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3:20 (토)
백관지의 치밀한 분석···2성제설 비판논거 부족
백관지의 치밀한 분석···2성제설 비판논거 부족
  • 박재우 규장각
  • 승인 2006.05.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평: 『‘고려사’ 百官志의 연구』(최정환 지음, 경인문화사)

최근 고려시대 정치제도사 연구에서 고무적인 것은 기존 연구에 대한 비판과 자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업적들이 많이 나와 정치제도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에 간행된 ‘『고려사』百官志의 연구’는 제도사 연구의 주요 쟁점들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여 연구의 지평을 넓힌 좋은 저술이다.

이 책은 백관지에 관한 연구와 역주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주 부분은 백관지를 범례, 권1, 권2로 구분하여 원문과 번역을 제시하고 역주가 필요한 내용은 번역에 각주를 달아 제시했는데, 그 내용은 기본적으로 연구에서 필자가 제시한 새로운 주장들을 담고 있어 결국 연구 부분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 부분은 백관지의 체제와 구성에 대하여 정리하고, 이어 백관지를 권1, 권2로 구분하여 각각의 구성과 문제점에 대하여 지적했는데, 특징적인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필자는 백관지 편찬자 및 기존 학설의 오류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연구했는데,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중서성과 문하성이 합쳐 중서문하성의 단일 기구로 운영되었다는 이른바 ‘2성제설’에 대한 비판이다. 2성제설은 백관지 편찬자가 통합된 후기의 문하부를 기준으로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전기에도 단일 기구였던 것처럼 오해하여 내사문하성(중서문하성)으로 기록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나왔으나, 실제는 내사성(중서성)과 문하성으로 분리된 기구였다. 중서령·시중·상서령의 존재, 『고려도경』의 3성 건물, 선거지 전주 조항 등의 관련 자료나 3성제로 운영된 송제를 수용하여 문종 관제를 정비한 것을 보면 고려는 3성제가 틀림없다. 이후 충렬왕 원년에 중서성, 문하성 및 상서성이 합쳐 첨의부로 개편하면서 3성제가 붕괴되었다.

재추 관직을 둘러싼 겸직 문제에 대해서는 관련 관직을 실직, 재신과 추신, 겸직으로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참지정사, 정당문학, 지문하성사는 실직을 가지고 있으면서 재신으로서 6부 판사 등을 겸직했고, 추밀도 실직을 가졌다고 보았다. 그밖에 왕실과 봉군, 병마사와 도병마사의 관계, 75도안무사의 실체, 안찰사와 도의 성격에 대해서도 필자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가 다룬 주제들은 제도사 연구에서 매우 비중 있는 문제들이어서 필자의 날카로운 안목을 볼 수 있는데, 특히 2성제냐 3성제냐의 문제는 단순히 관부의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분립 또는 집중과 관련된 해석이 맞물려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필자는 통설인 ‘2성제설’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는데 다만 논거가 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한다.

먼저 문종대의 문하성, 중서성 및 상서성 제도가 송제를 수용하여 정비한 것으로 보았는데, 송제는 원풍 관제를 염두에 둔 듯하다. 그런데 원풍 관제는 1078년에 제정되었고, 문종 관제의 개편 시점은 문종 15년(1061)이다. 그렇다면 시기적으로 보아 문종 관제는 원풍 관제를 채택할 수 없다. 그러면 문종 관제가 송제를 받아들여 3성제로 운영했다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백관지 편찬자가 후기의 문하부를 기준으로 전기의 사실을 정리하다 보니 중서문하성으로 잘못 서술했다고 본 필자의 견해가 옳다면,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나타나는 모든 ‘중서문하성’ 자료가 ‘중서성과 문하성’의 오류로 입증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2성제’의 가능성은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또한 중서령, 시중, 상서령 등의 관직이 모두 확인된다는 것을 3성제 존재의 근거로 들고 있지만, 2성제설은 중서성과 문하성이 합쳐 중서문하성이 되었다는 견해이므로 중서령, 시중을 중서문하성 소속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들 ‘3성’의 관직이 모두 확인된다는 것이 3성제를 입증할 결정적 논거가 된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서평과 관련해서 필자의 논지를 오해한 것이 있다면 전적으로 평자의 잘못이다. 다만 이상과 같은 의문들에 대하여 좀 더 분석적 논거를 제시한다면 필자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게 수용될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평자의 사족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2성제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나 백관지 자료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역주는 이 분야 연구에 좋은 업적으로 평가될 것이다.

박재우/ 서울대규장각·고려시대사

필자는 서울대에서 ‘고려전기 재추제도와 국정운영체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논저로는 ‘고려 국정운영의 체계와 왕권’, ‘고려전기 군신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관념’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