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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간극의 정체성
[학이사]간극의 정체성
  • 유제분 부산대
  • 승인 2001.07.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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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24 16:14:53
유제분/부산대 영문학

주변인이나 ‘타자’가 한 사회나 집단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은 이제 새삼스러운 지적이 아니다. 영국작가 도리스 레씽 역시 ‘풀잎은 노래한다’의 맨 앞에 “문명의 약점을 가장 잘 판단하는 사람은 낙오자이자 부적격자다”라는 문구를 인용하였다. 나는 몇 년 전 이 작품을 대상으로 페미니즘과 탈식민 담론을 분석하면서, ‘간극의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주변인’의 개념을 보다 다층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발전시킨 바 있다. 이것은 서로 다른 두 사회가 만나는 경계, 또는 상치되는 이데올로기들 사이에 끼인 존재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백인의 제국주의와 식민지 아프리카의 현실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소설 속의 백인 여성 메어리 터너가 자신의 흑인 하우스보이에게 살해되는 이 소설의 종결은 간극에 놓인 존재의 비극성을 상기시킨다.

그런데 이 ‘간극의 정체성’ 문제는 단지 문학 속의 여주인공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주변부에 놓인 다양한 존재들도 겪고 있는 현실이다. 사회의 주변부라고 할 수 없는 대학사회에서조차도 간극에 놓인 존재는 얼마든지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지방대학의 여학생이나 여자 시간강사가 먼저 떠오른다. 이들은 남성 계보로 이루어진 제자의 순위에서 우선적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대학 사회가 이들에게 거는 기대치는 남학생이나 남자 시간강사에 비해 절대적으로 낮은 것이다.

대학에서의 여성교육의 특징의 하나가 주인의식의 결여가 아닐까. 미래사회와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사회의 기대가 적은 만큼 그들이 사회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전통적 성장소설의 대부분이 세계와 우주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자리 매김 하려는 남자 주인공들을 소개한다. 이들은 사회와 세계에 동심원적으로, 직선적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이른바 여성 성장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이 같은 관계는 찾아보기 어렵다.

가끔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하면서 매우 착잡할 때가 있다. 논문을 심사 받는 이가 여성 시간강사일 경우, 심사분위기는 뭔가 느슨하고 덜 긴장스러워지는 것이다. 어차피 여성은 박사학위를 수여 받은 이후에도 전임교원으로 취직될 기회가 힘들다는 것을 무언중에 공인하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그러니까 논문심사에 대한 책임감도 덜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지방’ 사회의 여성 시간강사 문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국사회의 중앙과 ‘지방’ 간의 이분 구도도 한몫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서울중심주의로 인한 교육과 취업 기회의 불균등은 ‘지방’의 시간강사들에게도 적지 않은 파급을 미친다. 더욱이 여성의 경우 가부장적 사회구조 속에서 대학 전임으로의 취업은 더욱 어렵다. 사 오십대의 미혼 시간강사들, 이들이야말로 교수와 학생간에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다층적 틈새의 존재가 아닌지.

그러나 이 같은 문제 의식 속에서 나는 이들의 가능성을 점쳐보기도 한다. 한 사회를 가장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사회의 주변인이라고 했듯이, 서울과 ‘지방’의 문제를 정확히 간파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간극의 존재들이 아닐까. 이들은 정책적, 문화적 서울중심주의가, 그리고 중앙의 헤게모니가 ‘지방’에 심어온 강한 반발이 폭발 직전의 수위로까지 잠재해 있음을 직시한다. 멀리 눈을 돌리지 않아도 학계의 중앙 중심주의는 곧 발견된다. 서울에서만 개최되는 학술대회, 연구소에 돈이 없다면서 서울지역 참여자나 먼 지역에서 온 참여자에게 똑같은 토론비나 발표비를 책정하고, 막차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저녁식사시간을 잡는 서울 중심의 지식권력. 그런가 하면, 간극의 존재의 시야에는 ‘지방’사회의 모순도 들어온다. 그것은 중앙에 대한 반발과 푸념아래 타자로서의 ‘지방’ 속에 엄연히 공존한 ‘지방’ 속의 타자를 간과하는, 또 다른 얼굴의 중앙중심주의의 반복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페미니즘의 측면에서 처음 생각한 ‘간극의 정체성’은 단지 여성에만 해당되는 문제의식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강력한 힘들의 틈새에서 잘 보이지 않는 존재들, 그리고 이들을 주시함으로써 발견되는 사회의 많은 문제와 직결된 문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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