설정할 수 있게끔 물었어야 하는데 그랬을 것 같지도 않네요. 사소한 잘못 하나 더. 부산대 이왕주 교수는 철학과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