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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동향] 우리말로 학문하기, 어디까지 왔나
[학술동향] 우리말로 학문하기, 어디까지 왔나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7.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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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성과 언어성의 화두 부상
10년 전,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가 저서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에서 제기했던 명제에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걸어온 것일까. 다시 한번 돌이켜보자. “자신의 문제를 풀어 갈 언어를 가지지 못한 사회, 자신의 사회를 보는 이론을 자생적으로 만들어 가지 못하는 사회를 식민지적이라고 부르고자 한다”는 그 명제. 진척될수록 우리 사회를 읽어내는 눈이 오히려 어두워지기만 하는 것이 학문이라면 그 학문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발본적인 질문이었다.

이미 농익은 상처에 손을 댔던 탓에 이어지는 성찰적 작업들은 봇물 터지듯 했다. 혹은 동일한 지적감수성이 동시대 공존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김영민 한일장신대 교수(철학)의 탈식민성과 새로운 글쓰기의 문제제기, 김정근 부산대 교수(문헌정보학)의 강단언어와 현장언어 괴리의 지적이 그랬고, 각을 달리하지만 조동일 서울대 교수(국문학)의 ‘창조학’ 제언도 마찬가지였다.

탈식민성과 언어성의 화두 부상

우리 학계를 달궜던 탈식민성과 언어성의 공조관계에 대한 지적은 이후 서서히 뿌리를 내린 듯 보인다. 그 가운데 한국어가 학문언어로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은 활발하게 이뤄졌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런 움직임이 10년 전 선학들의 문제제기에 대한 답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나와 내 사회를 해석하는 나의 언어’가 필요하다는 뼈아픈 지적이 합의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더불어 학계가 지적 성숙을 거듭했다는 지표이기도 하다.

학문의 도구이자 근간인 언어에 대한 반성이 빈약했던 풍토에 물갈이가 시작됐기는 하지만,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작업은 아직 사전적 작업 정도에서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박명규 서울대 교수(사회학)가 작업중인 개념어들에 대한 계보학적 탐사도 마찬가지. 박 교수는 ‘사회’라는 어휘가 지금의 의미를 갖기까지의 역사를 구한말부터 찬찬히 짚어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가 ‘사회와 역사’ 59호에 발표한 논문 ‘한말 ‘사회’ 개념의 수용과 그 의미 체계’ 에서는 개념의 사회사적 계보를 상세히 드러난다.

박 교수에 따르면 어떤 단어들은 국적불명에 사용범위조차 산만해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라는 말을 무시로 쓰지만 지칭하는 바가 불명료합니다. 사회적이라고 부르는 데 대한 자의식이 없어 막연히 얘기하다보니, ‘소사이어티(society)’의 번역어로 수용되는 시기에만 주목하는 경우가 잦지요. 때문에 ‘사회’라는 단어가 우리 실상의 무엇을 지칭하면서 맺어진 부분과 의미망을 통해 변천한 사회사적 작업은 빈약합니다” 그는 이미 시작한 작업에 더해서 1920년대 식민지적 조건하에서 ‘사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히는 연구에 몰두할 예정이며 점차 다른 단어들도 계보를 밝혀낼 것이라고 말한다.

일상에서 쓰이는 어휘의 역사적 ‘켜’를 세밀하게 살피는 작업으로는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텃밭을 일구는 데 불과하다. 이런 갈증을 느꼈던 것은 철학계다. 그 동안 수입학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에 직면해있던 철학교수들이 회심의 역작으로 내놓은 ‘우리말 철학사전’의 문제의식은 그러므로 방대하다. 우리말로 철학하고 주체적으로 사유하기 위한 기초작업으로 웬만한 철학개념들을 우리말로 해체하고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그간의 철학사전이 서양에서 통용되는 철학개념을 번역·소개하는 것에 그쳤다면 사전편찬작업에 참여했던 철학교수들은 “이 시대 이 땅에서 살며 고민하는 한국의 철학인의 ‘철학함’이 배어 있는 철학개념을 담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우리말 철학사전’ 1권은 과학, 문화, 사회, 언어, 이성, 이해, 인간, 자아, 자연, 자유, 존재, 세계의 12가지 어휘를 풀이하고 있다. 한국인의 자의식이 용해되어있거나, 철학개념어와 가까운 한국어의 사유방식을 설명하면서 이 어휘들은 국적을 달게 되는 것이다. 가령, 사전 속의 ‘존재’ 항은 ‘우리말에서 읽어 내는 존재의 사건’ 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독어, 영어, 일어로서의 ‘존재’라는 단어는 한국어 ‘사이에 있음’, ‘나타나 있음’, ‘사르고 있음’, ‘되고 있음’으로 여러 가지 표현형을 얻으면서 특수한 의미망을 ‘덧입은’ 셈이다.

‘갈말' 찾기에 바쁜 물리학계

이에 비하면 과학계의 노력은 오히려 시간상으로 앞서있다. 과학의 대중화와 토착화라는 분명한 지향을 가지고 과학용어를 우리말로 옮겨내는 작업을 10여 년 넘게 계획적으로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리학계만 보더라도 용어심의위원회가 상설되어 물리학 개념어를 우리말로 개정하는 작업을 도맡고 있다. 비록 개념의 재번역에 불과하지만 분량만 해도 만만치 않다. 우리말로 된 과학책을 후학들에게 읽히겠다는 소박한 욕심이 그 지난한 작업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용어심의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기식 인하대 교수(물리학)에 따르면 물리학 연구 초기에는 원서로 공부했고 우리말이 오히려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최종학력까지 마치는 후학들이 많아지고 한국어로 된 전공책도 늘어나면서 용어를 정리할 필요가 생겼다고 한다. 물리학계에서 전개하고 있는 ‘우리말 개념어 선정’은 초지일관 지속되고 있으며, 수십 명의 물리학자들이 중책을 맡아왔고 또 맡고 있다.

우리말은 ‘지적 방언'일 뿐인가

월간지 ‘물리학과 첨단기술’(www.kps.or.kr/pht/)의 ‘용어방’에서는 우리말 물리개념을 소개하는 한편, ‘우리말로 물리학하기’에 대한 이해를 여실히 보여주는 물리학과 교수들의 글이 연재되고 있다. “용어 심의위원회에서 정한 용어가 어쩌면 용어심의 위원회에서만 통용되는 방언이 되는 독단이 될까 부담스럽다”는 김칠민 배재대 교수(물리학)의 우려에서부터 대학 때 ‘축퇴-’라는 단어를 두고 그 뜻을 몰라 몇 달을 전전긍긍했던 경험을 소개하며 우리말 용어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정진수 충북대 교수(물리학)의 고백에 이르기까지 물리학계의 고민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축퇴’를 ‘겹침’으로, ‘회절’을 ‘에돌이’로, ‘산란’을 ‘흩뜨림’으로 옮겨내면서 물리학계는 우리말로 학문하기뿐 아니라 일상용어를 학문용어로 만들어내는 기획도 동시에 수행중이다. 그러나 정작 강단으로 돌아가면 물리학회의 고심과 고행은 빛이 바래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이면우 춘천교대 교수(천문학)의 지적처럼, 과학자들이 문화적 충격을 언어로 옮겨내는 데 게으를뿐더러, 기껏 만들어 놓은 것조차 지적 유통망을 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말로 학문하기’에 남겨진 숙제는 관심의 문제로 넘어오게 된다. ‘그들’이 쓰는 언어가 지적 방언이 되지 않고 ‘우리’의 말로 익숙해지기까지 쏟아야할 관심과 동료의식이 필요한 때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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