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8:10 (금)
실천철학으로 양명학 재해석… ‘생명’ 개념 정의 되지 않아
실천철학으로 양명학 재해석… ‘생명’ 개념 정의 되지 않아
  • 이상훈 단국대
  • 승인 2006.05.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본격서평: 『왕양명의 생명철학』김세정 지음┃ 청계┃ 667쪽┃

오늘날 생태계의 파괴와 이로 인한 인간 생존의 위협이라는 전지구적인 생명위기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려한 유학자들은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이런 점에서 천지만물과 인간이 하나의 생명체라는 자각과 천지만물과의 감응과 통각의 주체인 양지를 회복하는 일이, 자연세계와 인간이 함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양명학을 통해 당면한 시대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바람직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의 1장에서 3장까지는 생명 위기의 원인과 이에 대한 다양한 방안들을 언급하고, 왕양명의 역동적 실천적인 삶의 과정과 주체적 창조적인 생명철학의 수립과정을 논하며, 왕양명 생명철학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천지만물일체설’을 중심으로 그의 세계관·사회관·인간관을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그리고 이 부분의 각론에 해당되는 제4장에서 8장까지는 인간이 천지만물의 중추적 존재가 될 수 있는 근거인 마음의 역동적·주체적·창조적인 생명원리에 대해 언급하고, 성인됨 그리고 천지만물과의 감응주체로서의 인간 양지에 대한 다양한 함의와 특성들을 다루며, 양지체용의 일원적 체계와 양지의 하나 됨과 생명 창출 과정에 대한 논의를 통해 천지만물과의 감응과정에서 요구되는 실천행위의 문제를 논한다. 이어 후천적 양지 실현 공부가 요구되는 원인과 치양지의 의미를 언급하고, 양지의 실현을 통해 도달하는 물아일체, 자겸과 자락의 경지에 대해 모색한다. 아울러, 9장부터 12장에서는 현실세계의 문제해결을 (9장 교육, 10장 정치, 11장 생명윤리, 12장 생태계의 위기) 위한 왕양명 생명철학의 현실 대응가능성을 모색한다. 그러나 이렇게 의미 있는 저자의 연구 성과와 방향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먼저,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생명’ 혹은 ‘생명철학’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평자가 보기에 이 책 속의 ‘생명’은 ‘생물학적 생명’을 뜻하고 ‘철학’은 이와 관련된 생명철학(Bio-philosophy)을 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 책에는 ‘생명’과 ‘생명철학’의 의미에 관한 명확한 언급이 부족하다. 따라서 향후 양명학을 통한 생명철학 이론의 지속적 발전과 역할을 위해서도 이들 개념에 대한 저자의 보다 명확한 개념 설정과 설명이 필요하다.

또한, 저자는 사실적 생명논리의 전개를 설명하기 위해 왕양명철학에서 엄격한 정의 아래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할 (일)기의 유통, 영명성의 감응, 통각 등의 개념으로 양명학에서의 유기체적 관점을 도출하고 있다. 이것은 의미 있고 독특한 전개방식이긴 하지만 자칫 양명학을 기철학 위주로 오해할 수 있는 소지를 제공하고, 결국 양명학을 가치적 측면에서 설명하는 것이 곤란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이 책에는 약간의 논란과 토론의 소지도 존재하지만, 이는 평자와 필자 사이에 왕양명의 이론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차이에서 기인하므로 사실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종합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저자의 왕양명 생명철학 연구는 기존의 연구방법을 사실적인 측면으로 한걸음 더 접근시켰다. 저자는 기존의 가치론 중심의 연구경향과는 달리 사실적 측면과 가치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고, 이전의 인간론 중심이었던 양명학의 연구 경향도 우주론과 인간론을 균형 있게 다루는 통합적 연구방법을 택함으로써 양명학이 결코 사실 세계와는 무관한 학문이 아니며, 우주·자연 안에서의 인간의 역할과, 인간과 자연이 서로 유기적이고 상보적인 관계임을 밝힌다.

또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이원론적 사고와 인간중심주의의 도구적 자연관에 의한 자연 생태계의 파괴와 인간의 생명가치 상실이라는 시대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논자는 저자의 이번 왕양명 생명철학에 대한 연구방법과 성과를 이른바 “양명학을 통한 신외왕의 바람직한 해법과 그 연구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끝으로, 이 책은 기존의 왕양명 연구에서는 매우 생소했던 ‘생명철학’이라는 측면에 착안하여 시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려고 했다는 점이며,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그 의미가 있고 또 중요성을 지닌다. 따라서 향후 우리 학계의 양명학 연구방향도 이와 같이 현실세계가 당면한 문제를 함께 고뇌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즉 현실과 괴리되지 않는 측면으로 활발히 연구가 진행되고 또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이상훈 / 단국대·유교철학

필자는 대만 동해대에서 ‘왕양명 공부론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왕양명과 왕문 후학의 철학사상, 양명학의 한국적 전개와 변용에 관한 논제를 위주로 연구 중에 있다. 주요논문으로는 ‘왕문의 양명학 이해 - 양지현성파와 양지귀적파를 중심으로 - 등이 있고, 현재 한국중국학회 연구이사와 한국양명학회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