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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이 말하는 학술서 디자인
저자들이 말하는 학술서 디자인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6.05.02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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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格에 맞지 않는 디자인 불만”

학술출판의 주요 저자인 교수들은 출판사의 어려움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冊格’에 맞지 않는 자기 책의 디자인을 보면 내심 서운하다. 표지가 상징적으로 내용을 드러내주면 좋을텐데, “성의가 없는 듯”해 저자로선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 황갑연 순천대 교수(철학)는 ‘서광사’에서 저서를 5권 냈다. 하지만 최근에 낸 ‘맹자의 철학’만 봐도 아무런 시선도 끌지 못하는 無色한 디자인이다. 황 교수는 “맹자 인물 넣고, 원전을 배경에 배치한 게 디자인의 전부”라며 최소한의 고민만 담는 출판사에 아쉬움을 나타낸다. 가령 맹자의 사상적 개념을 표지에 넣는 등의 고민을 조금만 했어도 만족했을텐데, 동양철학의 핵심을 디자이너가 간파하지 못해 아쉽다고 한다.

▲철학과현실사에서 펴낸 양해림 교수의 저서들 ©
디자인의 ‘단순 반복 재생산’ 역시 저자와 독자로부터 불만을 살 수밖에 없다. 사회과학서 전문인 ‘한울’의 연구총서는 색깔만 좀 달리하고 디자인은 완전 복사판이다. ‘총서’이기 때문에 괜찮을까. 하지만 저자들의 견해는 다르다. 정성진 경상대 교수(경제학)는 “성격과 관점이 완전히 다르고 시리즈 성격도 아닌데, 1백권 넘는 책의 디자인이 동일해 개별 책의 특성을 못살린다”고 지적한다. 사각형 모양 역시 반복되다 보니 단순함을 더해준다는 게 한울 저자들의 의견. 그런 점에서 ‘철학과 현실사’도 비판을 비껴가지 못한다. ‘행복이라 부르는 것들의 의미’, ‘성과 사랑의 철학’ 등을 낸 양해림 충남대 교수(철학)는 “특성 없고 조잡한 디자인이었다”라고 혹평한다. 하지만 디자인 간섭은 월권행위 같아서 못했다는 것. ‘오름’의 저자들 역시 못마땅하다. 김영명 한림대 교수(정치학)는 “오름은 디자인과 판매부수가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해 디자인에 신경을 안쓰는 듯하다”고 말한다.

물론 몇몇 교수나 출판사들은 “내용이 중요하지 디자인이 중요하냐”고 반박하기도 한다. 내용이 좋으면 표지가 격이 떨어져도 관계없다는 얘긴데, 하지만 이들은 책표지가 독자의 오감을 자극한다는 걸 간과하고 있다. 이는 화려함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책의 정신을 잘 담아낸 표리일체의 디자인을 말한다. 황희경 영산대 교수(철학)는 학술서 표지의 모범 사례로 중국의 ‘진인각의 최후20년’을 든다. 책의 표지는 黑白의 색만 사용해 아주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주는데, 알고 보니 진인각은 말년에 눈이 멀어 흑백색만을 구별할 수 있었고,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고 학문에 정진했다는 것을 책의 표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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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2006-05-02 18:40:27
내보기엔 너무 개인적 입장만 말하는 것 같다. 소위 공부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책을 보기 시작한 지 20년이 넘는 내 집의 책꽂이를 보자. 우리나라의 천박한 간판문화가 그대로 나타난다. 울긋불긋, 시퍼렇고 새빨갛고 전부 나만 봐달라고 우기는 떼장이 어린애들같다. 제목은 왜 또 그렇게 크게 붙어있는가? 외국의 간판들을 보면 가까이 가야 알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쓰어져 있다. 모두가 근시인 것도 아닌데 웬 배려인가? 나는 모든 책이 연한 미색이나 흰색 혹은 연한 갈색으로 작은 글자체로 제목을 써 놓으면 눈이 덜 피곤할 것 같다. 화려한 디자인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는다. 우리나라 간판문화와 건축문화를 한번 생각해 보라. 모두 개인적 취미와 필요에 따라 해치우는 식이어서 전체의 미관이 영 아니다. 거의 공해에 가깝다. 내 공부방의 유일한 공해는 다름아닌 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