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와 표현 수준에 구애받지 않고 무용총 수렵도와 비교할 수 있는 5세기 전후 중국회화에 등장하는 수렵도를 찾는다면 먼저 서진 시기의 ‘감숙 가욕관위진3호묘 화상전’그림을 꼽을 수 있다. 4세기 초로 편년되는 이 벽돌무덤은 무덤칸 안의 일부 공간이 화상전으로 장식됐는데, 앞방 동벽 중간부분의 윗줄 화상전들이 수렵도 화상전이다. 말을 타고 달려가면서 사냥물을 향해 활을 겨누거나, 짐승의 등에 창을 꽂으려는 순간 등이 각각 독립장면으로 화상전에 묘사됐다. 배경은 한두 그루의 나무로 대신했고, 화면에 몰이꾼이나 여러 마리의 짐승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벽돌의 한 화면에 표현대상을 늘리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화면공간의 제한을 받는 화상전 그림이기도 하지만 같은 벽면에서 여러 개의 벽돌면 위에 회를 발라 화면을 넓힌 다음 행렬도를 그린 부분도 있는 점을 고려하면 벽돌 한 장의 넓은 면을 화면으로 삼은 수렵도 화상전은 ‘수렵’이 무덤칸 장식의 일반적인 제재들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질주하는 말의 자세나 창을 꼬나쥔 기마수렵꾼의 모습은 사실적으로 잘 표현됐지만, 화면에서 무용총 수렵도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의 탄탄한 필력은 느끼기 어렵다.
6세기 전반 경 제작된 249굴의 수렵도는 거칠게 좌우로 뻗어나간 산줄기 사이의 트인 공간과 골짜기를 배경으로 호랑이와 사슴수렵에 열중하는 장면을 담았다. 놀라 달아나는 노루와 포효하며 달려드는 호랑이를 향해 두 기마수렵꾼이 장궁을 당겨 화살을 날리려는 순간이 잘 포착됐다. 그러나 여기서 무용총 수렵도에서와 같은 긴박감을 느끼긴 어렵다. 정확한 자세 묘사에도 불구하고 필선이 가늘고 부드럽게 흘러 강한 운동감에서 번져 나오는 긴장감을 자아내는 데 한계를 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숨을 내몰아쉬는 듯한 자세로 서 있는 화면 오른쪽 하단의 짐승 한 마리는 서 있는 자세로 말미암아 화면 전체에 흘러야 할 운동감을 약화시킨다.
그럼에도 막고굴 249굴의 수렵도는 무용총 수렵도와 닮았다. 표현대상을 압축해 화면에 효과적으로 배치했으며, 근육질의 말을 등장시키고, 달리는 말과 짐승들의 꼬리를 힘있게 뒤로 뻗어나가게 해 속도감을 높였다. 수렵꾼의 복식과 도구, 표현대상에 입힌 색채에서 지역과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지만 화면구성과 제재의 배치, 화면이 자아내는 분위기에서 공유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1세기에 이르는 시간 차, 집안과 돈황이라는 지역 차, 고분벽화와 석굴사원 회화라는 장르와 용도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그림이 출현하는 문화적 배경, 회화적 유파와 영향관계에서 흥미를 자아내는 사례다. / 전호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