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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으로 ‘허무’를 껴안다…불행을 길들이자
해학으로 ‘허무’를 껴안다…불행을 길들이자
  • 김재호
  • 승인 2022.11.11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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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308쪽

순수한 현실은 어디에도 없으니 다양한 관점 갖고
희망과 의미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게 삶의 해답

“아무 데나 쏘아라. 과녁은 거기에 그리면 되니까.” 이 문장을 읽으며 키득 웃었다. 아무래도 김영민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동양정치사상)는 무수히 절망하고 좌절했던 경험이 있었던 것 같다. 이른바 루저라고 하는 이들은 어떻게든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스스로 위로한다. 때론 냉소로, 때론 험담으로. 그런데 김 교수는 거기에 논리와 해학을 덧붙였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김 교수는 상식을 뒤집는 촌철살인들을 보여준다. “불행한 느낌이 엄습하는 것 같다? 모든 불행을 다 행복이라고 느끼게끔 자신을 길들이는 거다.” 이것은 아무 데나 쏘고 과녁을 그리는 정신승리다. 그런데 계속 이런 식으로만 도피할 수 없다. 김 교수는 “정신승리는 정신의 공갈 젖꼭지”라며 “여우의 문제는 제대로 승리하지 못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패배하지 못한 데 있다”라고 다시 뒤집는다. 그렇다면 어쩌란 말인가? 김 교수는 “정신승리의 궁극은 자신이 정신승리를 했다는 사실을 마침내 잊는 것”이라며 “타인, 권력자, 혹은 정부가 하는 가스라이팅의 희생물이 되지 않는 길은, 어디에도 없는 순수한 현실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당부했다. 

이 책을 읽으며 두 노래가 떠올랐다. 먼저 이경임 시인의 시로 노래한 안치환의 「담쟁이」(2007)이다. “내겐 허무의 벽으로만 보이는 것이 / 그 여자에겐 세상으로 통하는 창문인지도 몰라.”, “마침내 벽 하나를 몸 속에 집어넣고 / 온몸으로 벽을 갉아먹고 있네 아, 지독한 사랑이네.” 허무를 극복하는 일은 온몸으로 벽을 가는 고통을 감내하는 사랑이었다고 노래한다. 또 다른 노래는 장기하의 「별일 없이 산다」(2009)이다. “니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 오늘 밤 절대로 두다리 쭉뻗고 잠들진 못할거다 / 그게 뭐냐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는 두 노래와 비슷한 무거움과 가벼움이 공존한다.    

김 교수에게 인생의 허무를 견디는 힘은 한 마디로 ‘예술’이다. 그가 책에서 인용한 수많은 문학, 철학, 그림, 사진, 영화 등은 예술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작품들은 일상을 들춰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퍼스트 카우」(2019)를 인용할 때 “느린 것이 삶의 레시피”라고 강조한다. 서부 개척기의 날품팔이 노동자 두 명은 생존을 위해 영국 수비대장이 키우던 소의 젖을 짜 케이크를 팔다가 발각돼 쫓긴다. 그러다 결국 숲에서 죽는다. 기존 영화에선 주목하지 않았던 소시민의 죽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의 주인공들이 단순히 하루 벌어 먹고사는 날품팔이들만은 아니었다고 김 교수는 적었다. 그는 “누구보다 향기로운 케이크를 굽고자 했던 사람”이라며 “언젠가 베이커리를 열겠다는 달콤한 꿈을 가지고 있었던 구체적인 사람의 죽음”이라고 설명했다. 날 것 그대로의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리려면 영화를 음미해야 한다. 속도전의 현대생활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김 교수는 “잔잔한 영화를 보는 일은 현란한 이미지의 야단법석으로부터 도피하는 수단”이라며 “끝없이 독촉해대는 생활의 속도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몸짓”이라고 밝혔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건 프롤로그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식의 강요가 아니라, “희망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답”이라는 직언은 머리를 띵하고 울린다. 김 교수는 “영혼이 있는 한 허무는 아무리 씻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라며 “인간이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은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라고 적었다. 아울러, 김 교수는 “나는 인간의 선의 없이도, 희망 없이도, 의미 없이도, 시간을 조용히 려보낼 수 있는 상태를 꿈꾼다”라고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김 교수는 목적 없이 거니는 산책만이 구원이라고 밝혔다. 그는 행복을 강요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행복이여, 자네는 내가 살아가는 동안 부지불식간에 발생하도록 하게, 셔터가 무심코 눌려 찍힌 멋진 사진처럼.”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방법은 정신승리의 차원에서 불행을 길들여보는 것이다. 인생에 대한 다각도의 관점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사진=픽사베이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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