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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비평_책의 정신을 담아내는 표지
디자인비평_책의 정신을 담아내는 표지
  • 표정훈 출판평론가
  • 승인 2006.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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表裏一體의 디자인 정신…띠종이, 금박 거슬려

여성 비하적인 혹은 남성우월주의 뉘앙스가 풍기는 가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가수 남진이 부른 노래의 가사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라 했다. 책이라면 ‘내용이 좋아야 책이지, 디자인만 예쁘다고 책이냐’ 정도가 될까. 화장에도 강렬하고 짙은 화장이 있고 담백하고 옅은 화장이 있듯이, 북디자인에도 화려·강렬·복잡한 것과 담백·소박·단순한 것이 있다. 물론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다. 화려하든 담백하든 책의 내용과 일종의 表裏一體를 이루는 디자인이 최선이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요컨대 북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유형론보다는 구체적 개별론, 즉 책 한 권 한 권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게 일단 바람직하다. 


이옥순 박사의 ‘식민지 조선의 희망과 절망’(푸른역사, 디자이너 배수진)은 강렬하다. 앞표지를 보면 갠지스 강에 몸을 반쯤 담그고 두 팔을 벌려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는 듯한 모습의 두 사람이 있다. 강물을 회색이며 두 사람은 검다. 그 위로는 비구상 판화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림(?)이 있고, 사뭇 비장한 서체로 제목이 배치돼 있다. 식민지, 조선, 희망, 절망, 인도. 제목에 나오는 이런 단어들은 그 각각의 울림이 무척이나 크고 무겁다.


주석 부분을 빼고 226쪽인 비교적 얇은 책이지만, 독자로서는 이 책을 처음 마주하거나 집어드는 순간 예감하게 된다. ‘결코 가볍지 않은 독서, 매우 집약적이고 치밀한 독서가 필요한 책이겠구나!’ 카프카의 말을 빌리면 ‘내 머리에 주먹질을 해대는 책’일 것이라는 예감.

그런가 하면 이희진 박사의 ‘전쟁의 발견: 한국 고대사의 재구성을 위하여’(동아시아, 디자이너 송효신)는 흰 여백의 효과가 돋보인다. 유라시아 대륙 동부를 머리에 떠안고 있는 형상의 한반도(독도도 빼놓지 않았다)가 제목 바로 곁에서 일종의 포인트로 부각되고 있다.


수묵화풍의 간결한 표지에 비해 본문 디자인은 모던하고 짜임새가 돋보인다. 본문 아래쪽에 요령 있게 배치한 각주도 그렇고, 오른쪽 페이지 상단에 큰 괄호를 쳐서 그 안에 각 장 제목을 노출시킨 것도 그렇다. ‘전쟁의 발견’이니 무거운 주제라면 무거운 주제지만, 그 무거움을 내세우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의 글은 언론 매체의 심층 분석 기사, 이를테면 축구 월드컵 경기 분석 기사를 읽는 듯한 재미를 준다.  


다음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명제론’(김진성 역주, 이제이북스, 디자인 가필드)이다. 이 책은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0’ 가운데 하나로 전시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서양 고전 도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 지 보여준다는 의미도 고려되었던 듯하다. 반투명 종이의 효과를 극대화한 표지가 압권이다. (비슷한 예로 ‘녹색세계사’(클라이브 폰팅, 그물코, 디자이너 윤종윤)가 있다.) 노란색 하드커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얼굴이 전면에 걸쳐 배치돼 있고, 하드커버를 싼 반투명 종이 표지를 통해 그 얼굴이 ‘아련하게’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두 눈 사이로, 반투명 종이에 인쇄된 ‘ARISTOTELES’라는 영문이 자리잡게 돼있다.


고전 원문의 쪽수 표시는 베커(I. Bekker)가 편집한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집에 따랐는데, 원문과 우리말의 문장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줄 수에서 차이가 나지만, 두 줄 이상의 차이가 나지 않도록 했다. 여기에 원문 번역 못지않은 분량의 자세한 역자 주석까지 적절하게 배치했으니, 편집자의 수고가 눈에 선하다. 번역의 질적 수준이야 전문가들이 판단할 일이지만, 적어도 표지와 본문 디자인에서 이 책은 서양 古典語 번역서의 한 모범이다.


이상 세 권의 책들은 책의 내용 및 정신과 부합하는 디자인을 보여주며, 과장이나 호들갑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이제 그 반대편에 해당하는 책들을 거론해야 할 터인데, 난감하다. 위의 세 권 책에 대한 평가도 어떤 객관적인 기준에 따른 판단이라기보다는 나의 주관적인 편견에 따른 판단이니, ‘나는 이 책의 디자인이 이래서 마음에 들고 이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할 때 ‘이래서’는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 기준으로 볼 때 니콜라 디코스모의 ‘오랑캐의 탄생’(황금가지)은 아쉬움이 남는다. 디자이너의 의견이 아니라 마케팅 측면의 고려 때문이겠지만, ‘걸작의 반열에 올릴 학술적 성과, 아시아 역사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책’이라는 ‘하바드 대학교 아시아 연구저널’의 추천사가 인쇄된 하늘색 띠종이가 눈에 거슬린다. 이른바 띠지(紙) 혹은 띠종이를 두르느냐 마느냐는 선택은 자유지만, 경제경영 및 처세실용서라면 몰라도 교양·학술서에 띠종이를 두르는 건 볼썽사납다는 게 나의 지독한(!) 편견이다. 띠종이 공해라는 新種 공해가 생긴 게 아닌가, ‘띠종이의 왕국’ 일본 출판계에서 배운 악습(선습으로 여길 사람도 얼마든지 있겠지만)이 아닌가 생각할 때마저 있으니.


이 책도 띠종이를 벗기고 나니 책이 한결 좋아 보인다. 金나라 화가 張瑀가 그린 ‘文姬歸漢圖’에 묘사돼 있는 말을 탄 유목 전사의 모습, 즉 ‘오랑캐’의 모습이 모두 드러나니 말이다. 표지 그림을 감상할 기회를 늦추게 만드는 띠종이의 남발은 제발 이제 그만! 그러나 내가 북디자인에 관해 지닌 가장 심한 편견은, 제목 부분을 번쩍거리게 처리해 놓은 표지에 대한 ‘비이성적인’ 혐오다. 신영복의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돌베개)이나 개빈 멘지스의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사계절)를 예로 들 수 있는 데, 이 두 책은 제목 글자 부분의 번쩍거림이 그리 심하지 않으며 그런 부분을 둔 것이 오히려 적절해 보인다. 그런데도 나는 번쩍거리는 게 싫다. 오죽 싫어하면 그 정도를 두고도 싫다고 하겠는가 말이다. (‘강의’는 띠종이도 두르고 있다.)


▲하라 히로무가 장정한 헤이본샤(平凡社)의 東洋文庫 시리즈 ©

적어도 교양·학술서만 놓고 볼 때, 최근 우리 출판계에서 과장이나 호들갑에 해당하는 디자인이 번성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21세기에 들어와 우리 출판계의 북디자인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는 게 나뿐 아니라 많은 출판계 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또한 북디자인의 어떤 추세 같은 것을 말하기 힘들 정도로 다채로워진 게 현실이다. 이 글이 ‘비평’의 덕목에 부합되지 않게 개인적 편견을 노출시키는 글이 되어버린 것도, 부분적으로는 그런 현실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런 편견 하나만 더 노출시키자. 나는 일본에 현대 북디자인 개념을 정착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하라 히로무가 장정한 헤이본샤(平凡社)의 東洋文庫 시리즈를 가장 좋아한다. 단정하며 깔끔하고 튼튼한 장정이 주위에 꽂혀 있는 다른 책들을 조용히 압도한다.

표정훈 / 출판평론가

필자는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번역과 출판평론을 하고 있다. 저서로 ‘탐서주의자의 책’ 등 5권이 있고, 역서로는 ‘중국의 자유 전통’ 등 10여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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