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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보험 과잉 우려 "
"민간보험 과잉 우려 "
  • 김창엽 서울대
  • 승인 2006.05.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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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한미 FTA와 민간의료보험 확대

 

▲김창엽(서울대 보건대학원, 보건의료정책) ©
우선 민간의료보험은 한미 FTA와 직접 관련이 없다. 적어도 이론적으론 그렇다. 정부 당국자도 이미 밝혔듯이, 미국이 요구한 적이 없고 다른 나라들끼리의 어느 FTA에서도 이런 문제를 다룬 적이 없다. 그건 의료보험(우리나라에서 공식 이름은 건강보험이다)은 한 나라 사회보장의 뼈대로 통상이나 무역의 대상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미 FTA가 우리나라 건강보험에 실제로도 아무 영향을 주지 않을까. 그건 아니다. 건강보험은 사회보장의 한 요소이지만, 동시에 보험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민간 의료보험이 그것인데, 우리나라와 같은 사회보험체계에서는 공적 보험의 내용과 수준이 민간 의료보험의 내용과 수준을 결정한다. 따라서 민간보험이 FTA의 협상 대상인 한, 건강보험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미 FTA에서는 민간보험 전체가 중요한 협상대상이고, 특히 보험료 규제 완화는 핵심의제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미 한국의 민간 의료보험은 연간 5-7조원(2003년 기준)의 규모로, 건강보험의 1/3에 이를 정도로 커져 있다. 이 정도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 산업인데,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건강보험에 직접, 간접의 요구를 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구체적인 요구는 미리 짐작하기 어려우나, 민간보험의 자유로운 영업활동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항목들이 망라될 전망이다. 최악의 경우, 민간보험 시장을 축소시킬 수 있는 건강보험의 급여범위를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정하지 말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렇지 않아도 허약한 우리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이 때문에 더욱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공적 보험이 취약한 가운데에 민간 의료보험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 계층간의 불평등 문제는 상식적인 것에 속하고,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의료비 상승도 민간보험 쪽이 불리하다. 2002년 유럽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민간보험의 의료비 상승률이 공적 보험에 비하여 2/3나 더 높았다. 우리와 사정은 다르지만, 민간보험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는 더 극적이다. 전국민의 15%가 아무런 의료보장이 없으면서도 국내총생산의 15%를 의료비로 쓴다. 1990년대 내내 민간보험은 수많은 보험회사 사이의 거래비용 때문에 전체 보험료의 약 25%를 관리비용으로 지출하였다. 그렇다고 건강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고 만족도가 높은 것도 아니다. 이 모든 문제가 민간보험 하나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의료보장의 공공성이 위축될 경우 이렇게 갈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 한 가지. 미국과의 협상도 문제지만, 국내 요인에 의해서도 민간 의료보험의 비중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민간 보험회사들이 시장을 더욱 키우려고 하는 것도 있지만, 정부 일부 부처(특히 경제부처)가 민간 의료보험이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다양한 서비스 요구를 충족하고 선택권을 넓힌다는 명분이지만,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속마음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건 정부재정만 따지는 짧은 생각이다. 

아예 극단적으로 민간보험 위주의 체계인 미국은 예외로 하더라도,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민간보험은 공적 보험을 보완하는 역할에 그친다. 우리는 아직 그런 정도도 멀었다고 말하지 말라. 민간보험 가입률로는 이미 주요 선진국보다 더 높을 정도니(대략 60%를 넘는다) 이제 오히려 민간보험의 과잉을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다시 말하지만, 한미 FTA든 국내 요인이든, 민간보험의 과잉은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데에 결코 좋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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