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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늘은 계속된다
그래도 오늘은 계속된다
  • 최승우
  • 승인 2022.11.04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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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피보 지음 | 배영란 옮김 | 생각의닻 | 304쪽

이제 막 여든둘이 된 한 남자의 이야기. 주인공 기욤은 얼마 전까지 중견 출판사의 대표로 문화계를 주름잡았던 인물이지만, 은퇴한 삶은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하다. 길고양이 한 마리와 연금생활자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뒷방으로 물러앉으니 여기저기 몸도 아프고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에 마음은 불안하기만 한데...

서로를 돌보고 약해진 마음을 우정으로 달래기 위해 기욤은 친구들과 ‘80대 파리청년회’ 모임을 이어간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가 소개팅 앱에서 만난 여자와 일흔의 나이에 갑자기 결혼하겠다고 나선 외눈박이 코코, 이야기가 늘어지고 재미없어지면 언제나 화장실로 도망쳤다가 지병인 전립선을 화두로 던져 대화의 주도권을 잡는 법무사 출신의 옥토, 부부가 서로 말꼬리 잡느라 혈안이 돼 으르렁대는 게르미용 부부, 댄디한 신사이자 유능한 번역자 남편과 은퇴한 파리시 공무원 아내 블라지크 부부, 아흔다섯의 나이가 무색하게 아직도 딸들과 쇼핑을 즐기는 ‘칼주름’ 노나까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닌 여덟 명의 멤버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식사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노인네들 사는 이야기가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지만 무슨 소리. 늙어도 사는 건 다 똑같다. 여자에게 주책없이 들이대다가 퇴짜를 맞기도 하고, 내기에 져 문신을 새기기도 한다. 부부끼리 별거 아닌 일에 죽기 살기로 싸우고 치사하게 나이를 앞세우는 일도 허다하다.

간혹 넘어지거나 뾰루지라도 날라 치면 서로를 놀려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뿐인가? 질병과 외로움, 불안 때문인지 혼자 있을 때면 ‘또 다른 나’가 나타나 끝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프랑스에서 ‘문단의 교황’이라고 불렸던 남자, 2014년부터 2019년까지 공쿠르 문학상 심사위원장이었던 이 장편소설의 저자 베르나르 피보는 자신의 실제 이야기와 지어낸 이야기를 적절히 뒤섞어 노년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호기심과 유머, 다정함까지 두루 갖춘 저자의 지혜와 통찰이 귀부 와인처럼 달콤하고 쌉쌀한 여운을 남긴다. 덤으로 행복한 노년을 누리기 위한 몇 가지 레시피와 작은 교훈도 함께 얻을 수 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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