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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기회의 양극화
대학정론: 기회의 양극화
  • 강신익 논설위원
  • 승인 2006.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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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제학을 모른다. 그래서 양극화의 요인이 경기침체와 경제 활력의 상실 탓이라는 것도 모르고, 경제침체와 실업자 증가, 빈곤층의 확대 등 경제적 폐해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반 기업ㆍ반 시장 정서를 부추긴 현 정권의 민중주의적 정책 탓이라는 것이 학계의 상식인지도 모른다. 

물론 스미스라는 경제학자가 ‘보이지 않는 손’을 말했고 그것이 이른바 시장이라는 것은 들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그 시장이 정부보다 지적으로 현명하고 도덕적으로도 우월하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나는 그 시장이란 것이 그 속을 살아가는 인간을 도덕적으로 타락시켰거나 인간적으로 모멸했던 사례를 여럿 알고 있다. 중병에 걸렸으면서도 치료비가 없어 병원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는 환자를 무책임하게 지켜본 적도 있다. 모두 그 현명하다는 시장 탓이다.

이런 상황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시장의 현명함에 기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고통에 마냥 눈을 감을 수는 없다. 이것이 경제적 현실을 냉철하게 설명해야 할 경제학과 고통 받는 환자를 만나야 하는 의학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경제학은 현실을 ‘설명’해야 하지만 의학은 인간적 실존에 어떻게든 ‘반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학도 경제학처럼 문제를 설명하고 원인을 밝히며 처방을 내린다. 경제학이 사회적 삶에 대한 지혜이듯이 의학은 자연적 삶의 지혜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의학을 자연의 경제학이라고도 했다.

자연의 경제에는 만병통치약이 없다. 그것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돌팔이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의학사의 교훈이며, 만병통치약의 근거는 언제나 독단적 이론에 따른 오도된 진단이었다.

양극화를 실업자의 증가와 빈곤층의 확대라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지표로만 바라본다면 시장이라는 만병통치약이 유일한 처방이 된다. 그러나 양극화란 말 자체가 상대적 개념이며 시장이라는 처방은 무한성장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의 건강과 수명을 무한히 증진시킬 수 없듯이 시장의 무한확대도 불가능한 기획이다. 따라서 양극화는 빈곤층의 확대가 아닌 빈부와 기회의 ‘격차’로 읽어야 하며, 시장이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보다는 무엇을 줄 수 없는지 물어야 한다.

양극화는 정체된 상태가 아니라 악화일로에 있는 과정이며 그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은 시장의 통제가 아닌 기회의 양극화다. 그래서 나는 인간과 사회의 건강과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은 부와 자원의 절대치가 아닌 그것의 상대적 분포와 사회적 유대감이라는 리처드 윌킨스의 분석을 믿는다.

강신익 / 논설위원·인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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