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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화/과학’ 112호 ‘지역에서’” 특집호 발간
계간 “‘문화/과학’ 112호 ‘지역에서’” 특집호 발간
  • 최승우
  • 승인 2022.11.25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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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특집은 지역을 낙오된 피해의 현장으로만 바라보는 것을 넘어 역동적 실천과 주체적 삶이 전개되는 공간으로 재인식하려는 시도
-서울이 다른 지역의 인구와 자본을 빨아들이면서 서울과 지역의 격차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으며, 그 격차에 대한 무지와 불감증이 폭력적 발화와 혐오를 낳고 있음
-그럼에도 지역은 무기력한 낙오자, 울분 가득한 피해자가 있는 공간인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적 흐름과 가치를 만들어 내는 공간
-하지만 지식과 담론을 주도하는 서울에 가려 지역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지역의 목소리를 직접 담기 위한 기획
-부산, 거제, 고흥, 고창, 옥천 등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고 연구하는 필자들이 특집에 참여해 지역정치와 경제, 페미니즘, 지역사 연구, 지역문화운동을 새롭게 고찰
-제1회 『문화/과학』 문화비평 공모전 당선작 수록: 미술운동이 금융자본주의와 조우하는 아이러니를 짚어내면서 오늘날 자본주의의 헤게모니화 과정을 날카롭게 분석

『문화/과학』112호 특집은 부산, 거제, 고흥, 고창, 옥천 등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고 연구하는 필자들의 글을 실었다. 이들은 모두 지역정치와 경제, 페미니즘, 지역사 연구, 지역문화운동과 같은 영역에서 길어낸 성찰과 체험을 글에 담아줬다.

이들의 말이 지역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역은 획일적이고 동질화된 공간이 아니라, 그 지역의 역사와 경제와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다양한 현재를 구성해나가고 있는 유동적 의미망이다.

이들은 지역을 대표하여 부활의 방책을 외치기보다 각각 처해 있는 현실 속에서 겪고 있는 절망과 희망, 좌절과 극복, 넘어짐과 일어섬의 중간 단계들을 성실하게 증언해줬다.

송은영은 특집을 여는 글에서 지역 문제를 사유하는 새로운 관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 글은 우리의 상상력을 발전주의와 현대화로 가두면서 “담론적 굴레”로 작동하는 서울/지역의 이항대립 구도를 넘어, “끊임없는 이동”과 “유동적 장소성”에 바탕을 둔 로컬리티 기반의 시선을 포착해 지역 문제를 새롭게 사고할 것을 주문한다.

하승우는 ‘성장 연합’과 관료조직 구조가 지역 현안을 독점하면서 부정부패와 전횡을 양산하고있지만 이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매우 어려운 일이 됐다고 진단한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제도 중심의 접근에 앞서 “위계와 능력주의에 대한 싸움”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이원재는 문화운동을 통한 지역의 재구성을 모색한다. 이 글은 로컬과 커먼즈 그리고 지역문화생태계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지역을 새롭게 문제설정하면서 사회적·생태적 재생산의 위기에 직면한 우리가 지역에서 고민하고 주목해야할 지점을 시의적절하게 풀어낸다. 명인은 전남 고흥으로 이주한 뒤 겪게 된 다채로운 경험을 토대로 지역에서 페미니즘의 실천이 무엇인지 서술한다.

이 글은 지역에서 페미니즘적 실천을 한다는 것이 특정 지향성과 이념을 계몽적으로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적 가치에 비춰 노동, 나눔, 돌봄, 지역의 인간관계를 재구성하고 실천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양승훈은 지역이 가부장적 정상가족을 꿈꾸는 남성 중심의 낙후한 공간이라는 익숙한 비판을 하기보다 중화학공업화 정책에 의해 ‘산업 가부장제’가 형성된 역사적 과정을 살핀다.

이 글은 또한 해체되는 산업도시의 정상가족 프로젝트, 그와 더불어 와해되는 지역 청년의 꿈을 짚어내면서 아직 목소리를 내지 못한 로컬 행위자들의 실천을 전파하고 주류화할 것을 제안한다.

지역 연구자들의 현실과 열망의 구도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신현아는 서울 중심의 학계 구도에 단순히 분노하기보다 자신이 겪는 일이 지역 차별인지 아닌지조차 불분명해지는 내적 갈등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 글은 또한 지역 연구가 애향심이 아니라 다른 세계를 향한 열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현장에서 발견하는 해방의 계기와 실마리를 들려준다.

듀선생은 연구를 하려면 서울로 가야한다는 ‘서울 연구자’의 ‘충고’를 듣는 ‘지방대’ 연구자의 체험을 솔직하게 그리면서, 그동안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라는 동명의 웹툰이 지역 연구자들과 학문후속세대의 공감을 얻었던 이유를 어김없이 보여 준다.

* 동시대 분석: 이번 호 ‘동시대 분석’에는 지역과 미디어, 인플레이션과 탈성장,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다루는 세 편의 글을 실었다. 권두현은 지역이 미디어에서 어떻게 재현되는지, 제주도를 주요 사례로 힙스터가 지역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흥미롭게 보여주면서 지역성에 기반한 지역문화운동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열어준다.

신승철은 노동, 자본, 기후위기, 금융과두정, 전쟁을 인플레이션의 요인이라고 주장하는 각각의 입장을 검토한 뒤 자본의 성장주의가 기후위기 상황에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으며 인플레이션을 오히려 탈성장의 계기로 삼자고 역설한다.

몽은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반차별 운동의 계보 속에 위치시키면서, 그 법의 제정 전망이 차별과 혐오의 문제가 특정 ‘소수자’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평등원칙을 세우는 문제임을 진심으로 알게 되는 사회적 경험”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 제1회 『문화/과학』 문화비평 공모전 당선작: 이번 호 『문화/과학』은 처음으로 공모전을 실시해 문화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주는 당선작으로 정강산의 글, 「절대자본주의와 미술: 불안정의 정동, 카지노, 신생공간, 예술노동」을 선정했다. 정강산은 미술운동이 금융자본주의와 조우하는 아이러니를 짚어내면서 오늘날 자본주의의 헤게모니화 과정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 텍스트의 발견: 지역 이주여성과 관련한 두 권의 책과 영화에 대한 책을 다룬다. 아정은 우춘희의 『깻잎 투쟁기』와 한인정의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를 다룬 글에서, “싸워야 살아 낼 수 있는 삶들”을 살아가는 이주여성들의 목소리가 가족 제도와 법치주의를 흔들고 비가시화된 존재의 권리라는 쟁점을 드러내는 데 주목한다.

조지훈은 하승우의 『비교의 항해술』을 자본주의 사회의 맥락 안에서 영화에 기입된 역사를 읽을 수 있는 영화이론을 모색하는 시도로 이해하면서 그 이론적 항해의 의의와 어려움을 함께 보여 준다.

* 이론의 재구성: 임춘성은 40년 동안의 비판적 중국연구의 쟁점들을 회고하고 그 의의를 현재화한다. 문학연구, 문화연구, 사이노폰 연구, 포스트식민 번역연구 등 그의 학문적 여정은 문화연구 및 문화이론의 맥락에서 중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일정한 참조점이 될 것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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