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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제적 연구 부족 … 논문 미제출자도 적지 않아
학제적 연구 부족 … 논문 미제출자도 적지 않아
  • 신정민 기자
  • 승인 2006.05.01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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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비평: (1)'역사와 기억: 과거청산...국가별 사례연구'

2002년 9월부터 2년간 한국학술진흥재단(이하 학진)의 지원 아래 진행된 ‘역사와 기억: 과거청산과 문화정체성 문제의 국가별 사례연구’(책임연구자 안병직, 이하 연구팀) 프로젝트는 약 마흔 편의 학술 논문과 단행본 ‘세계의 과거사 청산’(푸른역사)을 출간했다. 이 대형과제에는 1년차 33명(10억5천9백50만원 지원), 2년차 23명(8억5백만원 지원)의 연구진이 참여했다.

당시 과거사 청산은 정계와 학계에서도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어, 이 프로젝트는 선정 이후 학계를 넘어 일반 대중에게까지 많은 관심을 받았다. 과거사 청산 문제가 한국사회의 장기지속 테마라는 점을 감안하면, 세계의 사례연구는 사실 늦은 감조차 있다.

김응종 충남대 교수는 “선행연구가 전혀없는 불모지에서 한 연구이기 때문에 중요한 성과이며, 획일적으로 과거사를 청산하자는 분위기에서, 해외사례를 소개한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라며 강의시 부교재로 활용한다고 말한다.

김기봉 경기대 교수는 “과거사 청산문제가 성급하게 정치화 됐”는데 이 책을 통해 “각국의 과거사 청산 방식의 차이를 인식하고, 국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한다. 

하지만 20여명이 넘는 박사와 막대한 지원 금액, 2년이라는 기간에 비해 그 결과가 빈약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원금에 비해 빈곤한 연구성과로 따진다면, 국내 대형과제의 경우 어느 과제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 서울 소재 사립대의 한 교수는 “순수하게 학문적 양심으로만 바라볼 때 이번 과제와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은 외국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수준”이라고 말하면서 “대형 과제의 경험이 없고 바닥에서부터 시작한 첫 연구라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현실적으로 볼 때 국내에서 그 이상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라고 말한다.

연구진은 신뢰하지만 이번 과제는 실망스러웠다는 지방 A대의 ㄱ 교수는 “그냥 알리기 식이면 모를까, 큰 규모의 지원은 큰 테제에 일치하게끔 결론을 모으는 진행이 필요한데, 연구결과물 중 하나로 나온 단행본은 중구난방으로 연구성과를 모은 것이라 학문적 긴장이 결여된 것 같다”고 말하며 “한국사회의 중요한 이슈이지만 맥도 닿지 않고 체계도 없이 개괄적으로 모아서 소개하는 것으로 18억6천만원이 지원됐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고 질타했다. 대형과제의 특성상 큰 흐름이 같아야 하고, 사례를 분석해 하나의 일관된 결론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 B대의 ㄴ 연구자는 “학제간 연구를 지향했다면 역사와 문학뿐 아니라 법정치, 철학도 과거사에 매우 중요한데, 이번 연구는 역사쪽에 편향돼 버린 것 같아 허울뿐인 연구”라고 말하며, 이어 “연구원 구성에 있어서도 전문성이 결여된 인물이 더러 보여 급하게 모은 것 같다”고 주장한다. 1년차에 참여했던 한 연구원은 “문학과 역사학이라는 학제간 연구에서 원래 의도했던 사회적 의미보다 각자의 분야에 매몰돼 안 교수의 고충이 무척 컸다”고 말한다.

연구팀이 제출한 연구계획서를 보면 “과거청산이 정치·도덕적 책임 규명을 넘어, 한 사회의 문화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까지 밝히는 것인 만큼, 역사연구와 문화연구가 서로 결합될 수 있는 근거”라고 밝혔지만, 운영하는 과정에서 방법론적 통합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국제적 연구 공동체 형성”이라는 애초 취지에 얼마만큼 부합했는지에 대해 불만인 연구자도 있다. 전공과 연관된 흥미로운 주제여서 관심을 가졌다는 서울 C대의 ㄷ 강사는 “관련국가의 해당 주제연구소와 협조해 공동으로 연구세미나를 갖는 등 국제적 현장성을 활용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한다.

지난 2년간 전임연구원으로 참여했던 박구병 서울대 강사는 “학진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 연구의 효율성보다는 모양새 갖추기에 신경을 썼던 것은 사실이며, 분과학문의 특성이 있어 조율의 성과는 좋지 못했지만 이번 연구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느낀다”며 아쉬움을 전한다.

또 한 연구원은 “역사학 방법론을 강조한 안병직 교수님이 학제간 연구에 의미를 크게 두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문학 분야 연구자가 전체 기획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라며 “문학연구자가 문학작품에 나타나는 기억의 특수성을 강하게 추구했어야 했는데, 방법론을 포기하고 안 선생님께 순응해버렸다”며 아쉬움을 전한다.

과거사청산 문제에서 보편성이 떨어지는 라틴 지역이 왜 들어갔는지 의문스럽다는 서울 D대의 ㄹ 교수는 “폴란드나 헝가리, 체코가 들어가야 하고 동독에 대해서는 더욱 심화된 연구를, 그리고 일본과 동남아시아 정도가 지역에 편입됐어야 했다”고 지적한 후 “서울대에 일문과나 동남아 관련연구자가 없어서인지, 패권주의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연구원끼리 토론이 부족했는지, 방향성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발표논문에서 인용한 연구성과가 해당 국가에서 학문적으로 검증이 덜 된 게 많이 사용됐다”고 주장한다.

서울 E대의 ㅁ 교수도 先學에 대해 말하기가 어렵다며 같은 맥락에서 입을 연다. 전체적으로 들쑥날쑥해 다소 읽기가 거북했다는 그는 “사례수집에 불과해, 공적 지원으로 월 2백만원을 받았을 연구자들이 연구를 주업으로 삼기보다는 용돈벌이로 생각하고 대충 써낸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읽은 소감을 전하며, “스페인 연구분야의 경우 주석 22번이 논문 흐름상 매우 중요한 대목이라 해당사이트로 들어갔지만 관련 글을 찾을 수 없었다”며 다른 글에 대한 자료인용의 진정성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연구비지원 규모에 비해 합당한 결과물인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투입되는 산출효과에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한 서울 F대의 ㅂ 교수는 “같은 테마를 대형·중형·소형·개인으로 나눠 단년으로 지원하거나 3~4인의 연구원이 분담해서 나눠도 예상되는 연구결과는 큰 차가 없다”라고 말하며, “유럽의 경우 1년에 5~6억원의 연구비가 지원되면 학계를 선도할 단행본이 나오는데, 국내의 경우 대비효과가 너무 떨어진다”며 자신이 유학했던 나라와 국내 학계를 비교한다. 이밖에도 단행본을 구성하고 있는 세 주제가 각각 한 권의 연구서로 펴내도 좋을만큼 큰 주제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학진의 연구과제 선정에 대한 문제도 심각하게 제기된다. 연구팀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했던 송충기 공주대 교수는 “학진에 3년과제로 연구계획을 신청했지만, 1년과제로 축소 선정돼 전체적인 플랜이나 연구의 깊이가 일그러졌다”고 전한다. 이듬해에 1년과제로 다시 선정됐지만, “사실상 연구원들끼리의 ‘궁합’ 맞추기에도 1년의 시간은 소요된다”고 그는 말한다. 이어 송 교수는 “우리 연구팀 이후 많은 연구성과들이 나오고 있어 학문적 파급이나 후속연구 자극의 측면에서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라고 의의를 평가하기도 했다.

2년간 함께 연구했던 박상철 전남대 교수는 “모두 50여편의 연구논문이 나왔으며,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각국에서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며 “책 한 권으로 대형연구과제 전체를 판단하면 곤란하다”고 말한다.

“이해한다”는 차원의 입장도 많았다. 사업 자체가 처음 실시된 것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지원의 성격 자체가 어떤 학문적 성과를 올리기보다는 박사급 연구자들의 안정된 연구와 대학원생의 생활비 보조라는 점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결국 공적자금으로 이뤄지는 연구과제에 대한 안이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대학이 흔들리는 이 시점에서 국가재정지원금을 받는 연구원들이 엄격한 학자적 태도를 견지하지 못하고, 1년에 논문 한 편만 쓰면 된다는 식의 안일한 생각도 문제”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실제로 연구결과물을 제출하지 않은 사람들도 꽤 있었다. 위의 <표>에서 보듯 2002년의 경우 33명의 연구자들은 논문을 지난해 8월까지 제출해야 됐으나 학진에 보고된 논문은 25편 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2003년에도 4월 30일 현재, 학진에 신고된 논문도 8편에 불과했다. 연구물을 내지 않은 한 연구원은 “학교 일로 너무 바빠 아직 탈고하지 못했다. 기간 내에 제출하지 못한 점은 반성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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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2006-05-12 18:33:16
세금을 이렇게 공짜돈처럼 쓰니 공부한다는 사람이나, 시의원 되어 국고로 여행하며 흥청망청 돈 쓰는 놈들이나 다른 게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