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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宗代 과학사 연구에 대한 문제제기 - 문중양 서울대 교수
世宗代 과학사 연구에 대한 문제제기 - 문중양 서울대 교수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6.05.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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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自主性 신화에서 벗어나기 …농사직설·훈민정음의 중국의존 적시

▲해시계 ©

문중양 서울대 교수(한국과학사)가 ‘역사학보’ 제189집에 발표한 ‘세종대 과학기술의 ‘자주성’ 다시 보기’는 전통시대 과학의 뚜렷한 분기점을 이룬 세종시대에 대한 기존 학설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논문은 전상운 前 성신여대 총장이나 박성래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그동안 세종대 과학기술의 ‘자주성’을 부각시킨 것이나 중국의 과학기술을 수용해 ‘과학기술의 민족화’를 이뤄낸 것으로 평가한 것에 대해 “세종대 과학이 중국과 다른, 그것을 능가하는, 우리에게 적합한 과학기술이었다는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라며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일반적으로 ‘자주적·민족적’이라고 평가했던 근거로는 ‘농사직설’, ‘향약집성방’, ‘훈민정음의 창제’, 이 세 가지가 거론되곤 했는데, 문 교수는 이들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음으로써 다른 관점의 과학사를 쓰고자 하는 것이다.

우선 ‘농사직설’에 대해 문 교수는 ‘자주적인 농업기술의 발전을 추구했던 세종대 농업정책의 방향을 볼 수 있다’라는 전통 논리를 비판하며, 오히려 “신흥사대부들이 오히려 중국의 선진적인 농업기술을 따라가기 위한 자구책”이었다고 본다. 문 교수는 기존 논리들이 ‘농사직설’에 나오는 ‘風土不同’의 문구를 들어 ‘조선적 특수성’을 강조한 것에 의문을 나타내며, 오히려 “옛 농서와 다 같을 수 없다(不可盡同古書)”라는 구절에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이 표현은 중국의 오래된 기술을 비판하고 강남농업의 진보적인 기술을 따르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

둘째, 박성래 교수가 주장했듯 과연 ‘향약집성방’이 “우리나라 고유의학의 확립인가”에 의문을 품는다. 박 교수는 비싼 중국산 약재에서 값싼 국산 약재로의 변화를 ‘자주적 의약학’이라 봤는데, 그러기엔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문 교수는 ‘향약집성방’이 집필돼 조선의 자주적 의약학이 확립된 건 인정하지만, 세종 26년에 편찬된 ‘의방유취’에도 주목한다. ‘의방유취’는 선진적인 금·원의 의약학 지식을 담은 의서들을 집대성한 것인데, 이것의 집필의도는 “중국 금·원의 의학을 완벽히 수용, 정착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음을 강조한다.

셋째, 훈민정음이 과연 ‘자주의식’의 발로에서 창조됐는가를 묻는다. 세종은 새로운 왕조국가체제를 안정되게 확립해야 했고, 그러려면 성인의 道를 실현해야 했으며, 따라서 문자학은 절실히 요구됐다. 즉 “훈민정음 창제는 선진적인 성운학과 문자학을 수용해 발전시키려는 국가적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특히 문 교수는 천문역산 프로젝트를 살펴봄으로써 세종대에 과학이 어떤 역사적 맥락에 위치해 있었는가를 따지는데, 결국 ‘흠경각기’에서 말하고 있듯 세종대 천문의기의 프로젝트가 지니는 의미는 천문역볍의 정비를 통해 유교적 정치이념을 본받으려는 의미였지, “조선의 자주성, 지역성, 개별성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고 해석한다.

김호 경인교대 교수(한국사)는 “민족주의적 관점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전상운, 박성래 선생은 오늘날의 과학적 관점(과학중심주의)에서 세종대 과학을 과도하게 평가한 점이 있다”라며 기존 연구 한계를 짚는다. 구만옥 경희대 교수(조선후기사)도 “조선시대를 전체 사회맥락 속에서 달리 본 좋은 시도”라고 평가한다. 다만 구 교수의 경우 先學들이 ‘風土不同論’으로 세종대의 과학기술을 평가한 부분은 “유효한 시각”이라며 이 부분에서만은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어쨌든 문 교수의 문제제기는 새로운 과학사 연구의 첫 단추라는 점은 분명하다. 구만옥 교수는 “지금의 연구는 새로운 관점을 확보했다는 성과일 뿐이며 향후 세밀한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인다. 다시 말해, 선학이 이뤄놓은 성과에 기대어 비판한 것이기에, 이제는 여러 기구들의 작동원리와 구조를 연구해 실증적인 부분들이 밝혀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문규 전남대 교수(과학기술사)는 여전히 세종대의 과학적 성과를 밝히는 작업이 미진하고, 단편적 연구주제들이 모여 총체적인 시각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그는 전통과 20세기 근대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과학사 연구의 한계를 지적한다. 사실상 세종대에 대한 연구관점도 20세기와의 연결 속에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인데, 조선 따로, 근대 따로 연구가 진행되다보니, 당대의 맥락을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에서 연구자들간 견해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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