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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 훼손 우려 없다" vs "터무니없는 거짓말"
"공공성 훼손 우려 없다" vs "터무니없는 거짓말"
  • 박수진 기자
  • 승인 2006.05.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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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으로 보는 한미 FTA (2) 의료 분야

한미 FTA 의료 개방과 관련한 정부의 공식 입장은 ‘의료 공공성 훼손 절대 불가’다. 김종훈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는 지난 달 27일 한국선진화포럼 월례 토론회에서 “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은 훼손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으며 재경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한미 FTA로 인 해 건강보험이 손상되는 일은 없도록 할 것”이며, “영리법인 의료기관이 한미 FTA의 쟁점이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부 측의 ‘공공성 유지 입장’을 신뢰할 만한 근거는 불충분하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의사)은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왜일까.

                              특허 연장으로 의료비 상승 심각

우선, 의약품이 자동차 등과 같이 상품 협상 부문 워킹그룹에 속해 협상 테이블에 올라간다는 점이 지적된다. 지난 달 18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FTA 제2차 사전준비협의’에서 협의된 17개 협상분과 중 상품무역 부문에 자동차와 의약품, 의료기기 등이 함께 짜여진 것.

우석균 실장은 “의약품 가격은 의료 서비스의 핵심 사안인데, 이것이 서비스 협상 부문에서 논의되지 않는다고 해서 ‘의료 개방’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정부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품으로서의 의약품에 대해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특허기간의 직·간접 규제다. 직접 규제는 의약품 특허 기간을 현행 20년에서 연장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특허 기간을 간접적으로 연장하기 위한 요구가 있다. 간접 규제 방법으로는 특허 기간의 출발점을 종래의 특허 출원 시점이 아닌 판매시점으로 늦추는 것이다. 이럴 경우, 약이 출원돼서 안전성·유해성 심사 등을 거쳐 판매되기까지의 기간이 연장되는 셈이다. 이미 한-칠레 FTA나 북미자유협정에서 이 요구가 수용돼 이들 나라에서는 특허 기간이 1~2년 가량 연장됐다.

데이터 독점권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는 특허 기간이 만료된 약이 국내 시장에 처음 진입했을 때 판매 독점권을 인정해달라는 것인데, 원개발사의 약품 제조 데이터를 ‘판매 독점 기간’ 동안 이용하지 못하게 해 국내 제약회사들이 특허 기간이 만료되더라도 ‘제네릭(복제약)’을 생산하지 못하게끔 하는 것이다. 신형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정책국장은 “아직 데이터 독점권이 시행된 곳은 없지만 이런 방법들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외에 단계별 특허 인정 등을 통해 싱가포르에서는 기존의 20년이던 의약품 특허가 50년까지 연장됐다”고 밝혔다.

임준 가천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이렇게 특허기간이 연장되면 ‘복제약’ 생산 등이 늦어져 결국 의약품 가격 상승으로 직결된다”며 “제2, 제3의 ‘글리벡’이 자꾸 생겨나서 국민에 대한 의약품 접근권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임 교수는 이런 특허 연장으로 인한 ‘신약’의 가격 상승은 현재 의약품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더욱 악화시킨다고 덧붙였다. 2005년 건강보험 총 진료비 중 약제비 비중은 29.2%다. 1998~2003년 한국의 약제비는 28.8%로 OECD 국가 평균인 17.8%에 비해 무려 10%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이럴 경우 특허기간 연장으로 인한 약값 상승은 보험 재정 건전성 악화를 부추긴다는 것.

김헌진 서울기독대 교수(사회복지)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약화는 지금도 낮은 국민의 건강보험에 대한 신뢰도나 만족도를 낮춰 소득이 되는 사람의 경우, 빠르게 민간보험으로 이동하게끔 하는 유인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정부의 ‘공공보험 체계 문제없음’은 낙관적 전망에 불과한 것.

한미 FTA로 인해 ‘의료 공공성이 붕괴될 것이다’라는 주장의 두 번째 근거는 금융 부문 협상에서 미국이 ‘민간보험 규제 완화’를 핵심 의제로 제기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한국에는 ‘민간의료보험’이라는 시장 자체가 없다”고 말한다. 미국은 전국민 의료보장 제도가 없는 대신 민간의료보험이 한국의 건강보험 구실을 해, 병원을 지정하고 의사가 처방한 의료비를 병원에 지급하는 형태이지만 한국은 암이나, 특정 질병에 대해 병에 걸리면 돈을 지급하는 형태의 보험이라는 것. 윤태호 부산대 교수(의료정책)는 “미국이 ‘민간 보험 규제 완화’를 요구할 때 이것이 의료 보험 부분에 해당하는 것은 이런 ‘민간 의료 보험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일 것이고 이는 자연적으로 현재의 공공의료보험 시스템에 균열을 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외국기업 '툭'하면 제소 … 공공성 상실

기업이 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FTA 고유의 특성도 ‘의료 공공성 유지’를 해친다. 캐나다 몬타리오 주에서 공공자동차 보험을 도입하려 했으나 기존 자동차 보험을 판매하고 있는 민간보험 회사의 손배소 제기를 우려해 도입을 취소한 예가 있다. 결국 한국에서도 민간 보험 회사들이 이미 ‘암보험’ 등 특정 질병에 대한 보험 상품을 출시하고, 후에 공공보험이 이 질병에 대한 보장성을 강화하려고 할 때 제소가 가능하다는 것.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이런 잦은 제소 때문에 정부의 외국 기업으로부터의 잦은 피소, 이로 인한 공공성 상실은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미 FTA ‘의료 개방’에서 쟁점이 되는 마지막 부분은 의료 분야의 ‘영리 법인 허용’의 문제다. 정부는 ‘영리 병원 허용’을 통해 ‘의료 서비스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에도 논리적 허구가 많다.

데이빗 히멜스타임 하바드대 교수(의학)는 20여년간 미국 영리병원의 질, 효율성, 의료비를 비영리병원과 메타분석기법을 통해 비교해 발표했다. 미국의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에 비해 환사 사망률이 2% 높고, 행정관리비는 9.5% 높으며, 의료비는 19% 더 높다고 지적했다. 조홍준 울산대 교수(가정의학)는 “영리병원은 수익창출이 최우선 관심사여서 돈 안 되는 응급진료 등은 안 하는 곳이 많고 수익성이 높은 특정 진료 과목에 대해서는 진료가 집중되는 등 오히려 의료서비스 접근성이나 질이 떨어진다”고 영리병원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히멜스타임 교수도 “한국은 미국보다 공공의료기반이 취약한데다, 자선병원과 지역사회 병원 등 비영리병원들의 전통이 미국의 자선병원들처럼 뿌리가 깊지 않은 여건에서 영리병원을 허용할 경우 늘어나는 의료비를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많은 교수들은 특별히 미국 측에서 투자액과 수익을 따져봤을 때 ‘영리법인 허용’을 먼저 요구할 가능성은 요원하다고 전망했다. 이해영 교수는 그러나 “영리법인화를 정부가 자발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재경부 입장에서는 “병원에 대한 자본의 투자를 가능하게 해, 외국인 직접 투자를 늘리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의료를 상품과 같이 취급했을 때 공공성은 관심밖이기 때문이다”라고 이 교수는 분석했다.

윤태호 교수는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의료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된다”며 “이는 미국의 개척자 정신이나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특유의 역사에서 축적되어 온 문화적 맥락에서 형성된 것이고 이런 시스템이 제공되고 있는 나라가 유럽 등 선진국 어디에도 없는데 의료를 ‘단순히 상품 서비스’로 보고 개방  협상 품목에 올려놓는 것은 이런 맥락을 무시한 처사다”라고 비판했다.
박수진 기자  namu@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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