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현실은 어디에도 없으니 다양한 관점 갖고
희망과 의미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게 삶의 해답
“아무 데나 쏘아라. 과녁은 거기에 그리면 되니까.” 이 문장을 읽으며 키득 웃었다. 아무래도 김영민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동양정치사상)는 무수히 절망하고 좌절했던 경험이 있었던 것 같다. 이른바 루저라고 하는 이들은 어떻게든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스스로 위로한다. 때론 냉소로, 때론 험담으로. 그런데 김 교수는 거기에 논리와 해학을 덧붙였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김 교수는 상식을 뒤집는 촌철살인들을 보여준다. “불행한 느낌이 엄습하는 것 같다? 모든 불행을 다 행복이라고 느끼게끔 자신을 길들이는 거다.” 이것은 아무 데나 쏘고 과녁을 그리는 정신승리다. 그런데 계속 이런 식으로만 도피할 수 없다. 김 교수는 “정신승리는 정신의 공갈 젖꼭지”라며 “여우의 문제는 제대로 승리하지 못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패배하지 못한 데 있다”라고 다시 뒤집는다. 그렇다면 어쩌란 말인가? 김 교수는 “정신승리의 궁극은 자신이 정신승리를 했다는 사실을 마침내 잊는 것”이라며 “타인, 권력자, 혹은 정부가 하는 가스라이팅의 희생물이 되지 않는 길은, 어디에도 없는 순수한 현실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당부했다.
이 책을 읽으며 두 노래가 떠올랐다. 먼저 이경임 시인의 시로 노래한 안치환의 「담쟁이」(2007)이다. “내겐 허무의 벽으로만 보이는 것이 / 그 여자에겐 세상으로 통하는 창문인지도 몰라.”, “마침내 벽 하나를 몸 속에 집어넣고 / 온몸으로 벽을 갉아먹고 있네 아, 지독한 사랑이네.” 허무를 극복하는 일은 온몸으로 벽을 가는 고통을 감내하는 사랑이었다고 노래한다. 또 다른 노래는 장기하의 「별일 없이 산다」(2009)이다. “니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 오늘 밤 절대로 두다리 쭉뻗고 잠들진 못할거다 / 그게 뭐냐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는 두 노래와 비슷한 무거움과 가벼움이 공존한다.
김 교수에게 인생의 허무를 견디는 힘은 한 마디로 ‘예술’이다. 그가 책에서 인용한 수많은 문학, 철학, 그림, 사진, 영화 등은 예술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작품들은 일상을 들춰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퍼스트 카우」(2019)를 인용할 때 “느린 것이 삶의 레시피”라고 강조한다. 서부 개척기의 날품팔이 노동자 두 명은 생존을 위해 영국 수비대장이 키우던 소의 젖을 짜 케이크를 팔다가 발각돼 쫓긴다. 그러다 결국 숲에서 죽는다. 기존 영화에선 주목하지 않았던 소시민의 죽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의 주인공들이 단순히 하루 벌어 먹고사는 날품팔이들만은 아니었다고 김 교수는 적었다. 그는 “누구보다 향기로운 케이크를 굽고자 했던 사람”이라며 “언젠가 베이커리를 열겠다는 달콤한 꿈을 가지고 있었던 구체적인 사람의 죽음”이라고 설명했다. 날 것 그대로의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리려면 영화를 음미해야 한다. 속도전의 현대생활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김 교수는 “잔잔한 영화를 보는 일은 현란한 이미지의 야단법석으로부터 도피하는 수단”이라며 “끝없이 독촉해대는 생활의 속도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몸짓”이라고 밝혔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건 프롤로그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식의 강요가 아니라, “희망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답”이라는 직언은 머리를 띵하고 울린다. 김 교수는 “영혼이 있는 한 허무는 아무리 씻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라며 “인간이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은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라고 적었다. 아울러, 김 교수는 “나는 인간의 선의 없이도, 희망 없이도, 의미 없이도, 시간을 조용히 려보낼 수 있는 상태를 꿈꾼다”라고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김 교수는 목적 없이 거니는 산책만이 구원이라고 밝혔다. 그는 행복을 강요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행복이여, 자네는 내가 살아가는 동안 부지불식간에 발생하도록 하게, 셔터가 무심코 눌려 찍힌 멋진 사진처럼.”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